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천천히 달리는 거야.
쭉 뻗은 길, 마침 교통체증도 없다. 속도가 높아지는 지도 모르게 차는 직진본능에 충실해진다.
무심코 눈앞에 보이는 숫자. 80.
언제부터 80이었지? 아마, 몇 차례 80 숫자가 적힌 신호판을 지나쳤을 것 같다.
별 신경을 안 쓰고 달리고 있었다.
80? 원래는 100으로 쓰여있는 속도간판이었다.
100만큼 허락되었던 속도가 지금은 80만큼만 달리란다.
이유가 있단다.
조심해야 하는 조건들이 좀 있단다.
안개가 조금 있고
빗방울이 조금 흩날리고
바람이 조금 세어졌단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은 100이 아닌 80이면 된단다.
도로는 쭉 뻗어 있고, 교통체증도 없어서 차는 직진본능에 더욱 충실하려 하는데
워 워! 그러면 안 된단다.
100이 넘어가기 십상인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란다.
딱 80을 넘지 말란다.
살아가다 보면
이렇게 속도를 살짝 줄여야 할 때가 있다.
기분 같아서는 더 달리고 싶은데
더 달려도 괜찮을 것 같은데
조심해야 할 때가 있다.
내가 가는 길이 잘 안 보일 때
나의 방향이 이 방향인지 잠시 혼돈스러울 때
내가 나아가려 해도 상황의 거센 바람이 나를 뒤흔들 때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도 힘도 갑자기 떨어질 때
삶의 네비가 잠시 먹통일 때
그럴 때는
속도를 살짝 줄여야 하는 때이다.
늦어질까, 나아가지 못할까
오히려 뒷걸음질 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속도를 살짝 줄여야 하는 때가 지나면
어느새 달라져 있을 것이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 방향이 맞는 것인지
감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나를 흔드는 바람도 잠잠해지고
내 발과 내 눈은 다시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럴 때
바로 그때는 이제 다시 속도를 조금 올려도 되는 때이다.
조금씩 시야가 트인다.
바람이 잦아드는지 스쳐가는 나무들이 잠잠하다.
더 이상 차창에 빗방울이 튀지 않는다.
이제 다시 100으로 달려도 된단다.
그럼 조금 다시 속도를 좀 내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