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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Feb 18. 2024

중년의 나에게 당부한다, 아니 명령한다

'세월'에 대하여

양손으로 양쪽 볼을 당겨봤다. 

볼살이 좀 빠졌으면 싶었던 적이 엊그제였는데 볼살만 빠져 점점 미워지는 얼굴을 갖게 된 지금 주름이  길을 내는 시간에 내가 서 있구나를 온 피부로 느끼면서 

왜 여성들이 리프팅이니 뭐니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지 약간 이해도 되고 

이러한 것들에 관심가지 않는 내 정체가 여성인지 잠시 의심도 들고 

내 양손은 여전히 내 잡히지 않는 볼살을 이리저리 잡아 늘여보며 궁시렁궁시렁대다      

점점 쳐지는 눈꼬리에 눈밑 살들이 버티다 지쳐 아래로 떠밀리더니 

받쳐줄 볼살이 부족해 이들은 목까지 더 타고 내려가 

턱하니 턱까지 턱내려 앉아 받쳐줄 턱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다 

겨우 목을 부여잡고 주글주글 매달려 있다.     

이 글을 쓰다가 그냥 찰칵. 보기에도 민망한 생얼이지만....글의 리얼리티를 위해서... 공개....ㅠ.ㅠ


그래도 

여전히 남보다 큰 동공에는 맑은 진심이 담겨지길 

여전히 남보다 넓은 이마엔 세월의 노고가 묻혀있길

여전히 남보다 두터운 입술에선 더 두터운 지혜가 스며나오길

여전히 남보다 높은 콧대는 나의 열망과 갈구가 드높았음을 드러내주길

오늘이 내게 가장 젊은 시간이니만큼

점점 주름과 동행하는 얼굴에 

나는 당부한다. 

아니, 명령한다.


남들보다 가늘고 긴 손가락은 언제부터인가 툭하니 마디가 솟고 남들보다 다소 하얀 피부는 언제부터인가 숨어있던 검은 그림자를 슬며시 피부위로 드러내고 남들보다 다소 좁은 어깨는 언제부터인가 내 목 위를 지탱하다 힘이 빠져 기억자를 무너뜨리며 아래로 방향을 틀어대니  


그래도

여전히 내 어깨여점점 더 스스로 짊어진 삶의 무게를 견디고 점점 더 고양시킬 내 정신을 받쳐주어야 한다.

여전히 내 손마디여점점 바쁘게 쳐대는 손가락의 미세한 활동을 한순간도 놓치지 말고 다 잡아내어야 한다.

여전히 내 피부여점점 자주 신호를 보내올 나의 모든 세포와 오장육부의 상태를 제대로 간파하여 나로 하여금 미리 나의 속을 진단하게 해줘야 한다.

오늘이 내게 가장 건강한 시간이니만큼

이제부터 외양으로 드러나는 세월의 표식들과 손잡고 가야 하는 내 몸 곳곳에 

나는 당부한다. 

아니 명령한다.     


중년의 길로 들어선 것인지 노년의 길이 시작된 것인지 명확한 경계가 없어 내 잘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젊은 길의 끝을 지나 여기서 저기로 가는 커다란 흐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젊음으로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과 쾌활함과 명석함을 두루 누렸으니 지금부터는 다른 시작이 있어야겠다. 육체과 정신으로 그간 많은 것들을 누렸다면 이제부터 동참한 영혼에 힘을 실어 소모되어 가는 육체와 정신에 새로운 옷을 입혀야겠다.    

 

영혼은 육체의 일부다. 지금껏 소홀했던 나의 일부여, 여태 나와 밀착되었던 나의 신체들을 보완하고 보호하고 보듬어주길 내 간절히 청한다. 영혼에게 나를 맡기려는 치사하지만 간절한 소망은 나의 삶이 나를 그리로 이끄는 자연스러운 행로인지라 내 소관을 너머 이치가 그러하다에 타당한 부여를 담고     

나의 삶이 다채로움에서 선명해지는 길로,

나의 삶이 채색되는 것에서 투명해지는 길로,

나의 삶이 높은 음계를 쳐댔던 것에서 균형있는 음반으로 음률을 음미하는 길로,

나의 삶이 민감하게 꼭지점들을 향했던 것에서 미련스레 부피를 채우는 길로,

나의 삶이 흡입하며 나를 키워왔던 것에서 소화하고 내뱉으며 나를 비워내는 길로

영혼이 나를 이끌길 

나에게 당부한다, 

아니, 명령한다.

   


톨스토이가 나 들으라 한탄한 가르침,

왜 영혼이 이끄는 길을 가지 않는가?(주1)

질책인지 당부인지 의문인지 모를 물음표에 나는 이제서야 간단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답할 수 있겠다.  


겨우 지금에서야 영혼의 존재를 받아들였다고

겨우 지금에서야 영혼이 내 길을 이끌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겨우 지금에서야 영혼에 의지할 용기가 생겼다고

겨우 지금에서야 영혼이 날 어디로 이끄는지 묻지 않겠다고

겨우 지금에서야 영혼이 날 어디로 이끌든 그 길을 믿고 따르겠다고    

 

가치있던 것을 소용없게 만드는 세월 앞에서.

소용없던 것에 가치를 보여주는 세월 앞에서..

이것에 이어진 저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세월 앞에서...

더불어 지향해야 할 가치를 내게 가져다준 세월 앞에서....

진실된 말들이 쌓여 가슴을 정화시키고 두려움과 욕망에 한계를 지어주는 세월 앞에서.....

삶의 가운데 놓여있던 것들을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새로운 것을 가운데 배치시킨 세월 앞에서.....

   

어제 젊어 누린 많은 것들에 감사하며 미련두지 않고

오늘 새롭게, 새로운만큼, 새로움답게 시작하겠노라고.

새로운 시작앞에서

나는 다시 갓난아기가 되어 다시 순수하게 다시 모든 것에 새 숨결을 불어넣어 

     

내 안에서 더 요동치려는 모든 혈관들이 더 분주히 자기 길의 끝을 가고 

내 안에서 더 바빠지려는 뛰는 모든 것들이 왕성하게 자신을 활동시켜 

내 안에서 더 분출되려는 기체와 액체들이 입으로눈으로모든 뚫린 곳으로 전진하며

남은 생 온전한 나를 이끌도록 내가 

나에게 당부한다. 

아니, 명령한다.     


참으로 다행이다세월이 나를 제때 제자리에 잘 서게 해줘서.

참으로 다행이다. 신체와 정신이 영혼이 내민 손을 잡아줘서.

참으로 다행이다나란 사람 이 나이에 아직도 쓸모있는 인간이어서.

참으로 다행이다내게서 소멸되어 가는 것들에게 미안함보다 감사함이 더 커서.

참으로 다행이다지금부터 새롭게 생성시켜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다노령으로 가는 커다란 문앞에서 버려야 할 것과 담아야 할 것의 구분이 가능해서.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주2)'이 

'참아내야 할 존재의 묵직함'으로 내 안에 터를 잡게 되어서... 


주1>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레프톨스토이, 2007, 조화로운 삶

주2> 밀란쿤데라 저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제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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