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이 필요해

2021. 12. 2.

by 그런썸

전면 등교가 시행된 지 열흘째이다. 졸업을 한 달 후 앞둔 6학년 아이들은 안 그래도 이맘때면 고삐가 풀릴 참인데 요즘 교실 모습은 가관이다. 우리 반뿐만 아니라 동학년 선생님들도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계셨다. 그렇게 이쁘다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나. 6학년은 이름값을 한다.


모닝 페이지를 읽어 보았더니 아니다 다를까 친구들을 매일 볼 수 있어서 좋다고도 했지만 어수선한 교실 분위기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주로 모범생이고 조용한 아이들이다. 어제는 마음먹고 일주일 동안 교실 생활을 관찰한 소감을 이야기하고, 몇 가지 규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운을 띄웠다. 바람은 내가 잡았지만 아이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회의를 통해 아이들이 정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에 오지 않은 빈자리에 가서 앉거나 주인이 없다고 물건을 함부로 다루지 말자.

둘째, 다른 사람의 물건을 허락 없이 가져가거나 몸에 손대지 말자.

셋째, 손을 씻은 뒤 다른 사람에게 물을 뿌리지 말자.

넷째, 책상에 세워 놓은 가림판을 치거나 떼지 말자.


두 번째만 내가 제시한 것이고 다른 의견들은 아이들한테서 나왔다. 칠판에 문장을 적은 다음 동의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서 다수가 찬성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물 뿌리는 게 얼마나 재미있다고요." 장난기 많은 남자아이가 말하자 몇 명이 동조한다. "그럼 물 뿌리고 싶은 사람, 손?" 하자 개구쟁이 남자아이들이 손을 든다. "그럼 너희끼리만 해. 다른 아이들 피해 주지 말고." 하자 와아 하고 웃는다. 얼마나 지켜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불편하게 생각한 것을 누구나 이야기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교실 생활을 고민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안 지키면 어떡해요?" 누군가 걱정스럽게 묻는다. "안 지키면 어떻게 할까? 선생님이 벌을 주면 될까? 그럼 어떤 벌이 강력하지?" 아이들이 선뜻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이성적인 선생님이니까 나랑 이성적인 대화를 해야겠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할 거야. 그래도 안 되면? 또 얘기하면 되지." 교사가 이성을 잃어버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경험으로 안다. 그런 씁쓸한 경험들을 통과하며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지만 한편으론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친절하지만 엄격한 선생님. 내가 마음속에 그리는,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이다. 학기 초에 아이들을 만나면 "우리 선생님은 착해."라는 말 대신 "좋은 분이야"라는 표현을 쓰라고 일러 준다. 아이들이 잘 쓰는 '선생님이 착하다'는 말은 자기들 마음대로 선생님을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 담겼기에 나는 그 말이 탐탁지 않다.


"미안하지만 나는 내가 제일 소중해. 선생님이 있어야 너희들도 있거든.
그런데 그건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자신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기 바란다."


라고 당부한다. 학교는 공동체로서 지켜야 할 규율을 강조하지만, 개인이 불행한 우리는 있을 수 없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도 넉넉히 품을 수 있는 법, 나는 아이들이 누구보다도 자신한테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한때 모든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사랑받는 교사가 되어야 하는 줄 알았었다. 그 당시 나는 나에게 얼마나 가혹한 사람이었던가. 나의 존재는 늘 희미했고 항상 반 아이들이 나보다 우선이었던 시절, 나는 열심히 가르치기는 했어도 행복한 교사는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아이들과 한 발 떨어져 나의 마음이 어떤지 살필 줄 안다. 아이들과 한 교실에 있어도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평온을 찾으니 그때부터 아이들의 존재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규칙을 정한 지 하루가 지난 오늘의 교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시끌벅적한 쉬는 시간, 아이들의 장난은 여전하고 나는 어제와 같은 말을 반복한다. 눈이 있으면 좀 보라고 어제 정한 규칙을 칠판에 붙여 놓았지만 별 효과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슬그머니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 다치지만 않고, 싸우지만 말고 너희가 즐거우면 그걸로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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