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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Jul 02. 2024

낯선이의 웃음 선물



들으려고 듣는 것이 아니라, 들려오는 대화들이 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과 섞여 있는 공간에서 종종 ‘키득키득’ 혼자 웃게 되는 경우가 있다.

 상관 없는 사람들에게서 뜻밖의 깜짝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문득 최근 나를 웃게 만들었던 낯선 이 들의 대화 몇 컷들을 떠올려 보려 한다.



## “여보 천천히 빨리 사고 와.”(백화점 숙녀복 매장에서)


우리는 마음의 소리가 가끔 창살을 비집고 튀어 나올 때 가 있다. 작정하고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튕겨 나오는 것이다. 

마음의 소리(말)와 머릿속 소리(말)가 순간 뒤섞여 앞뒤가 안 맞아 버린 어느 남편의 애절한(?) 말에 웃음이 빵 터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여름상품 빅세일'이라는 플랜카드가 나부끼는 더운 여름날 주말. 

○○백화점은 요즘같이 오프라인 매장 존폐 위기의 상황에서 잠시 수혈을 받는 때라 할 수 있겠다. 하기는 파 한단 까지도 새벽배송을 하는 나 조차도 그 시간에 그 장소를 헤매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미 백화점에 한참은 머물렀을 것을 추측하게 하는 쇼핑백들. 양 손에 크고 작은 백화점 쇼핑백을 들고 부인을 뒤따르고 있는 남편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반면 남편 보다 두어 걸음 앞서가는 부인의 저 가볍고도 당찬 발걸음을 보라!

단언컨대,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간 것은 절대 아님을 밝히는 바이다. 단지 빅세일에 걸맞는 상품이 정직하게 있는지 세심히 살펴보고 있었을 뿐!

좌우로 상품을 탐색하느라 부인의 단발 머릿결이 가벼이 나풀거린다. 

그 뒷통수에 대고 간절한 남편의 말이 허공에 머문다.


“여보, 천천히 빨리 사고 와~~”

 

부인은 남편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못들은 척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대답 없이 어떤 매장으로 잰걸음을 걸으며 들어갔다. 남편의 간절한 마음의 소리 ‘빨리’는 이미 공중으로 흩어진 듯 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 남편은 그 날 몇 개의 쇼핑백을 트렁크에 조용히 실었을지! 




## “어머, 언니 저기하면 저기 한 대요.”(동네 카페에서)


커피가 기가 막히게 맛있는 우리 동네 ○○○카페. 

그 카페의 시그니처 커피인 ‘○○○ 크림 라떼’는 무시무시한 칼로리의 거부감도 능히 타파할 만큼 참 맛있다. 달달하고 부드럽고 시원한 라떼 위의 소담한 크림을 티스푼으로 야금야금 떠 먹는 행복이란, 뭐 행복이 별 거 있나 싶은 여유를 선사받는다. 


동네 카페라서 오전 시간에는 주로 여자 손님들, 구체적으로 보자면 오전 시간 여유 있는(애들 학교가고, 신랑 회사가고) 마담님들이 많다. 옆자리에 얼굴 고운 두 마담들이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다.

 절대 들으려고 듣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밝히는 바이다. 아마, 비좁은 공간에 사회적 거리 내지는 정서적 거리와는 상관없는 테이블 수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마담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아들 딸 이야기, 남편 이야기, 연예인이야기 등등)를 한다. 

그러다가 내 귀에 꽂이는 말!


“어머, 언니 저기하면 저기 한 대요.” 


엥? ‘거시기가 거시기가’ 하는 사투리도 아니고. 나름 교양 있고 정감 있게 서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이 ‘불명료하면서도 포괄적이며 추측난무’한 문장의 향연이란! 

뒤이어 들려오는 동네 언니분은 “그래? 진짜 대단하다.” 당연히 단번에 알아듣는 반응이다.  

역시 ‘친한 사이’의 ‘친한 대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런 옛말이 나왔나 보다. 

‘콩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 듣는다’




## “엄마, 나 나이 드니깐 대구 못 갈 것 같아. 나 숙제 해야 하고 엄마 아빠도 바쁘니까.” (KTX 편의점에서)


하루일정으로 가족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하루를 알차게 놀자며 아침 일찍 KTX를 타기로 했다. 

꼭 이런 날은 일찍 눈이 떠진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인지, 일상을 벗어나는 설레임 때문인지 정신이 몽롱했다. 역시 기차여행은 ‘간식과 수다’가 빠질 수 없지! 정신도 차릴 겸 기차여행의 정석을 따르기도 할 겸 우리는 역에 있는 편의점을 들어갔다. 


커피, 과자, 젤리 등등을 신나게 고르고 있는데, 

예쁜 공주머리띠를 한 앙증맞은 아이(일곱 살 정도로 추정)와 젊은 엄마도 기차의 정석을 따르고 있었다. 

또 한번 말하건대, 절대 듣고자 의도 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유혹적인 각종 과자들의 진열 칸에 다닥다닥 모여 있었기에 서로의 귀가 무방비로 열려 있었을 뿐.


“엄마, 나 나이 드니깐, 이제 대구 못 갈 것 같아. (왜?) 나 숙제 해야 하고 엄마 아빠도 바쁘니까.”  


이미, 내 귀에 ‘나이 드니깐’이라는 말이 들어오면서 ‘큭큭’ 나의 횡경막은 팽창수축을 하며 웃음이 터져나왔다(소리내지 않고 웃다 보면 횡경막의 운동이 더욱 격렬해진다). 

앞니가 쏙 빠져서 가뜩이나 옹알옹알 귀여운 말투의 예닐곱 살 여자아이가 사뭇 진지하게 말하니 더욱 웃음이 나왔다. 아이 입장에서 대구 가는 것(할머니네 일까?)이 싫어서인지, 아니면 진짜 숙제가 많아지는 것이 부담인지 알 수 는 없다. 요즘 나도 모르게 ‘나이 드니깐’이라는 말이 불쑥 나와서 ‘나이 타령’을 자제해야겠다 하던 참이다. 그런데 인생 살이 몇 년 차 땅콩만한 아이가 ‘나이 타령’을 진지하게 말하니 어찌나 웃기던지!

귀여운 아이 덕분에 나는 더욱 유쾌해 진 마음과 든든한 간식 주머니를 챙기고 KTX에 오를 수 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인심이 좋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느라 피곤도 하지만 이렇게 낯선 이들이 깜짝 웃음을 툭툭 줄 때 도 많다. 그래서 오늘도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웃고 시작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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