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3.
초등학교 졸업식에는 졸업 영상이 하이라이트다. 경기도에서 교사인 친구 중에 "아직도 그걸 하는 학교가 있어?" 혀를 내두르지만 그렇다. 우리 학교는 아직도 그 힘든 걸 한다. 작년에는 한 분이 도맡아서 며칠 작업했는데 올해는 각 반에서 40초 분량씩 찍고 모아서 편집하는 것만 수고해 주시기로 했다. 10개 학급이니 그것만 모아도 6,7분짜리 영상이 나온다.
아이들과 영상을 만들기 위한 회의가 사흘이나 걸렸다. 특히 배경에 쓰일 곡을 선정하는 과정은 후보곡이 10개나 나올 만큼 치열했다. 재미를 추구하는 남자아이들의 뽀로로 노래와 유행과 멋을 추구하는 여자 아이들의 걸그룹 노래가 최종적으로 맞붙은 결과 에스파의 '넥스트 레벨'이 선정되었다. 나는 이 노래가 생경했지만 제목부터 중학교로 진급하는 아이들에게 의미 있을 것 같아서 한마디 했더니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영상을 찍기도 전에 이미 지쳤다.
노래에서 우리가 쓸 40초 분량을 정하고, 가사를 바꾸는 단계에 돌입했다.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바꾼 내용은 대충 이렇다.
상상도 못 한 졸업, 공부는 끝도 없어.
맛있는 급식, 난 놓칠 수 없어.
I'm on the next level. 저 너머의 문을 활짝 열고
인서울에 닿을 때까지. 붙어라 붙어라 붙어라
졸업을 축하해. 6학년 7반 꽃길만 걷자
이 중에 내 의견은 맨 끝에 '꽃길만 걷자' 뿐이다. 아이들은 '병맛'을 살려야 된다며 재미를 추구했고 누군가 '인서울'을 내놓자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바로 통과되었다. 6학년 아이들 입에서 '인서울'이라니 어른들이 그만큼 많이 하는 말일 게다. 노래 팀과 안무 팀을 뽑고 아이들의 목소리로 녹음까지 마친 후, 우리는 각 파트를 어디에서 어떻게 찍을지 콘티도 짰다. 검은 도화지로 학사모와 글자 팻말을 만든 후,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 놀이터, 교문, 급식실, 화단 등 학교 곳곳을 다니며 휴대폰으로 촬영을 했다.
그렇게 40초 영상을 만드는 데 회의부터 촬영까지 꼬박 2주가 걸렸다. 드디어 오늘, 영상 편집을 하겠다고 손든 아이와 3차에 걸쳐 수정을 거듭한 끝에 완성본을 제출하고 졸업 영상은 우리 손을 떠났다. 그 아이가 편집본을 가지고 올 때마다 우리는 손뼉을 치며 환영했고 영상을 같이 보며 의견을 나누었다. 졸업 여행은커녕 교문 밖을 한 번도 나가지 못해서 아쉬움이 가득한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길 바란다.
졸업 영상은 어떤 대단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학교 여기저기를 누비며 웃고 떠들고 하면서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하는데 더 큰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