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안)하는 자녀를 둔 부모 필독!-28탄
지난 주에 이어지는 내용이므로 아래의 지난 주 글을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478
낯섦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우리는 통찰과 직관이라는 선물을 받게 된다.
통찰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나아갈 믿을 수 있는 능력이다.
직관은 통찰한 그것을 행하는, '바로 지금'이라는 느낌 같은 느낌이다.
직관은 보이거나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배워서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깨져서 깨닫고 깨어나면서 나에게 내재된 것이 순간 드러나는 것이기에 이성이 이를 막아서더라도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통찰이나 직관과 같은 능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데
과거 입력된 경험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이 현재 상황을 잘못 계산하게 하곤 한다. 그러니 통찰도 안되고 직관은 활용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남이 시키는대로 하고, 이미 하던대로만 하는데 무슨 통찰과 직관이 필요하겠는가.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이미 알고 있는' 그 기능만으로 채워져 있는데 무슨 도전이 필요하겠는가.
인간의 본성에 충실하면 통찰과 직관은 누구나 발현할 수 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가 알고 있는 능력보다 스스로가 모르는 능력이 훨씬 많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기 능력의 10%밖에 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하니 말이다.
아직도 사용하지 못한 인간이 지닌 내면의 엄청난 힘, 즉 잠재력이 무한한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나도 모르는 나의 능력, 나의 힘....
그것을 따르면 보이지 않는 미래의 시간에 대한 통찰과 직관을 활용할 수 있다.
나를 내려놓으면 길이 보인다.
나는 이 느낌과 과정을 흐름(wave)이라고 표현한다.
내가 아는대로가 아닌, 내가 모르는 기운이 이끄는 방향대로 그저 나를 맡기는 것.
내 이름 주원(炷沅)도 이러한 나의 정체성이 형성되면서 2014년 나 스스로에게 선물한 이름이다.
심지주, 강물원. '중심을 가지고 흐름대로' 살리라. 이다.
흐름대로 살겠다는 의미를 넣어 만든 이름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마지막 저서이자 세번째 산문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 나오는 글 가운데 '길'은 이러한 '흐름'에 나를 맡기는 힘을 갖게 해주는 글이다. 어떤 판단 앞에서 내가 얄팍한 이성과 감성으로 상황을 계산하고 있을 때 이 글귀는 나에게 강한 에너지를 불어넣어, 내 몸에 있는 영혼을 되살리고 맑게 정화시킨다. 그리고 내게 힘을 주어 '흐름'에 나를 맡기게 도와준다.
반복해서 읽어보길 바란다.
길(톨스토이)
삶의 작은 부분을 바꾸면 우리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어린아이나 하는 것이다.
그것은 카페트에 앉아 끄트머리를 잡아당기면 하늘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는 생각과 같다.
무언가를 제대로 하려면 그 방법을 알아야 한다.
어떤 일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희망하는 일을 이루고 싶어하나.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 안에 있는 영혼이 이노하는 길을 걷지 않으려 한다.
영혼이 이끄는 길...
내가 알지 못하고 많이 두렵지만 기운이 이끄는 그 길을 그저 묵묵히 따르는 것. 이것이 나를 내려놓고 인생의 길에 나를 살포시 얹고 사는 방법이다.
내가 이끄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끄는 그 무언가에 나를 맡기는 것,
그러기 위해 우리는
나의 영혼의 힘을 믿어야 하며
의식을 확장해야만 한다.
29편에서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