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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Mar 13. 2024

'아는 능력'을 '사는 능력'으로

'건율원'이 싹을 틔웠다.

10년도 더 전이었을텐데...

'끄적노트'라고 써놓은 빨간색노트는, 말 그대로 내 안에서 툭툭 나오는 것들을 맘대로 적어놓은 노트인데 어느 날 그 노트에 한 단어가 적혔다.

'건율원'

그리고 한자로도 적혀 있다.

세울 건 建

이치 율 律


그렇게 끄적. 써놓고는 싹~~~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리건아, 리율아!!! 부르는데 

오마이갓! 

우리 아이들 이름에서 한글자씩 건.율.

그리고 내 이름 주원의 한글자. 원.

이건 우연인가, 

잘 짜맞춰진 각색인가, 

거대한 손이 빚어놓은 조화인가....


그저, 

왜 학교에선 사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지?

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지?

나답게 산다는 게, 나여야만 하는 그 길을 찾는 것이 왜 이리 어렵지?

왜 다들 남들처럼 살라 하고 남들처럼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지?

나답게, 나만의 삶을 모두가 산다면 그것이 조화가 아닌가?

이런 얄궂은, 정체없는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어줄 교육이 있다면, 나는 당장 배우러 갈텐데...


없네.... 


그렇게 나는 건율원의 씨앗을 노트에 툭! 던져놓고 그리 세월을 보냈다.

열심히 건율원을 만들기 위해 뭘 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내 할일, 지혜는 습득된대!하며 논문을 쓰고

사람은 욕구를, 꿈을 펼칠 수 있어. 꿈은 현실이 되거든!하며 코칭을 하고

이 모든 것을 주는 근간은 책이어야 해! 하며 혼자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읽은 책을 그대로 내게 적용해서 나를 해체하고 다시 재조립하며 새로운 나를 내가 기르며

이 과정을 글로 써야지! 하며 매일 글을 쓰고..

건율원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무심히 노트 한켠에서 잊혀져가며

5년째 새벽독서, 1년 8개월째 브런치 글 매일 새벽 5시 발행을 지켜오고 있었다.


그렇게 

십수년을 지나 2024년 2월 어느 날.

건율원이 탄생했다.

나도 모르겠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냥 

마법처럼 마술처럼 마력으로 씨앗이 싹을 낸 것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그렇게 씨앗이 싹을 냈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나는 기억해내야 했다. 언제 내가 건율원을 노트에 적었지? 모르겠다. 과거 어느 날 내가 해오던 모든 것들이 쓰잘데기 없이 느껴져 다 단절하고 버리고 지웠던 그 시절, 아마도 2014년~2017년. 그 즈음 빨래삼던 커다란 통을 테라스에 가져가서 자료란 자료는 다 태워버렸던 그 시간. 그렇게 한참을 책상 위 모든 것을 죄다 불속에 던져넣으며 하염없이 울었던 그 시간, 그 장소, 그 불꽃....아마 그 빨간노트도 그 벌건 불꽃속에서 재로 변했을 것이다. 


그런데. 

씨앗은 그 불길 속에서도 혼자 자생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창조란 

나를 통해 세상이 무슨 짓을 하려는 시도다.

내 의지보다 더 강한 의지에 의해 세상이 만들어내려는 의도다.

내 능력 무시하고 고통으로 날 쳐박고선 없는 능력까지 배양시켜가며 어떻게든 탄생시키려 애쓰는 진통의 진도다.


나는 자만했었다.

마치 내가 뭘 만들어내는 것마냥 자만했었다.

내가 뭔가를 하려했고

내가 뭐라도 해낼 줄 알았다.

내 능력, 의지, 지식, 환경. 이 모든 것들을 몰살시키고 무시했어야 했는데

나의 자만은 응당한 대가를 요구했다.

그 대가는 가혹했고 공포스러웠다. 


2017년경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자다가 깨어난 새벽. 나는 그 새벽의 공포를 아직도 기억한다. 너무 생생하게. 내 정신을 완전히 죽여버리고 새로운 정신으로 바꾸겠다는 신의 의지가 그렇게 강력했었음을 지금의 나는 알지만 그 때의 나는 원망과 불신과 두려움만 가득했었던 그 공포스런 장면.


사촌형이 입던 벨벳자켓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왼쪽가슴에 명찰을 단 채 초등학교 입학식에 서 있는 아들.

그 작은손에 커다란 사진이 들려 있는데...

말도 안된다..

나의 영정사진이었다.

식은땀으로 날 깨운 꿈속의 단 한장면이 나의 정신을 완전히 뒤바꿔놨다.


말귀 못알아듣고 의도 못알아채고 의지 다 내다버린 나에게

신은 그렇게 해서라도 날 고쳐서 써먹으려고 이방법 저방법 다 쓰다가

마지막 한수를 두신 것이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런 공포를 그렇게 가혹하게 내 정신에 쑥 밀어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나는 공부에 완전히 빠졌다.

당시 살던 분당집은 3층집이어서 1층을 내가 연구실로 사용중이었다. 그 연구실에는 많은 이들이 날 만나러 오고 회의를 하고 뭔가를 모의하고... 그런데 바꿨다. 하던 일도 관두고 모임도 다 근절하고.. 그렇게 모든 책상위와 바닥까지 원서가 쌓여가고... 위로 올라가 밥먹고 아이들 챙기는 것외에는 하루종일 쳐박혀서 논문쓰고 책읽고... 그렇게 2017년, 2018년.... 을 보냈다. 공부하면 사람이 바뀐다는 사실을 지금 나는 확신한다. 무언가에 미친듯이 매달리는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닌 더 크고 강력하고 신성한 의지의 개입이라는 것도 나는 이제 확신한다. 나도 모르는 어떤 길로의 강렬한 이끌림에 나는 사육당하며 내 안의 것을 다 뽑아내고 새롭게 나에게 들이미는 그 양들을 채우려 내 호흡은 매일 가빴다.


그래도 안되서... 

뭐가 안되냐면, 매일 읽고 써도 밑빠진 독마냥 죄다 내게서 빠져나가버리니 계속계속 채워넣지 않으면 나는 공허한 빈껍데기같아서, 

마치 나는 날개도 없는데 내 안이 비어버려 풍선처럼 어딘가로 휙 바람에 휩쓸리거나 

지느러미도 없는 내가 바다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한채 물위에서만 부유할 것만 같아서 

두 발을 땅에 디뎌야 할 내가 공중으로 붕 뜬 것 같아서

나에게 양을 채우고 부피를 부풀리고 밀도까지 촘촘하게.. 

그렇게 나를 만들지 않으면 불안때문에 잠시도 날 붙잡아두지 못했던 그런 긴 시간들...

지금 돌아보니, 가는 길도 몰랐고 왜 그러는지도 몰랐던 그 시간들은

'충족되어야 할' 어떤 이유에 의해 그렇게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당시엔 온통 혼란과 원망뿐이었지만 그것이 신이 베푼 최선의 손길이었다는 것을,

당시에 걸어야 할 길은 그런 모양새로 걸어야 걸어지는 길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여하튼, 노트든 말이든 어떻게든 세상으로 튀어나온 씨앗은 스스로 발화한다. 그 강렬한, 강력한 자생력은 그 무엇도 막지 못한다. 


화려한 꽃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비집고 올라오는 잡초같기도 하고 아무리 털어내도 어딘가 숨어서라도 기어들어가있는 쌀알사이 작은 돌같기도 하고 아무리 용을 쓰며 매진해도 찰나에라도 고개를 들이미는 실수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 강렬한 생명력에는 나까짓게 감히 개입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창조에 쓰여야 할 도구가운데 하나일뿐.


그렇게 2019년 새벽독서라는 것을 혼자 낑낑대며 시작하고 5년째.... 

지금은 여럿이 함께 하게 되면서 

자기를 깨부수더라도 자신의 간절한 변화를 꿈꾸는 천상리더 박회장.

자기 안의 씨앗들을 터뜨리려 꿈을 성큼 현실로 당겨버린 천재작가 정더미.

세상은 변해라, 나는 나대로 이리 산다에 일관된 선한 천연기념물 김하늘의기운.

자기답게 살려는 꿈에 이끌려 현실의 자기답지 않음과 매일 전투중인 백만스펙트럼 김지둥.

눈빛에 천성을 담고 사람의 마음을 녹여대는 꿈밖에 모르는 인간고전 김진가.

세상경험 혼자 다 하신듯 풀어낼 때마다 부러움 한몸에 받는 빅웨이브 김계승.

날카로운 날하나 제대로 세상에 내놓으려 연신 발톱갈고 있는 자유본능 최발톱.

이들이 건율원을 만들었다.


프로들이 움직이니 뚝딱! 태어나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동반자'라 부르고 귀인, 소중한 이, 고결한 자, 위대한 과업의 실천가라고 여긴다. 우리는 모두 태양이 뜨기 전 새벽에 만난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그리고 자신의 정신을 나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동화되고 그렇게 어른인 내가 남겨야 할 무언가를 스스로 찾는다. 그렇게 손을 잡고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시뻘건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까지, 태양의 품에서 말이다.


모르겠다. 어떻게 된 것인지. 

그냥 몇주가 지나면서 이렇게 되었다.

모르겠다. 어디로 갈 것인지.

그냥 몇달이, 몇년이 흐르면 저렇게 될 것이다.

모르겠다. 어떻게 되어갈지.

그냥 건율원이니까,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는, 내가 되는 학교 건율원이니까 건율원처럼 자랄 것을 믿는다.


자기를 알아달라 말한 것도 아닌데, 

정말 이 지면에 처음 털어놓는 것인데

빨간 노트속 건율원 세글자가

빨간 불꽃속 건율원 씨앗이

그리고

빨간 태양 5년째 마중나가는 나의 뜻까지 담아

건율원이 마법처럼 빨간색으로

그렇게 자기 형상을 드러냈다!


이 모든 의미를 우주의 교신으로 전해 들었는지, 비밀같이 내 인생 어떤 지점에 숨겨져있던 건율원을 천재작가 정더미는 그림 하나로, 그것도 메인컬러를 빨간색으로 만들어 버렸고

이것이 건율원의 로고가 되었고

이 로고와 가치를 중심으로 건율원은 하나의 형상이 되었다. 

정신이, 서사가, 의미가, 가치가 하나의 형.상.이 되었다. 

세상에 탄생한 것이다. 

땅위에 발을 디딘 것이다. 

싹이 난 것이다. 

깊은 뿌리를 내린 뒤 드디어 땅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건율원의 로고와 가치


방법도, 계획도, 준비도 없다.

그냥 

자체발화력으로, 

자체자생력으로, 

자체영원성으로 

거대한 손길에 의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서 있을 것이다.


홈페이지도 만들고 프로그램도 만들고.. 뭐... 이런 거 해야겠지.

언제될지, 누가 만들지, 어떻게 만들어질지 나는 모른다.

싹이 나면 이쪽 줄기가 먼저 돋을지 저쪽에서 먼저 돋을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무조건 줄기도 돋고 줄기에서 잎도 자기얼굴을 드러낸다는 사실뿐.

그렇게 가는거지....

창조란 게 그런거지.

내가 하는 게 뭐가 있니? 

그냥 툭툭툭툭... 

묵묵히... 물주고.. 양분주고... 기뻐하고... 신기해하고... 사랑 듬뿍 주고...

그렇게 하는거지...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 길에 걸맞는, 어울리는, 자격이 갖춰진, 그런 어른으로.... 자신을 만들어가면 되겠지.

해야할 것이라곤

세상에서 젤 어려운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성장시키고 나를 키워내는 것뿐.

달리 할 게 없다.

그렇게 툭!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면

뚝딱! 만들면 되겠지.


세상은 분명 건율원을 통해 이루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라.

각자 자기답게 삶을 개척하라.

각자 자기 색으로 자신의 하루를 채색하라.

그것이 진정한 우주의 조화를 위해 너희들이 할 일이다.

우주는, 세상은 유일하게 진화를 목적으로 우리를 가르치니 뭐.. 이런 목적이 아닐까...


그래, 지금처럼 아무 것도 모르지만

그렇게 걸으면 되겠지....

우주의 거대한 힘이 움직이는데 내까짓게 감히 뭘 자꾸만 안다고 머리를 들이밀겠는가.

세상이 일을 도모한다는데 내까짓게 감히 뭘 간섭하고 판단한다고 고개를 쳐들겠는가.

그저

나보다 더 강한 어떤 의지에 매번 지면서 따라가면 되겠지....

하지만 

나는 바란다. 

간절하게.

그리고 

약속한다.


나의 부족이 건율원에선 겸손되게 해주시고

나의 부실이 건율원에선 재건되게 해주시고

나의 잉여가 건율원에선 나눔되게 해주시고

나의 책임이 건율원에선 쓰임되게 해주시고

나의 판단이 건율원에선 극복되게 해주시고

나의 욕구가 건율원에선 공공선되게 해주시고

나의 용기가 건율원에선 창조되게 해주시고

나의 능력이 건율원에서 가치되게 해주시고

나의 고독이 건율원에선 양분되게 해주시고

나의 고립이 건율원에선 진정한 '함께'를 위한 침묵되게 해주시옵소서....


 [지담북살롱]

책, 글, 코칭으로 함께 하는 놀이터,

삶과 사유, 사람의 찐한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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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 연재]

월 5:00a.m. [지담단상-깊게 보니 보이고 오래 보니 알게 된 것]

화 5:00a.m. ['부'의 사유와 실천]

수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목 5:00a.m. [MZ세대에게 남기는 '엄마의 유산']

금 5:00a.m. [느낌대로!!! 나홀로 유럽]

토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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