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첫번째 예약!
"엄마, 나 잘그렸지?"
"오, 멋진데! 그럼 이제 색칠도 해볼까?"
며칠 동안, 미주는 부엌 식탁에 앉아 민박집에 놓을 가구나 집기를 알아보느라 바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그런 미주의 맞은 편에는 샬롯이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숙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샬롯은 그저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크게 보채지 않았다.
"어디 고른 물건 좀 볼까?"
설거지를 끝낸 루이가 미주의 옆에 앉으며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월세 계약이나 사업자 등록 등 서류 작업을 루이가 맡아주기로 한 덕에 미주는 오롯이 민박집을 꾸미고 운영할 계획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침대는 이거 어때?"
"흐음. 괜찮긴 한데. 가격이 좀 나가긴 하네."
미주는 이제 막 큰 방 2개에 놓을 침대를 고른 참이었다.
주는 큰 방 2개를 각각 남성용과 여성용 도미토리로 운영할 생각이었다. 물론, 큰 방이라고 해봤자 2층 침대 3개를 놓으려면 배치를 아주 잘해야하는 크기였지만 말이다.
미주가 도미토리에 두려고 결정한 침대는 2층 위까지 나무 판으로 막혀있고, 1층과 2층 모두 커튼을 달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오, 비쥬. 이거 완전 퍼스트 클래스 좌석 같은데?"
"철제 침대에 싸구려 매트리스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나는 좀 힘들더라구. 침대와 매트리스 만큼은 좋은 걸로 해주고 싶었어. 그리고 여행을 몇 개월씩 오래하는 그런 여행자들도 있잖아. 우리 민박집에서만큼은 자기 방을 가진 것처럼 푹 쉬게 하고 싶기도 했고."
"흐음, 철제면 모를까 이 침대는 커서 3개가 들어갈지 모르겠어. 캐리어 보관할 곳도 필요하고."
도미토리로 만들 수 있는 방은 여성용 1개, 남성용 1개였기 때문에 6인용으로 운영해야했다. 유럽 동행은 보통 2인-4인을 많이 구하기 때문에 6인용은 되어야 두 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이 좁은 방에 여행자들은 저마다 커다란 캐리어나 배낭을 들고 들어올 것이다. 더군다나 여자 손님들이라면 쇼핑을 하면서 짐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손님들은 공중부양하며 다녀야할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미주는 다시 도면과 노트북 모니터를 번갈아 노려보며 폭풍 검색에 돌입했다. 루이는 그런 미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더니 곧 샬롯을 챙겨 잘 준비를 했다.
"이야, 너무 좋은데?"
마침내 미주는 민박집에 필요한 가구를 골라 무사히 들여놓을 수 있게 되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지 불과 2주일 만이었다. 한없이 느린 프랑스의 시스템을 생각해보았을 때, 미주가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거기에 자잘한 인테리어 소품까지 더하자 휑했던 4층 공간은 그녀가 꿈꾸던 프랑스에 온 느낌이 확 드는 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도대체 이런 건 언제 다 산거야?"
"틈틈히. 언젠가 민박집을 할 거라고 생각해서."
미주는 결혼을 하며 파리에 살면서 종종 집 근처에 있는 골동품 가게에 들리곤 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좁은 신혼집에 둘 수 없는 물건들은 창고 한 켠에 쌓아두기도 했고, 아이가 닿지 않는 곳에 두기도 하며 하나둘 모아왔던 소품들이었다.
"준비성이 철저하네."
부엌 정리를 막 마친 루이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월세를 아끼려면 하룰도 빨리 세팅을 마치고 개업을 해야했기 때문에 계약 전후로 정신없이 일했던 두 사람이었다.
"이 정도면 사진 찍을만 하지?"
"응. 그럼 한 번 찍어볼까? 오늘 빛이 아주 좋아."
루이는 가방에서 무거운 카메라를 꺼내 들고, 현관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예약 사이틍 올릴 사진을 찍는 것도 루이의 역할이었다.
오래된 현관 아래에는 미주가 오래 전,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했던 작은 카펫이 깔려있었다. 정교한 무늬가 짜져있는 카펫의 가장자리에는 금색술이 둘러져있었는데, 민박집에 들어오면서부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싶었던 미주의 마음이 드러났다.
<비쥬네>라고 적힌 작은 팻말이 걸려있는 현관을 열고 들어오면, 한국식으로 신발을 벗을 수 있게 신발장을 준비해두었다. 그렇게 신발을 벗고 들어와 왼쪽으로 꺾으면 거실과 부엌이 나온다. 열 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식탁, 5명이 앉을 수 있는 기다란 소파가 있는 이 공간은 여행객들의 쉼을 위한 라운지이자 그리운 한식을 먹는 식당이 될 곳이었다.
벽에는 커다란 창문 2이 2개가 있고, 그 밖으로는 맞은편 건물이 보였다. 맞은편 건물 또한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터라 파리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미주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파 위로 에펠탑 사진을 걸어두었다. 그 옆으로는 커다란 코르크 보드도 걸어두었다. 보드에는 지난 9년 동안, 휴가 때마다 유럽 구석구석을 다니며 하나씩 샀던 열쇠고리나 엽서 등을 걸어두었다. 이국적인 풍경이 가득한 미주의 콜렉션까지 더해지니 휑했던 흰 페인트벽이 꽉 찼다.
부엌에 장식도 할 겸 둔 각종 향신료나 와인 병까지 꼼꼼하게 찍은 루이는 방을 하나씩 찍기 시작했다. 2개의 큰 방은 각각 작은 발코니가 하나씩 있었는데, 이 곳에는 예쁜 화분을 걸어두었다. 미주와 루이는 결국 방 안에 각각 3개의 2층 침대를 넣는데 성공했다. 1층 침대 아래로는 큰 서랍이 2개 있어, 캐리어와 짐을 각자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여행객들이 공중부양하는 불상사도 막을 수 있었다. 못해도 100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거울과 작은 액자를 몇 개를 걸고나니 무척이나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난 이 방이 제일 좋더라. 가장 작고 해가 잘 안들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조명이 더 사는 느낌이야."
루이가 연신 셔터를 누르며 말했다. 가장 작은 방은 가족룸이었다. 1층 침대를 2개 두었는데 친구 둘이 온다면 그대로 사용하면 되고 연인이 온다면 붙여서 쓸 수도 있다. 세 명의 가족이 이용한다면 서랍을 잡아당겨 보조침대를 1개 더 사용할 수 있다. 개별 욕실이 딸려있기 때문에 가족이 많이 이용할 것으로 생각해둔 공간이었다. 침대에 옷을 걸 수 있는 옷걸이가 있는 도미토리와 다르게, 가족룸에는 옷걸이와 화장대를 따로 두었다. 조명과 액자가 더해지니 신혼 여행으로 와도 손색이 없을 방이 되었다.
"고마워."
미주는 촬영용 조명을 들고 보조를 하던 미주는 새삼스럽게 루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민박을 시작하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고, 루이가 주말까지 모두 반납하며 매달려준 덕분에 오픈 준비를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뭘 새삼스럽게."
"당신 이렇게 사진 찍는 모습 보기 좋아."
"하하."
사진작가의 꿈을 갖고 있었던 루이는 호주 여행을 왔다가 카페에서 일하는 미주에게 그만 반해버렸다. 두 사람은 골드코스트의 뜨거운 태양 만큼이나 강렬한 사랑을 했다. 루이는 미주의 모습을 쉴새엇이 카메라에 담았고, 사진 속의 미주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예쁘고 사랑스러웠었다.
[루이, 해야할 말이 있어.]
짧고 뜨거운 연애를 마치고, 루이는 프랑스로 돌아갔고 두 사람은 메신저로 연락을 이어가던 어느 날, 미주는 루이에게 꼭 해야할 말이 생기고 말았다. 루이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모든 준비를 마치는대로 파리에서 혼인 신고를 했고, 루이가 살던 작은 스튜디오(원룸)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시간은 무척이나 빠르게 흘러, 곧 샬롯이 태어났다.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야했고, 루이는 세 사람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그는 사진작가의 꿈을 포기하고, 친척의 소개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덕분에 미주는 어린 샬롯을 키우는 재미를 오롯이 느끼며 전업주부로 살았고, 휴일에는 이따금 근처 유럽을 여행하며 추억을 쌓으며 살 수 있었다.
여행을 갈 때마다 루이가 가족 사진을 찍을 때도 고마웠지만, 지금 미주의 민박집을 위해 접어두었던 재능을 십분 발휘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루이는 어쩌면 지금쯤 사진작가로 자리를 잡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으니까.
"자, 이제 집으로 가자. 샬롯도 데려와야하고 쓸만한 사진을 골라서 보정도 해야지."
"응."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겨울은 지났지만 아직은 쌀쌀한 파리. 관광객들이 아주 많지 않은 초봄에 오픈해 일이 손에 익을 때쯤 여름 성수기가 찾아올 것이고, 그 때 초기 투자금을 회수하리라는 다짐을 해보았다.
[예약 확정. 가족룸]
다음 날, 숙박 예약 사이트에 사진과 상세 정보를 올리고 예약을 받기 시작하자마자 2명의 손님이 예약을 했다.
[박기자 외 1명.]
'왜 2명이지?'
예약을 확인한 미주는 당황했다. 분명히 1명이 예약하기로 되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이 술술 진행된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첫 손님부터 꼬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