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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Jul 14. 2024

완벽한 귓속말

초등 사회성 그룹치료 


이 그룹은 유난히 학년 범주가 넓어서 가장 어린 1학년 아동부터 5학년 형까지 섞여있다. 

이 그룹의 가장 막내 형진이(가명)는 체구도 작은 편이고 앞니는 두 개나 쏙 빠지고 울고 떼를 부리기도 하는 등 제 나이 보다 더 어려 보였다. 

형진이는 ‘가위 바위 보’에서 지기만 해도 울음을 빵 터트리거나, 몇 주째 ‘사목 게임만(오목과 비슷한 보드게임) 하자’고 우기기도 하고, 읽기는 가능하지만 쓰기가 아직 안되어 글자를 삐뚤빼뚤 그리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진이는 형, 누나들과 함께 하는 그룹수업을 싫다 하지 않고 잘 참여하고 있다. 

형진이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최소한 큰 형 누나들과 당당히 함께 할 수 있는 이유는 숫자감각이나 논리적인 이해력은 상당히 뛰어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 능력에 비해 사회성 발달에 필요한 상황대처의 유연성이나, 타인과의 타협이나 공감 부분이 취약하다는 점. 

그리고 발음명료도가 낮은 점 등의 숙제가 있는 아동이다.

이러저러한 편차가 있는 형진이.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형진이를 정의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라는 것이다.   



화요일 그룹치료 시간. 


미리 계획된 과제활동이 끝나면 이십 여분 정도 친구들과의 ‘자유놀이 타임’이 있다. 

그 시간에는 아이들이 오늘 어떤 자유놀이(또는 교구활동)를 할지 서로 의논하고 타협하고 주체적으로 상황을 경험하는 취지로 진행된다. 아이들에게는 이 시간이 가장 하이라이트이다. 


“스머프 사다리 게임 하자.”

“국기게임 하자.”

“폭탄카드 하자.”

“접어 접어 하자.”

“주차장 놀이 하자.”

요즘 이 그룹아이들이 각자 밀고 있는 놀이들이다. 

그 와중에 형진이는 워낙 초지일관, 일편단심 스타일이라 몇 달째 ‘사목게임 할래.’라고 소리 지르듯 말한다. 

“그건 너무 많이 했잖아. 오늘은 다른 거 하자.”

‘그래, 가위 바위 보로 정하자.’

‘다수결로 정하자.’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사회성그룹수업에서 터득한 방법대로 이렇게 저렇게 의견을 모아보려 애쓰고 있었다. 

형진이의 얼굴은 붉어지고 찡그림으로 찌푸려졌다. 큰 눈망울에는 물기가 가득 찼다. 앞니가 쏙 빠진 입술은 삐쭉 삐죽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한다. 금방이라도 ‘앙’하고 울음보가 터질 듯하다.

 다행히, 몇 달간의 수업이 헛되지 않았나 보다. 가까스로 울음을 꾹 삼키느라 작은 콧구멍 두 개가 빠르게 벌렁벌렁 움직인다. ‘그래 그래, 형진이 잘 해내고 있네.’ 나는 마음으로 막둥이 형진이를 응원하고 있었다. 

형진이는 형과 누나들을 설득하기에 역부족이라고 느꼈는지, 결연한 표정으로 내게(그날 형진이는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가왔다. 형진이는 나에게 귓속말을 하고 싶어 했다. 


작은 형진이의 얼굴이 내 왼쪽 귀에 거의 딱 붙어 있다.  

‘하아 하아’

뜨겁고 축축한 입김과 작은 숨소리가 내 귓바퀴를 간지럽힌다. 

형진이는 뭔가 선생님한테 속에 말을 하고 싶은데 금방 할 말이 정리가 되지 않나 보다.

‘하아 하아’


아이들은 동생 형진이가 ‘빵’ 울음보를 터트리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선생님 귀를 독차지하고 숨만 불어대는 모습에 질투가 나기도 한 듯 한 표정들이다.


그리고 마침내 형진이는 내 귀에 대고

“근데 *#&#해서 &**##@@” 라고 속삭였다. 


미안해서 어쩌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가뜩이나 발음이 취약한 데다 최근 앞니는 빠졌고 결정적으로 울음을 억지로 꾹꾹 참으며 내 귀에 아예 입술이 붙여져 있는 열악한 듣기 상황인지라, 전혀 가늠이 안 되는 말이 이어졌다. 


바로 그때, 정면에 앉아 있던 보조 선생님이 그만 ‘푸핫’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응? 나는 흘깃 형진이를 곁눈질로 보았다. 


앗! 이 귀염둥이를 어쩌지!


형진이는 작은 두 손바닥을 단단히 펴서 자기 귀를 꼭 막고는 

내 귀에다 열심히 말을 되풀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귓속말의 진수’가 아닐는지!


‘선생님에게만 내 말을 들려줄 거야’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귀염둥이 형진이는 자신의 두 귀까지 꼭 막았을까!


형진이는 할 말을 다 했는지 긴장과 기대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형진이에게 나는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응 그래, 형진아 알았어.” 


형진이는 이제야 안심한 듯 앞니 빠진 입을 꽃잎처럼 벌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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