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망사항 Nov 13. 2023

단풍


11월 초 2박 3일 일정으로 낙동강에코트래킹(영주, 봉화, 안동 일대)에 다녀왔다. 인턴으로 근무하는 생명그물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을여행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가족여행이 되었다. 언제나 패키지여행보다는 자유여행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운전을 안 해도 되고, 밥집을 찾지 않아도 되니 정말 편하다며 동거인이 기뻐했다. 좋은 분들과 함께했고, 지역에 대한 설명과 가이드까지 해주니 나 역시 만족스러웠다.

첫째 날 점심을 먹은 후, 해발 1277미터 청옥산에 올랐다. 등산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언제 내가 산에 올랐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지경인데, 이 산은 처음부터 가팔랐다(등산 초보에게 너무합니다). 아니, 어쩌면 이럴 수가 있지? 처음 시작하는 길은 보통 잘 닦여 있기 마련 아닌가? 이 경사는 언제 끝나지? 하는 마음으로 헉헉대며 올라갔다. 한참(?)을 힘들게 올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딱 걷기 적당한 길이 나오니 시작했고, 그제야 주변의 풍경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우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저 멀리 울긋불긋한 가을 산도, 높은 하늘도 아름답구나! 이걸 보기 위해서 여기까지 올랐던 거다. 힘들었지만 뿌듯하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찬희랑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수업 빠지고 온 보람이 있지?

우리나라 국토에서 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그 산은 평소에 초록색 계열이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마치 거실 책장 속 전집처럼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책이 빌트인 된 벽이라고 할까?). 봄이 되어 나무마다 어린잎이 만드는 그 연두 빛은 나의 최애색깔이다. 가을이 되면 형형색색 다채롭게 변신한다. 마치 그 직전에는 산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람들이 산에 가장 크게 반응한다. 단풍에 물든 색깔은 '00 색'이라고는 표현이 안될 만큼 섬세하고 아름답다. 봄이면 '꽃놀이', 가을에는 저마다 '단풍놀이'를 간다.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드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감탄하며 바라보면서도 단풍이 드는 원리도 잘 모르고 있었던 거다. 어제는 '단풍'을 키워드로 이것저것 검색해 보았다. 우리 맨눈에 나무는 가만히 서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매 순간 살아내기 위해서 잠시도 멈추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평소에는 인지하고 못하고 있는 사실이다. 햇빛, 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나무가 '광합성'을 하고,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어낸다. 광합성은 실로 식물에게 감탄이 절로 나오는 위대한 과정이다. 인간이 대단한 존재라고 으스대지만 우리는 햇빛, 물, 이산화탄소를 가지고 영양분을 만들어낼 수 있던가 말이다.

나무는 겨울을 '물이 어는 계절'이라고 받아들인다. 물을 운반하는 수관은 줄기 껍질 부분 바깥에 위치하고 있는데, 기온이 내려가면 수관이 얼어서 부피가 팽창해서 터질 수가 있다. 이것을 '동해를 입었다'라고 표현한다. 일교차가 커지는 가을이 오면 나무는 치밀한 계산을 한다. 앞으로 계속 광합성에 집중할 것인지, 멈출 것인지. 광합성을 유지하는 데에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데, 햇빛, 물 양이 충분하지 않은 가을, 겨울에는 노력 대비 제대로 효과를 내기 어렵다. 이때 나무의 선택은 광합성을 멈추는 것이다. 잎자루 안쪽에 '떨켜층'을 만들고, 떨켜층의 몸을 단단하게 키운다. 물과 양분이 이동하는 통로를 완전히 틀어막아 관을 막히게 해서 엽록소가 광합성을 못 하게 막는다. 햇빛, 물이 부족한 상태에서 광합성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엽록소는 점점 힘을 잃게 된다.

힘을 잃은 엽록소 대신 원래 가지고 있던 색깔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 바로 '단풍'이다. 일교차가 크고 추워질수록 단풍이 더 빨리 만들어진다. 나무마다 성분(안토시아닌 색소는 붉은색, 카로틴 색소는 주황색, 크산토필 색소는 노란색 단풍을 만들어 낸다)의 차이가 있어서,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고, 단풍나무 잎은 새빨갛다. 빨간색의 스펙트럼도 넓다. 평소의 연두, 초록 빛깔도 너무 아름다운데, 사람들은 잠깐동안 달라지는 색에 더 열광하는 느낌이다. '평소에도 더 많이 관심 가져 주세요!'라고 나무가 말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다. 나무는 사람의 관심을 피하고 싶을 것 같다. 대신 '제발, 환경에 더 신경 써주세요!'라고 외칠 듯하다.

7월부터 9월까지의 평균 온도가 계속 상승해서 예전보다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시기가 짧아지고 있고, 단풍의 색이 점점 희미해지고 늦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고, 몇 도에서 멈출 것인지는 우리의 행동에 달려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평균 기온이 상승하고, 강수량 증가와 강수 패턴의 변화 같은 기상이변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이런 환경의 변화가 나무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인간에게 좋지 않은 것은 자연에도 좋지 않다(물론 그 역도 성립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도 자연도 달라진 환경에 어떻게든 '적응' 하겠지만, 적응하는 속도보다 변화의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 문제다. 어쩌면 올해 내가 본 단풍이 앞으로 볼 단풍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우울한 생각이 든다. 저,, 괜히 쓸데없는 걱정 하는 거 맞지요? 누가 대답 좀 해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손 떨리는 10월 폰 요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