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판 위에 핫도그

2021. 11. 10.

by 그런썸

보일러를 안 때고 자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니 몸도 무거운 것 같고 코도 막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아이들이 등교하는 날인데 코로나면 어떡하지? 한번 고개를 쳐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곧 잡아먹을 것 같다. 격리 해제 전에 두 번이나 검사를 해서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격리가 풀린 딸은 아직도 비닐막 건너편에서 지내게 하고 있는데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거실 소파에서 이제 막 노트북을 켜는 남편에게 주말에 검사를 한번 더 받으러 가자고 하자 또? 한다. 당신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되는 일을 하니 나 같은 걱정은 없어 좋겠소.


지난 월요일, 격리 해제가 되어 열흘 만에 출근했을 때, 마치 내가 무슨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듯 동학년 선생님들이 맞아 주셨다. 그런 동료들의 얼굴에서 읽은 건 당혹스럽게도 두려움이었다. 자신한테도 나 같은 일이 언제든지 닥칠 수 있다는 두려움, 그건 불안정한 환경에서 줌 수업을 며칠씩 해야 하고, 아이들이 등교하는 날엔 동료들의 희생이 필요한 상황에 놓인다는 뜻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지만 딱히 힘이 될 말을 떠올릴 수 없었다.


나는 한번 겪어봤어도 두려운데 아직 안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얼마나 더 두려울까.



이번 주 6학년은 수목금 사흘 등교다. 오늘을 기다렸던 아이들이 속속 교실에 들어왔다. 지난주 내내 격리 기간 동안 자리를 비웠다가 출근한 터라 아이들을 보고 반가웠지만 왠지 입 열기도 조심스러웠다. 8시 50분, 아이들이 모닝 페이지를 쓰는 시간이다. 일기 숙제는 없는 대신 매일 아침마다 모닝 페이지를 써야 집에 갈 수 있으니 아이들은 목숨 걸고 뭐라도 써서 낸다. 아이들을 보며 조용히 숨을 고르니 며칠 전에 읽었던 소설 '필경사 바틀비'가 생각났다. 우직하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를 말하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그가 왜 순간 떠올라 나에게 용기를 준 것일까. 바틀비를 생각하자 나도 그가 해냈던 그 정도의 일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로소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급식실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교무실 실무사님이 허둥지둥 우리 반을 찾으셨다. 우리 반 학부모 한 분이 학교로 전화를 하셨는데 발레 학원 선생님이 확진을 받았으니 우리 반 S를 집으로 빨리 보내라고 하셨단다. 오물오물 밥을 먹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눈이 똥그래진다. 밥을 아직 다 먹지도 못했는데 급식실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아, 무엇이 우선인지 재빨리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아이는 그렇게 밥을 먹다가 집으로 갔다.


아이 식판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핫도그가 그날 오후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아이들에게 수요일 급식은 맛있는 게 나오는 특별한 날이다. 오늘도 식단표 앞에 모여서 핫도그가 나온다고 좋아했는데. 식판 위에 핫도그가 삶은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별일이야 있겠어' 하다가도 그 별일을 당해 본 사람으로서는 얼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내일 아침 '선생님, 음성입니다. 등교할게요~'라는 메시지를 받기를...



keyword
이전 07화줌 전쟁을 겪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