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9.
꿈에서 막 깼다. 꿈속에서 나는 칠판에 반듯한 글씨로 적고 있었다. '칠판 낙서 금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시계를 보니 아직 이른 5시 30분이다.
11월 22일에 전면 등교가 시행된 이후 2주 나흘째를 맞고 있다. 처음엔 교문이 언제 다시 닫힐지 몰라서 불안했지만 어렵게 문을 연 교문은 쉽게 닫히지 않을 것 같다. 1500명 되는 전교생을 먹이느라 급식실은 11시부터 1시 반까지 전쟁터다. 촘촘하게 시정표가 짜이고 아이들은 그동안 흐지부지 되었던 10분의 쉬는 시간을 얻었다. 그 10분의 시간 동안 교실에선 많은 일이 일어난다. 쉬는 시간에 나는 어지간해서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데 꿈에서까지 칠판 낙서를 하지 말라고 쓴 걸 보니 무의식적으로 내가 힘에 부치는가 보다 생각이 들었다.
동학년 교사는 도움을 주고받는 공생관계지만 역으로 비교대상이 되어 내가 스스로를 다치게 할 수도 있는 존재이다. 아이들처럼 교사들도 각자 다른 능력을 타고 난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술에 소질이 있어서 계절마다 게시판을 화려하게 꾸미는 분도 계시고 타고난 유머로 아이들을 웃기게 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를 과감하게 하는 분, 카리스마로 아이들을 일 년 내내 확 휘어잡고 계시는 분도 계신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내가 해당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평소에 부러웠던 모습을 적은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남만 바라보고 살면 정작 내 교실에서 중요한 걸 놓친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이야기하기 전에 교사 또한 자기 그릇을 알고 중심을 잡지 않으면 자존감의 추락은 시간문제이다.
이번 생은 틀렸어.
이렇게 생겨 먹은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이 가진 장점을 곁눈질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교사로 살기 좋은 점은 매년 3월이 되면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제로 베이스 세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내년에는 칠판에 낙서를 금지하고, 복도에서 떠들지 못하게 해서 줄을 잘 세우고, 책상에 가림판에 손대지 못하게 하고.. 음.. 또... 아이들에게 금지시킬 목록을 정하고 내 권위를 세울 방도를 구해 본다. 어차피 나는 카리스마 있는 교사가 되기는 애초부터 글렀다. 힘에 부치더라도 이번 생은 내가 생긴 대로 이렇게 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