몸은 아는데
나는 모른다

by 지담

다시

숨이

나를 괴롭힌다.


숨쉬기가 힘겹다.

있는 힘껏 목구멍을 열어

되도록 가슴의 뼈까지 벌린 채 공기를 들이 마신다.

입에서 폐까지 짧은 거리에도

공기는 닿지 못하고 멈춘다.

마신 숨은 어디로 새고 있나.


수시로 내게 공기를 넣어줘야 하니

공기통이 고장난건지

공기튜브가 약해진건지 알 수 없다.


프리미엄 썸네일(작은) (74).png


십수년째다.

1년에 두어번 숨은 날 죽일 듯이 괴롭힌다.

숨의 공격이 예감될 때 너무 공포스럽다.

또 시작이구나.


그러면서도 병원은 가지 않는다.

고집도 아니고 무지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그저 책상앞이 가장 편해서다.

여기 앉아야 숨에 신경쓰지 않고 몰입할 수 있어서다.

공포를 잊으며 시간에 의지할 수 있어서다.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루 종일 달고 사는 커피를 무의식적으로 밀어내고

청량고추 팍팍 썰던 손을 멈추니까.

몸이 알아서 나를 지켜내고 있다.


머리는 몸보다 늦게 현상을 이해할 때가 많다.

커피와 매운 음식으로 나는

몸이 주는 신호를 읽는다.

며칠 뒤 숨이 날 괴롭힐 것이라는 걸.


숨.

살아있음의 가장 소소하지만 확실한 증거.

내 안에는 여전히

내 숨통을 막아버리려는 괴물이 건재한 걸 또 확인했다.


그래서, 숨이 버거울 때마다 나는

다시 삶의 기본을 생각한다.


숨을 쉬기 위해 마당에 더 자주 나간다.

눈앞에 펼쳐진 산을 향해 입을 벌리고 허리를 곧게 펴고

배꼽 아래에까지 길게 공기를 들이고

아주 조금씩 겨우 들인 공기를 내보낸다.


맑은 공기, 귀한 생각,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그리고, 쓰임있게 살아내야 할 숙제.


몇번 공기를 들이고 내보내면

머리와 가슴이 조금씩 풀린다.

그러면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어 글을 쓰고

눈을 모아 책을 읽는다.


이렇게 며칠을 보내면서

나는 또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한다.


숨쉬기가 힘겨운 것은,

신체가 아닌 정신의 증상이라는 것을.

몰입할 땐 숨이 어렵지 않으니까.


몸이 보내는 신호의 답은

거의 대부분

정신이 쥐고 있다.


지금 내 정신은 내가 풀어내야 할 해답을 쥔 채

나를 닥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풀이를 시작하지도 못한 내 몸은 괴로운 것이고.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른 채

십수년째 반복적으로 나는

정신의 심기만 달래고 있다.


몸은 이미 아는데

나는 아직 모른다.


이렇게

1년에 한두번

나는

나를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렴풋이 내 안에 자리잡히는 형체 하나가 있다.


숨.

당연하던 숨쉬기에 에너지를 쓰는 것조차 아깝다.

내가 하는 이 행위의 몰입은

그만큼 크고 소중한 것이니.

내 온몸의 에너지 모두를 쏟아내야 한다는.

그런 신호의 형체.


https://cafe.naver.com/joowonw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8437169

[지담연재]

월 5:00a.m. [사유의 기록]

화 5:00a.m. [엄마의 유산]

수 5:00a.m. [필사 - 사유의 손끝에 철학을 품다]

목 5:00a.m. [영혼의 노래]

금 5:00a.m. [나는 시골이 좋습니다.]

토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일 5:00a.m. [사유의 기록]

월, 일 연재
이전 08화글에 탐이 묻는 순간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