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에 대하여
낮술 한잔 거하게 걸치고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길.
딱! 마주친 두 눈.
차 밑에서 괜찮은거냐?
추위에 동그래졌구나...
이 걸음 멈추지도 가지도 못하고
어찌할 바 모르겠지만
모자에 패딩까지 두텁게 감싸고도 네게 줄 게 없어
어찌할 바 모르겠지만
차없는 나는 따뜻한 공간 만들어주지 못해
어찌할 바 모르겠지만
어찌하겠니.
너의 삶이 그러한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다. 라고 체념하는 나를 이해해주길 바란다면
오히려 가진 놈 티내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여운 눈으로 널 보는 자체만으로도
오히려 건방진 놈 티내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무거운 맘 살짝 비치는 것조차
오히려 비겁한 놈 티내는 것인가?
내 잠시 네게 준 눈길, 마음 서둘러 거두는 것은
너를 가여이 보지 않아야 하고 누군가로부터 남은 온기 고스란히 받고 있는 네가 기특해서일테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받고 있는 온기에 감사할 줄 아는지
나는 누군가로부터 받아야 할 온기를 외면하는 건 아닌지
나는 누군가에게로 주어야 할 온기를 주지 못하는 건 아닌지
나는 누군가에게로 주고 있는 온기에 생색내는 것은 아닌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는 치기어린 자책때문일테다.
작은 너는 작은 삶으로,
큰 나는 큰 삶으로.
그만큼 짊어져야 할 무게가 다르니 각자의 삶에서 '그렇게 사는거지'하며
우리 퉁치자.
네발달린 너는 네발달린 삶으로
두발달린 나는 두발달린 삶으로
서로 비교없이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우리 인정하자.
너는 내 도움 필요치 않고
나도 네 도움 필요치 않게
각자의 삶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 서로를 위한 것이라
우리 서로 칭찬하자.
저어기 멀리 시베리아에 사는 네발달린 것들의 추위는
지금 너희의 그것보다 훨씬 무섭다는 비교조차 하지 말자.
아래로 비교하며 위안받는 것은
위로 비교하며 동경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아래로 비교하며 우쭐하는 것은
위로 비교하며 움찔하는 것만큼 비열한 것이며
아래를 비교하여 손 내미는 것은
위를 쳐다보며 손 디미는 것과 매한가지이니
우리 또한 누구로부터는 위아래일 수밖에 없는 삶.
위아래 보지 말고 그저 각자 자기 삶부터 잘 챙기자.
내 떨고 있는 네게 도움줄 게 없는 것은
지금 네가 치르는 대가를 방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며
어쩔 수 없는 무력함으로 죽음 앞에 팽개쳐진,
개리와 새나라는 생명 둘에게 먼저 순서를 내준 터라
너는 네 위치에서 힘에 부친 동료를 품으라
나는 내 위치에서 그러한 이들을 품을테니
위아래 쳐다보며 정신놓고 한탄하는 힘을
내 삶을 온전히 만들고는 손내밀 수 있는 자신이 되는 쪽으로 보태자.
지금 떨고 있는 널 돕지 못한 죄로 내 다음 생애에
혹 네발동물로 태어날 확률이 높아진다면
우리집 개리, 새나처럼
화단 한 켠에서 죽어가는 녀석 데려다 키우는 나 같은 주인 눈에 띄길
따뜻한 자리 배 깔고 드러눕게, 추위와 먹거리 걱정없게 해주는 나 같은 주인 하녀로 부리는 기찬 삶이 오길
이런 바람이 욕심은 커녕 타당하다 인정되는 것은
내 크기만큼 내가 해내야 할 총량을 지켜낼 것이라는 야무진 책임감일수도
태생적으로 나보다 큰 이들이, 나는 못해도 그들은 할 수 있는, 그들의 몫을 제발 챙기라는 야무진 명령일수도
태생적으로 나보다 작은 이들 역시 그들의 몫만큼은 해내길 바라는 야무진 당부일수도
힘있는, 힘남은 모든 이가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이 힘없는 이의 몫까지 챙기길 바라는 야무진 용기일수도
이 모든 개체들이 각자의 몫을 알고 그 몫만큼 살아내는 것이
공존의 가장 근원이라는 삶의 이치때문일 수도 있겠다.
나는 두발동물로, 너는 네발동물로,
주어진 본능대로 사는 것이 서로를 위하는 것임을.
너는 온기남은 차 밑에서
나는 온기품은 집 안에서
그리 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다른 삶들이 통합된 조화임을 우리 이해하자.
그러니 우리, 누가 누구를 하등하다 가엽다 할 것 없이 잘 살고 있구나 믿어주기로.
그러니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에 위아래보지 않고 책임지는 삶을 살아내기로.
그러니 우리, 서로를 쳐다보며 자기 몫 잘 해내고 있다 당당하기로.
이로써 우리, 각자의 삶을 잘 살아주는 서로에게 감사하기로
그리 약조하자.
너는 따뜻한 온기남은 차 밑에서도 비굴함 느끼지 않아도 된다.
너는 먹다 버린 음식 뒤져 배채워도 굴욕감 느끼지 않아도 된다.
너는 네 영역 침입하는 녀석들과 치열히 혈투해도 죄책감 느끼지 않아도 된다.
너는 다친 네 몸 어디 하나 스스로 손보지 못해 괴로워도 좌절감 느끼지 않아도 된다.
너는 누구 하나 봐주는 이 없어도 외로움 느끼지 않아도 된다.
너는 너의 동료 누군가의 빈 자리에 슬그머니 엉덩이 들이밀어도 비겁함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게 네 삶이니까.
너는 네 삶에 허락된 규율에서 당당하라
나도 내 삶에 허락된 규율에서 그리할 터이니
너는 거기서 네발로,
나는 여기서 두발로,..
우리 사는 이치는
결국, 같구나...
같은 이치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것이 공존이구나...
* 개리와 새나 : 눈도 못 뜬 채 버려진 길고양이인데 현재 집으로 데려와 키우는 우리집냥이 2마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