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를 줄이다
요즘 마트 냉동 코너가 가면 에어프라이어용 냉동식품이 참 많아졌다. 뒷면 레시피에도 이제 프라이팬을 사용할 때의 레시피와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할 때의 레시피가 각각 따로 적혀 있다. 집집마다 에어프라이어 없는 집이 없고, ‘에프’라고 했을 때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것 같다. 나는 필*스에서 에어프라이어를 처음 출시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대세 가전이라는 그 흔하디 흔한 에어프라이어가 우리 집엔 없다.
지인의 집에 갔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배달 음식을 주문했고, 식기류를 준비하는 것을 돕기 위해 부엌에 들어섰다. 지인의 부엌에는 오븐이라고 칭할 수 있는 가전이 3가지나 있었다. 광파오븐, 생선용 그릴 오븐, 에어프라이어. 이 세 가지 도구의 차이가 얼마나 크길래 오븐을 3가지나 구비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는 14년 된 작은 가정용 오븐이 있다. 올해 나는 결혼 9년 차인데 10년이 넘은 오븐이라는 것은 자취할 때 5년 정도 사용하던 오븐을 결혼하면서 그대로 가지고 와서 9년을 더 사용했다. 이 오븐으로 나는 베이킹도 하고, 생선도 굽고, 냉동식품도 데우고, 아침마다 빵도 데운다. 감자튀김도 하고, 떡도 굽는다. 우리 집은 이렇지만 아마 대부분의 가정에는 에어프라이어도 있고, 오븐도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느 날 TV 채널을 돌리다 에어프라이어를 팔고 있는 채널을 딱 보게 된 당신.
현란한 말솜씨의 쇼호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머머머! 세상에! 이게 정말 기름을 한 방울도 넣지 않고 튀긴 거라고요?! 이거 이거 소리 한번 들어보세요?!”(파사삭)
여러분 그거 아세요? 우리가 만두 하나 튀길 때 먹게 되는 기름이 000칼로리예요!!
여러분 이 피자 치즈 늘어지는 거 보이시죠? 이제 피자 비싸게 나가서 드시지 마시고, 집에서 에어프라이어에 10분이면 돼요!
오븐으로 이거 데우려고 해 봐요, 예열 시간 기다려야 하지, 또 조리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애들은 막 빨리 안주냐고 난리지..."
여기서 잠깐 에어프라이어에 대해 잠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에어 프라이어 라... 참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이름이 다한 가전이 아닐까 싶다. 얼마나 이름을 잘 지었는지 요즘 출시되는 오븐들은 다 '에어프라이어 겸 오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다.
모든 오븐의 원리는 '공기의 대류’이다. 가스가 열원이든, 전기가 열원이든 결국은 갇힌 공간의 열을 데워 대류를 일으킴으로 써 음식을 익히는 원리인 것은 똑같다. 다만 에어프라이어는 팬을 달아 공기의 대류를 좀 더 강하게 하고, 열이 데워지는 공간이 일반 오븐에 비해 작기 때문에 조리 시간이 짧은 것뿐이다. 그런데 에어+오븐이 아닌 프라이를 붙이니 마치 공기로 튀긴다는 인식을 심어 준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냉동식품은 이미 한번 기름에 튀겨졌다 나온 것이 많다. 이미 그 음식에는 기름이 붙어 있는 상태이고, 열의 대류로 그 기름이 데워지면서 2차로 튀겨지는 것이지, (한번 산화된 오일을 또 산화하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공기만으로는 튀기는 효과가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나오는 게 오일 스프레이 아닌가? 오일 스프레이를 해주면 더 맛있다고 아마 그 쇼호스트도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에어프라이어는 바스켓에 튀길 음식을 담는 형식이라서 사이즈가 큰 요리가 불가능해 오히려 다양한 요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오븐으로는 많은 양의 뿌리채소 구이도, 이전에 쓴 글에 나온 라따뚜이 같은 요리도 가능하고, 제법 큰 사이즈의 생선요리도 가능하다. 식빵도 굽고 피자도 구울 수 있는데 에어프라이어는 결국 냉동식품의 섭취만 늘리게 되는 것 아닌가? 예열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븐으로는 에어프라이어로 할 수 있는 요리를 포함한 더 많은 종류의 요리를 할 수 있으니 오븐이 있다면 굳이 에어프라이어를 추가로 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홈쇼핑 쇼호스트의 달콤한 멘트에 이끌려 에어프라이어는 어느새 당신의 부엌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에어프라이어가 왔으니 만두 한번 튀겨볼까!!!! 하고 에어프라이어에 전용 종이를 깔고 만두를 넣은 당신.
'에게? 5개밖에 안 들어가네? 집에 식구가 몇 명인데 이걸 언제 굽고 있어~~~ 그냥 프라이팬에 구워야겠네.’
그렇게 방치된 에어프라이어 싱크대 한구석에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작은 걸 사서 그렇구나 하고 대용량 에어프라이어를 또 샀을 수도 있겠다. 쓸모가 없어진 작은 에어프라이어는 폐가전으로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중고 어플에 에어프라이어를 검색하면 스크롤을 해도 해도 계속해서 물건이 나온다. 신중하지 못한 소비가 낳은 결과인 셈이다.
모든 공산품은 만들어질 때, 운반될 때, 폐기될 때 탄소가 배출된다. 나의 불필요한 소비가 그저 내 주머니만 가볍게 한 것이 아니라, 지구에도 작은 해를 가한 것일 수 있다.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의 책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공급을 결정하는 것은 수요이기 때문에 소비자 역시 물건 소비에 있어 좀 더 신중해져야 한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에어프라이어가 갖고 싶어진 사람이 있다면, 당신의 근처 마켓 앱을 켜보는 걸 추천한다.
중고마켓에서 에어프라이어를 장만했다면 기존에 방치했던 오븐은 자원이 재사용될 수 있도록 당신도 당신의 근처 마켓 앱에 올리는 것도 잊지 마시길! (윙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