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낮과 밤을 바라보는 교사의 불편한 시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by 낭만교사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낮과 밤”이라는 드라마이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범죄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6화부터 점점 영화 “마녀”와 같은 초현실적인 히어로물 같은 느낌이 든다.
“낮과 밤” 홈페이지에서 드라마 제작 의도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낮과 밤이란?
나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에 혼자 있어. 태양이 하얗게 빛나고 있는데 절대 틀릴 리 없는 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어. 나는 궁금해져. 지금은 낮일까 밤일까..

낮과 밤, 선과 악, 흑과 백.
명쾌하게 반대되는 말들이지만 인생은 이렇게 쉽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경계에 선 경우가 많고, 가장 문제가 되는 것도 이때다.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만큼 매력적이면서 위험한 게 또 있을까?

이 드라마에서는 선과 악,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악에 의해 태어난 선을 배운 그래서 선이 된다면 완벽한 선, 악이 된다고 해도 완벽한 악이 될 수 있는 존재가 경계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깨닫는 모습은 결국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이 아닐까.

낮과 밤 드라마의 간단한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28년 전 하얀밤 마을에서 공동육아를 명분으로 섬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였고 그 아이들 중 일부가 살아남아 경찰이 되어 초월적인 능력으로 자신들을 실험하고 친구들을 죽게 했던 세력에 대항하여 복수하는 스토리이다. 마치 영화 “마녀”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많은 어린아이들을 실험하고 죽게 한 사람들에 대해 복수하는 경찰은 선인일까? 아니면 악인일까?

영화와 드라마의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볼 때 확실한 선과 악이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런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굉장히 복잡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선/악 구조가 너무 분명한 단선적인 스토리 구조를 볼 때 마음 한켠에 불편한 감정이 생기고 해피엔딩으로 선한 캐릭터가 잘 마무리가 되면 기분이 좋지만 왠지 찜찜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그래서 영화와 드라마에서 복잡한 상황,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존재의 등장 그리고 그 선택과 결과를 보면서 열린 결말이 있을 때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되고 토론거리가 되어서 더 즐거운 것 같다.

그래서 몇 가지 영화를 통해 그런 재미있는 측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타노스라는 캐릭터는 참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타노스가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죽이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 악한 존재, 빌런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들어보면 우주의 조화를 위해서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못했을 때 자신의 타이탄 행성이 멸망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우주의 다른 행성들의 멸망을 막고자 그런 행동을 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타노스의 의도에 대해 선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타노스가 우주의 절반 생명체를 죽인 이후의 모습을 살펴보자 보통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며, 그 뒤에 숨겨둔 자신의 욕망이 드러나는데 타노스는 사건 이후 자신의 행성에 가서 밭을 갈고 초막을 짓고 살아간다. 보통 우리가 상상하는 악인은 그런 과정을 통해 우주를 지배하고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말이다. 예상과 다른 모습에 살짝 당황했고 정말 타노스는 선한 의도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했다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개인적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이런 생각은 영화에만 있지 않고 실제 역사 가운데도 등장했었다. 맬서스의 인구론을 보면, 자신의 저서에서 식량 생산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구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존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인류의 기근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기근으로 인해 인류의 수가 자연스럽게 감소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이 자연의 조화, 섭리로 보았다. 어찌 보면 타노스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그렇다면 그 의도는 선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비판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혼란스러운 감정과 생각도 든다. 과연 타노스는 선인일까? 아니면 악인일까?


두 번째 영화는 올해 2020년 나의 최고의 영화인 “소리도 없이”라는 영화이다. 영화 줄거리는 간단하고 평범하다.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근면 성실하고 전문적으로 시체 수습을 하며 살아가는 ‘태인’과 ‘창복’가 어느 날 단골이었던 범죄 조직의 실장 ‘용석’에게 부탁을 받고 유괴된 11살 아이 ‘초희’를 억지로 떠맡게 된다. 하지만 다음 날 다시 아이를 돌려주려던 두 사람 앞에 '용석'이 시체로 나타나고, 두 사람은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영화를 거의 다 보았을 때 드는 첫 번째 생각은 “재미있었지만 평범하다.”는 느낌이었다. ‘영화평론가가 극찬할 정도의 영화는 아닌데....’ 그런데 결말을 보면서 ‘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응원하고 선인이라고 생각했던 태인, 창복에 대한 결말은 나빴기 때문이다. ‘왜 감독은 이런 선택과 결말을 설정했을까? 감독의 의도가 뭐지?’라는 당황스러움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감독의 의도는 선과 악의 모호함, 악의 평범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선인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주인공(유아인)을 보면서 선량해 보이는 외모, 동생을 돌보는 성품, 말을 하지 않는 불쌍해 보이는 모습, 초회를 도와주는 모습이 그 기준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그는 범죄 조직 시체를 수습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초희를 유괴하고 돈을 받기 위해 부모님와 연락하는 유괴범일 뿐이다. 그리고 여자 순경을 때리고 땅에 묻어버리는 범죄자일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선인과 악인의 기준이 정말 맞는 것일까? 나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었다.

‘악의 평범성’에 대해 문제 제기한 한나 아렌트는 ‘이스라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다. 이스라엘 법정에 선 홀로코스트 기획자 아이히만은 희대의 살인마, 흉악한 범죄자의 모습이 아니라 자녀들을 다정하게 돌보던 아버지의 모습이었고 직장에서 승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샐러리맨과 같은 모습이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였다. 범죄 조직에서 시체 수습하는 일을 그냥 맡았을 뿐이고 유괴된 아이를 떠맡게 되어서 그냥 돈을 요구했을 뿐이다.라고 생각 없이 얘기할 뿐이다.
태인과 창복은 과연 선인일까? 아니면 악인일까?

이런 드라마, 영화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도 이런 모습들을 선으로 규정할 수도 있고 악으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요즘 시대는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어떤 기준으로 구분해서 판단해야 할지 매우 힘들어진 세상에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고민과 토론, 사유 과정을 거쳐서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교사로서 학교에서 그런 사유 과정과 토론 과정을 통해 이 사회와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도록 도와주고 졸업 후에도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행동하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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