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숨이
나를 괴롭힌다.
숨쉬기가 힘겹다.
있는 힘껏 목구멍을 열어
되도록 가슴의 뼈까지 벌린 채 공기를 들이 마신다.
입에서 폐까지 짧은 거리에도
공기는 닿지 못하고 멈춘다.
마신 숨은 어디로 새고 있나.
수시로 내게 공기를 넣어줘야 하니
공기통이 고장난건지
공기튜브가 약해진건지 알 수 없다.
십수년째다.
1년에 두어번 숨은 날 죽일 듯이 괴롭힌다.
숨의 공격이 예감될 때 너무 공포스럽다.
또 시작이구나.
그러면서도 병원은 가지 않는다.
고집도 아니고 무지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그저 책상앞이 가장 편해서다.
여기 앉아야 숨에 신경쓰지 않고 몰입할 수 있어서다.
공포를 잊으며 시간에 의지할 수 있어서다.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루 종일 달고 사는 커피를 무의식적으로 밀어내고
청량고추 팍팍 썰던 손을 멈추니까.
몸이 알아서 나를 지켜내고 있다.
머리는 몸보다 늦게 현상을 이해할 때가 많다.
커피와 매운 음식으로 나는
몸이 주는 신호를 읽는다.
며칠 뒤 숨이 날 괴롭힐 것이라는 걸.
숨.
살아있음의 가장 소소하지만 확실한 증거.
내 안에는 여전히
내 숨통을 막아버리려는 괴물이 건재한 걸 또 확인했다.
그래서, 숨이 버거울 때마다 나는
다시 삶의 기본을 생각한다.
숨을 쉬기 위해 마당에 더 자주 나간다.
눈앞에 펼쳐진 산을 향해 입을 벌리고 허리를 곧게 펴고
배꼽 아래에까지 길게 공기를 들이고
아주 조금씩 겨우 들인 공기를 내보낸다.
맑은 공기, 귀한 생각,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그리고, 쓰임있게 살아내야 할 숙제.
몇번 공기를 들이고 내보내면
머리와 가슴이 조금씩 풀린다.
그러면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어 글을 쓰고
눈을 모아 책을 읽는다.
이렇게 며칠을 보내면서
나는 또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한다.
숨쉬기가 힘겨운 것은,
신체가 아닌 정신의 증상이라는 것을.
몰입할 땐 숨이 어렵지 않으니까.
몸이 보내는 신호의 답은
거의 대부분
정신이 쥐고 있다.
지금 내 정신은 내가 풀어내야 할 해답을 쥔 채
나를 닥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풀이를 시작하지도 못한 내 몸은 괴로운 것이고.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른 채
십수년째 반복적으로 나는
정신의 심기만 달래고 있다.
몸은 이미 아는데
나는 아직 모른다.
이렇게
1년에 한두번
나는
나를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렴풋이 내 안에 자리잡히는 형체 하나가 있다.
숨.
당연하던 숨쉬기에 에너지를 쓰는 것조차 아깝다.
내가 하는 이 행위의 몰입은
그만큼 크고 소중한 것이니.
내 온몸의 에너지 모두를 쏟아내야 한다는.
그런 신호의 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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