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뽀득여사 Jun 23. 2024

'아이는 보지도 않고 따박 따박 잘도 받아 먹었다'

시간이 지나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그 장면에 나의 감정과 통찰들로 강력한 방부제 코팅이 되면 빛이 바래지지 않는 것 같다.  


아주 한 참 전에. 딸이 세 네 살 정도나 되었을까. 그날 딸의 머리모양, 입고 있는 옷, 작은 손에 꼭 쥐어 있던 크레파스 그리고 아이전용 밥그릇과 숟가락이 동영상을 보듯이 떠오른다.  딸은 작은 이케아 탁자에 앉아서 그 때 심취 해 있던 텔레토비 친구들을 그려내느라 손바닥은 이미 초록 빨강 노랑등으로 알록달록하다. ‘쓱싹 쓱싹’ 작지만 다부지게 크레파스를 쥐고는 꼼꼼히도 색을 칠한다.


딸의 배꼽시계가 내 손목시계보다 중요한 것이 엄마의 본능. 상담가로서의 내 본분으로는 아이를 식탁으로 데려와서 스스로 밥을 먹게 해야 하는 것이 옳겠지만, 어디 인생이 이론대로만 되던가 말이다. 상담가가 아닌 초보엄마로서 그 당시 나는 ‘이론과 실제’라는 ‘가까워 지기에는 너 먼 당신’ 같은 상황이 얼마나 많았던가!


밥과 반찬을 쟁반에 챙겨서 딸 옆에 앉는다. 딸은 엄마가 옆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작업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타이밍 이었는지 ‘쓱싹 쓱싹’ 더 속도를 낸다. 앙증맞은 콧잔등에 살짝 땀기운도 어린 듯 하다. 아마 보라돌이, 또비, 나나, 뽀의 머리안테나 부분을 칠하기는 고이도의 집중과 기술이 필요하리라.      


작은 숟가락에 밥을 뜨고 그 위에 잔멸치, 달걀말이, 잘게 썬 김치, 게맛살 중 하나를 토핑처럼 올리고는 딸의 입주변으로 가져간다. 딸의 손이 멈추지 않은 채로 아이는 꽃망울 같은 조그만 입만 벌린다. 그리고는 ‘앙’하고 한 입에 숟가락을 비운다. 여전히 손은 ‘쓱싹 쓱싹’ 입은 ‘오물 오물’.  오물거림이 좀 잦아 들면 나는 또 밥 위에 다른 반찬을 올리고는 아이의 입주변으로 숟가락을 가져간다. 아이는 또 아까와 똑같은 방법으로 ‘앙’하고 깨끗이 숟가락을 비워낸다. 또 다시 ‘쓱싹 쓱싹’ ‘오물 오물’.


어린 은 밥 한 그릇을 다 비울 동안 단 한번도 엄마건네숟가락다보지 않았다. 

그냥 따박 아 먹었다. 


순수(粹). 무한신뢰!!


그 순간 초보 엄마인 나는 ‘순수한 무한 신뢰’가 이런 것이 아닌가라는 통찰에 가슴이 벅찼다.

단 한순간도 믿어 의심치 않는 것. 온전히 맡겨도 당연히 괜찮다는 믿음. 순수한 믿음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순수한 신뢰, 순수한 믿음이라는 어쩌면 너무 어렵고 거창한 개념을 ‘오물 오물’ 받아 먹는 어린 딸이

 어린 엄마에게 일깨워 주는 그 때 그 장면이 오늘 새삼 소환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푸르다'는 파랑이냐 초록이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