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출입처 배정, 인생 첫 명함

Let's be hugged to 안기자

by 안이오

[EP4. 출입처 배정, 인생 첫 명함]


꽤나 길었던, 인턴 및 수습 기간이 끝났다. 그리고 드디어 나에게도 출입처가 배정되었다.

내가 근무했던 대구 지역은 보통 중구와 남구 지역을 막내 기자가 담당하도록 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중구와 남구에 있는 구청 및 경찰서, 사건사고 등을 챙기도록 임무가 부여되었다. 하지만, 본사가 포항이고 대구본부 체제로 운영되며 대구에 많은 인력이 배치되지 않은 여건이 반영되어 보다 많은 출입처가 배정되었다.


북구와 서구도 담당하게 되었고, 스포츠, 문화, 군부대 및 시민단체 등 신입기자로서 여러 기삿거리를 집중적으로 챙기기에는 버거울 만큼의 출입처를 배정받았다. 여러 사람과 기관을 만나고 출입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집중적으로 지역 사안을 챙기고 더 깊게 정보원들과 소통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도 감사했다. 이제는 선배들을 따라 선배 출입처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판단과 활동을 통하여 책임지고 내게 맡겨진 출입처와 소통하면서 취재하고 기사를 기획하여 작성한다는 것이 설렜다.


회사와 선배들은 첫 명함을 손수 제작해주셨다. 내 인생의 첫 명함이라 나 또한 설렜다. 출입처를 가면 명함이 필요하다며 사비를 들여 명함을 만들어주신 국장님도 계셨고, 또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나오는 명함도 있었다. 내 이름이 적힌 명함, 기자라는 직책이 붙은 명함이 자부심이었고 좋았다.


명함.png

출입처를 배정받고는 아침 일찍 먼저 사무실에 들려서 기사 스크랩과 하루의 취재계획을 지사장님과 선배들에게 보고하고, 주요 기사를 필사하며 기사 작성 연습을 했다. 그러고는 경찰서를 들리고, 구청 기자실로 가서 취재할 것들을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여 그때마다 올리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사실 놓치는 기삿거리도 많은데다가, 취재나 기사작성 실력이 다른 기자나 언론사에 비해 떨어지고, 기자라고 불리기 부끄럽고 죄송할만큼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것이 너무 아쉬웠다. 기자라면 무릇 정의감에 불타고, 기삿거리를 보면 눈이 돌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지체없이 물어보며, 멋드러진 기사를 써내는 것이 본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다지 그런 본질을 추구하고 발전시키기에는 어려운 환경이라는 생각에 젖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남을 탓하거나, 내가 속한 조직을 탓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 하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출입처가 많은 김에 더 많은 사람들을 더 넓게 만나고, 더 많은 내용들을 축적하며 미래를 대비하고, 더 곳곳을 누빌 수 있다는 즐거움을 살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꽤나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회사에서도 어린 기자의 고군분투를 인정해주기도 했다. 여러 이슈들이 있었지만, 내 연차에는 맡을 수 없는 금융권을 맡기며 은행권에 출입하고 기사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굉장히 불편한 자리여서 가기 싫기도 했다. 회사 상황이 좋지 않아 투입되는 꼴이었는데, 나로서는 하라는 대로 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앞서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내 연차 다른 기자들을 가볼 수 없는 곳을 내가 가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여러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을 살리기로 했다. 다른 기자들이나 다른 회사와 비교하기 시작하니 한없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자존감과 약간의 자격지심이 나를 괴롭히도록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단점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무엇보다, 그 단점에 집중할 때 단점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행복하지 않은데다가, 그런 생각에 갇혀 불평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내 모습이 비겁해보일 때가 많았다. 비교하기 시작하면 단점이 보이고, 때론 원망하듯 불평하고 싶은 순간과 대상이 많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장점을 좀 더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불평의 태도보다 내가 당장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것을 처음 배울 수 있었던 곳이 지역 언론 환경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순간순간 단점이 보이고, 불평하며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 찾아오지만, 그것보다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마음을 전환하고 태도를 전환하도록 마음을 먹는 것은 그때의 내 경험 덕분이다.


(다음 화 예고) : EP5. 기자협회 체육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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