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그리고 脈! 1
이 글은 차후 출간을 목표로 집필중입니다. 현재 매일 쓰는 초고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브런치에 옮기는 중이라 다소 문체나 흐름이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음을 양해바랍니다. 본 글은 매거진 '어떻게 살 것인가'의 1편부터 연이어 읽어나가시길 권해드리며 본 글은 '2장, 해체, 그리고 맥'의 1. 기준을 높이고 수준을 쌓는다 3번째 글입니다.
내침 김에 조금씩 세워진 나의 삶의 기준을 언급해볼까 하는데 나는 내 인생을 놀이터라 여긴다. 잘 살기 위한 기본은 ‘잘 사는 게 뭔지’, 잘 사는 주체가 ‘나’여야 하니 나를 알고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아는 것이 일단 기본이었다. 기준도 아니고 기본이었다. 이 기본을 익히는 데에만 수년째. 죽을 때까지 모를 수 밖에 없는 진리탐구이기도 하겠지만 아는만큼 기준은 세워지고 높아지고 삶의 곳곳에서의 격있는 판단, 언행들로 나의 인간적인 수준, 인격이 드러날 것이라 여긴다.
놀이터로 치자면 바닥공사가 가장 기본이 되어 미끄럼틀, 그네 등 놀거리들이 세팅되듯이 내 삶도 인간, 사회, 삶에 대한 사유의 길이 내 삶의 기저가 되어줘야 그 시간의 위에서 재미나게 놀 수 있는 글, 말, 또 다른 무언가가 세팅될 것이다. 이왕이면 튼튼하고 재미나고 특별한 것으로 말이다.
내 인생의 기준으로 나는 놀이터를 예로 들겠다.
내 인생은 놀이터다.
일단 바닥공사를 잘해야 한다. 마구마구 놀다가 넘어져도 다치지 않고 건설된 놀이기구들이 튼실하게 서 있어야 하니 말이다. 바닥공사는 ‘나’를 먼저 만드는 것이다. ‘나’라는 놀이터의 바닥공사가 잘 되어 있으면 내가 가지고 노는 말, 글, 코칭 등의 수준을 높일 수 있고 그렇게 차별화시켜 세상에 내놓으면 사람들이 놀러 올 것이다. 노는 맛이 좋으면 친구도 데려올 것이고 그렇게그렇게 전파되면서 신나게 놀 수 있는 이 곳에서의 나의 재미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분명 나에게만 탁월한 재미를 주는 놀이기구를 알게 되거나, 나만의 특별한 놀이비법도 더 자주, 많이 창조해 낼 것이고 그 탁월함과 비법이 남들과 차원이 다른 어떤 경지까지 날 데려다줄 것이며 그러면 나는 더 리얼하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며 내 인생의 놀이터에 오는 이들에게 더욱 신나는 놀이를 선사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나의 자유와 행복과 평안은 점점 커질테고 나와 함께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렇다면, 지금 내가 만드는 놀이터는 나를 위해 시작했지만 모두를 위한 것이된다.
그 지점에서 비로서 그토록 원하던 나만의 삶, 나만의 인생이 나의 서사로 창조되었음이 증명되며, 나와 함께 노는 모든 이들에게도 자신만의 놀이터를 만들 수 있도록 보여주는, 진정한 이타를 내가 행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 삶은 기준은 ‘이기가 이타다’이다.
나부터 먼저 알아야 하고 나부터 먼저 잘해야 하고 나부터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나부터 먼저 제대로 된 정신으로 삶을 살아야 하고 나부터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나의 삶의 전반적인 기준이 되었다.
이를 위해 내가 알던 이들에게서 당분간 떠나 스스로 고립을 택하고 그렇게 나의 인식의 성장에 할애할 시간을 확보한 것은 내가 한 결정 가운데 참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즐겁고 행복한 인생에는 많은 사람이 아니라 뜻이 맞는 몇몇과 신나게, 안전하게, 의미있게 노는 것이 중요하니까. 나 역시 그러한 관계들을 만들고 싶고 그러려면 내 정신이 담긴 내 놀이터가 만들어져야 하고 이 놀이터가 모두에게 개방되었을 때 그들이 스스로 놀이터를 찾아 등장하도록 나는 내 인생의 기준을 잡아본 것이다.
이제 기준을 세웠으니 수준을 높이는 걸음을 걸으면 된다.
인간으로서의 수준, 인격.
한참 멀리 가야겠지만 되돌아가거나 서있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게 묵묵히 걸으면 된다.
나를 해체하고 다시 중심으로 세운 맥(脈) 첫 번째, ‘기준을 높여야 수준이 높아진다’는 어쩌면 성경의 ‘가진 자가 더 많이 갖게 할 것이다’의 실천이라 감히 말하려 한다. 소로우도 작문을 하는 데 있어 이 성경의 의미를 거론하며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는 의미를 전했다. 일정한 양이 쌓여 그것이 습관이 되면, 그러니까 그 이하는 하지 않는 것으로 나의 기준이 정해지면 속도의 속성대로 가속도가 붙게 되고 수준은 그 때부터 질적팽창을 이룬다.
기준은 양, 수준은 질적 속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겠다. 질서잡힌 이성을 위한 사고는 손과 가까이 있으며(소로우) 어떤 현상에도 굴복하지 않는 정신의 강인함은 육체가 멀쩡한데 정신이 항복하지 않는(아우렐리우스) 의지에 있다. 수준높은 삶의 격을 원하고 삶의 과정에서 수많은 성취를 이루려 한다면 우선 기준부터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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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우의 일기, 헨리데이빗소로우, 1996, 윤규상역, 도솔출판사
#황제의 철학,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2008, 노혜숙역,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