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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Oct 08. 2024

안부 속 숨겨진 질문

괜찮나요?

"네? 다음 달 7일에 손님이요?"


진경이 놀러오기로 한 날, 늦은 오후에 비쥬네 민박집에 묵고 싶다는 손님이 나타났다. 손님은 진규의 지인이었다.


"네. 저랑 같이 한국에서 학부 연구생으로 연구하던 동기인데, 영국에서 박사 과정 중인데요. 모처러 휴가를 받아 유럽 여행을 하려는데 제가 파리에 있다는 걸 알고, 파리에 하루 들리겠대요."


"파리에서 그럼 하루만 머문다는 건가요?"


"네. 어차피 유로스타 기차를 타면 런던에서 2시간 반이면 온다는군요. 다음 날은 야간열차를 타고 로마로 이동하겠다고 해요. 원래는 런던에서 로마로 비행기타고 가려고 했는데, 기차로 바꾸고 파리에서 하루 중간에 들리는 것 뿐이에요."


"그날 언제쯤 도착하실까요?"


"파리 북역에는 1시 50분에 도착한다고 해요. 저희 부부가 북역으로 마중갈 생각이에요."


미주는 머릿속으로 진경이와의 약속과 새로운 손님의 체크인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방법을 부지런히 찾아보았다.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간단히 구경을 하며 오면 민박집에 도착할텐데 진경이를 배웅해야할 시간과 겹칠 수도 있지 싶었다. 하지만 어차피 진규의 지인이라고 하니 방 안내나 열쇠를 건네는 것 등은 진규에게 맡겨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진규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편의를 보아달라고 부탁해야겠다고 말하려는데 진규가 뜻밖의 부탁을 했다.


"그 친구가 파리는 처음이라는데. 사장님이 혹시 괜찮으시면 야경투어를 해주실 수 있나요?"


"야경투어요?"


"물론 한 명이 하룻밤 자는 거라 번거로우시겠지만 부탁드리면 안될까요? 저희가 처음 파리 왔을 때, 사장님과 함께 한 야경투어가 정말 좋았거든요. 프랑스 역사나 문화에 대해 같이 설명해주셔서 이후 관광지를 갈 때마다 큰 도움이 되었었어요. 사장님 아니었으면 그냥 스쳐지나갈 것들도 눈에 보이고 너무 재밌더라고요. 꼭 좀 부탁드릴게요."


소라가 옆에서 함께 야경투어를 부탁하고 나섰다. 야경투어는 성수기 기준으로 주 2회 진행하기로 되어있었고, 비수기에는 손님들의 상황에 따라 주 1회 정도 진행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최소 참가자가 3명 이상은 되었는데 1명을 위한 투어는 처음이었다. 


평소 깔끔하게 민박집을 이용하고,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던 진규와 소라가 하는 부탁이라 미주도 꼭 들어주고 싶었다. 사실 야경투어야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민박집이 바쁜 것도 아니니까. 미주는 4일 일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어차피 진경은 다음 날, 오전 비행을 위해 초저녁에는 승무원 지정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근처 지하철 역까지 진경을 배웅하고 민박집으로 돌아오면 여유있게 야경투어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요. 그런데 제가 그날, 친한 동생이 놀러오기로 했어요. 오후 2시부터 5시 정도까지 같이 있기로 했거든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그 시간에 민박집에서 동생을 만나고 있을게요. 혹시 근처에서 식사를 먼저 하고 싶어하실수도 있고 하니, 지인분과 함께 편한 시간에 민박집으로 와주세요. 그리고 쉬었다가 야경투어를 가죠."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무척이나 바쁠 4일이 성큼 다가왔다. 미주는 미리 재경과 함께 먹을 식사와 다음 날, 총 세 명의 손님들이 먹을 조식을 준비하고, 남성 도미토리를 점검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 차질없는 하루를 단단히 준비했다.




"꺄악! 언니!!!"


지하철 역에서 나온 진경이 미주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작년 여름에 만나고 처음 만나는 두 사람이었다.


"피곤할텐데 여기까지 온다고 고생했어."


"아니야. 운이 좋았어. 솔직히 만석이었으면 피곤해서 언니 만날 엄두도 못냈을거야. 하지만 손님이 별로 없었고 갈 때도 6명만 맡으면 된다구. 정말 이렇게 운좋은 파리비행이라니!"


비행을 마치고 돌아와 피곤할 법 하지만 진경은 나들이를 나온 사람처럼 쌩쌩하고 즐거워보였다.


"그나저나 민박집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야? 샬롯은 어쩌고?"


민박집으로 가는 길. 미주의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걸으며 재경이 정말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샬롯은 이제 벌써 학생이야. 슬슬 엄마보다 친구를 찾을 나이라고."


"벌써 샬롯이 그렇게 컸어? 마냥 아기일 줄 알았는데..."


"원래 애들은 금방 크잖아. 이제 학교 적응도 잘 하고 있어서 나도 내 일을 해보려고."


그동안 밀린 근황을 나누다보니 어느 덧 민박집 건물에 도착했다.


"자, 이 건물 4층이야. 계단으로 가자."


"계, 계단으로!?"


"아니면 여기 작은 엘리베이터 타도 괜찮아."


미주는 건물 한 쪽에 있는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보이며 말했다.


"이건 엘리베이터라기보다는 무슨 관짝 아니야? 폐쇄공포증 있는 사람은 무서울 것 같아."


"큭. 맞아. 보통 여기에는 짐을 싣고 올려보내지."


그렇게 미주와 재경은 계단을 따라 4층까지 올라갔다. [비쥬네 민박집]이라는 작은 팻말이 걸려있는 쇠문을 열자 밝고 넓은 비쥬네 민박집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우와. 엄청 깔끔하고 좋은데?"


재경은 한국식으로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갔다. 널찍한 식탁, 작은 파리의 주택가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가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매번 비행 때마다 머무는 호텔과 다르게 주인장의 취향이 물씬 담겨있는 민박집 내부를 재경은 찬찬히 둘러보았다. 부엌 카운터 테이블 위에는 미주가 프랑스의 한 와이너리에서 구입했던 빈 와인 병들에 드라이 플라워가 꽂아 두었고, 언제든 투숙객이 먹을 수 있는 바나나와 사과가 있었다.  


출처 : pixabay


"이런 건 또 언제 모았어? 이렇게 꾸며놓으니 너무 예쁘다."


부엌에서 거실을 둘러보던 재경은 미주가 유럽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차곡차곡 모아온 기념품 마그넷들이 빼곡하게 모아져있는 보드판 앞에 멈춰섰다. 몇몇 도시들은 승무원으로 일하는 재경이도 비행으로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었고, 몇몇 도시들은 비행기가 닿지 않는 작은 곳이라 가본적이 없는 곳이었다.


"사실 다른 기념품은 비싸기도 해서 마그넷을 하나씩 모은건데. 이번에 민박집에 붙여놓으려고 가져와보더니 꽤 되더라. 그동안 남편이랑 샬롯이랑 참 많이도 다녔던 것 같아. 프랑스가 워낙 휴가가 많은 나라잖아? 그냥 기차를 타거나 저렴한 비행기를 타며 다녔었어."


미주는 전날 준비해놓은 잡채 재료를 냉장고에서 꺼내며 대답했다. 찌개는 데우면 되고, 밑반찬이야 접시에 담으면 되지만 잡채만큼은 바로 볶아야 맛있기 때문이었다.미주는 미리 불려놓은 당면과 버섯, 그리고 작게 채썰어놓은 야채를 차례대로 후라이팬에 볶기 시작했다. 마그넷을 다 구경한 재경은 사진과 메모지로 꾸며진 또다른 보드로 향했고, 고기와 야채가 익으면서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아휴, 냄새 너무 좋다. 그나저나 이 메모들은 투숙객들이 쓴거야?"


[깍두기 너무 맛있어요~ 잘 쉬다 갑니다!]


[루이 사장님 그리고 샬롯과 함께한 야경투어! 최고였어요~ 프랑스어와 영어 야경투어가 제공되는 민박집은 비쥬네 뿐입니다ㅎㅎ 물론 저는 못 알아들었지만요!]


처음에는 미주가 여행하며 찍었던 유럽 사진이 듬성듬성 꽂혀있는 코르크 보드였는데, 투숙객들이 퇴실하면서 남긴 메모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몇 팀 방문하지 않았지만, 여행객들은 파리의 민박집에 자신들의 흔적 남기는 것을 무척이나 즐거워한 탓에 벌써 꽤 많은 메모가 쌓여있었다.


"응.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한 두명이 쓰다보니 다들 의무처럼 쓰고 가더라고. SNS나 인터넷 카페에도 후기를 가끔 올려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덕분에 전기세랑 월세는 내고 있어."


"이야. 이제 오픈했는데 벌써 자리를 잡은거야?"


'툭.'


"이번 여름을 한 번 지나봐야 알겠지. 여름 한철 장사해서 1년을 먹고 산다고는 하던데. 어디 1년 먹고 살만큼 벌 수 있으려나."


미주는 다 볶아진 잡채를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리며 말했다. 그리곤 잡채 위로 먹음직스러운 깨를 뿌렸고, 냄비에서 보글보글 한 번 끓인 김치찌개를 대접에 먹음직스럽게 담아냈다.


"우와. 정말 집밥을 했잖아! 물론, 언니 집에서도 밥 얻어먹곤 했지만 민박집 주인이 하는 음식이라 그런지 왠지 음식 때깔도 다르게 보이네."


"그래? 특훈을 제대로 했나보다. 민박집 오픈하면서 한국에서 엄마랑 이모가 오셨잖아. 김장 김치며 참기름이며 재료를 다 가지고 오신데다 메뉴도 다 짜주고 가셨어.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제대로 음식을 배웠지."


"으음~ 이게 집밥의 맛이지. 외식할 때면 한식당 찾아서 다니지만 집에서 만든 밥은 또 다르더라고."


재경은 흰 밥에 김치찌개를 크게 한 숟갈 떠서 올려 비빈 후 입에 가득 집어넣으며 말했다. 꼬들거리는 무말랭이까지 입에 넣으니 맵고 달달한 맛이 돌며 더욱 군침이 돌았다. 바로 잡채를 한 젓가락 들어 먹으니 탱글탱글한 면발에 고소한 참기름 향이 입안에 퍼졌다.


"그나저나 어머니는...... 잘 계시고?"


얼핏 들으면 재경은 친구 사이에 흔히 할 수 있는 인사치례같기도 했다. 하지만 미주와 엄마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재경이 던진 질문은 단순한 안부인사가 아니었다.




- 언니, 친구도 사용할 수 있는 티켓이 있긴 한데. 버디 티켓은 가족 할인처럼 엄청 할인하지는 않아. 공식 홈페이지에서 사는 것보다 50% 할인 받는 정도야. 그리고 공항에서 기다렸다가 자리가 나야 탑승할 수 있는데 그건 내가 계속 체크해서 알려줄게. 다행히 샬롯 생일이 비수기라서 분명 빈 자리가 있을거야.


- 그래, 고마워. 돌잔치는 날짜가 정해져있지만 나나 루이나 며칠 일찍 타거나 늦게 타는 건 상관없거든. 비행기값을 아끼는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부탁 좀 할게.


- 알았어. 그럼, 내가 수시로 연락할게.


샬롯의 돌이 다가오자 기자는 한사코 돌잔치를 한국에서 해야한다고 고집했다. 결혼식도 도둑 결혼하듯 시키는 바람에 친척들 보기에 체면이 안선다는 말이었다. 돌잔치를 기회삼아 루이를 친척들에게 인사시켜야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 기자의 주장이었다.


미주의 결혼은 개혼(한집안의 여러 자녀 가운데 처음으로 혼인을 치름.)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임신과 비자 문제, 경제적 상황 등이 맞물리면서 식을 올리지 않았었다. 대신, 파리에서 흰 원피스를 입고 혼인신고를 했었다.


- 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결혼을 하니? 사촌인 혜지는 강남에서 결혼식 한다더라. 신혼여행은 발리로 간다고 하고. 혜지는 대학 공부를 2년 했지만, 넌 4년 공부 했잖아. 외국 유학까지 갔다온 애가 도대체 왜그래?


실시간으로 결혼 진행 상황을 전해듣는 기자는 그런 미주의 가슴에 못 박는 말을 했다. 미주도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대학을 4년이나 다니는 바람에 그 많은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20대 후반까지 나이만 속절없이 먹어버렸다는 것을. 외국 유학이 아니라 호주 카페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허드레일을 했다는 것을. 그리고 화려한 결혼식을 치를만한 돈도 여력도 미주에게는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미주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꿋꿋하게 처리해야할 일들에만 집중했었다.


샬롯이 돌이 되었을 무렵에서야 미주는 타국 생활과 결혼생활, 육아라는 거대한 변화에 겨우 적응해나갈 수 있었고, 기자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갑자기 외국 남자와 결혼해 아기를 낳았다고 하니 기숙을 비롯한 친척들의 걱정이 컸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에 파리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오자고 결심했다.


- 언니, 내일 공항갈거지? 내가 방금 확인해봤는데 손님이 별로 없더라고.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천까지 가는 건 문제 없을거야.


- 고맙다, 재경아. 네 덕분에 한국에 편히 가보네.


재경은 약속대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미주에게 연락을 해서 예약 현황을 공유했고, 미주가 무사히 인천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승객이 많지 않았던 덕에 루이와 미주는 샬롯을 데리고 무사히 인천에 도착해 친정에 머무르며 돌잔치를 치를 수 있었다. 문제는 돌잔치가 다 끝나고 일어났다.


- 아니, 지금 부조를 다 가져가겠다는거야?


- 얘는 남는 돈이 어디있다고 그러는거야? 사람들이 와서 뭐 박수만 치다 갔니? 다들 부페 먹고 갔잖아. 어떤 집은 세상에 돈은 10만원 내고 다섯 식구가 와서 밥 먹고 갔었다. 거기다 사진 찍는 비용도 있고 알게모르게 나간 돈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


- 요즘 돌잔치도 안하는 추세인데 엄마가 원하는대로 150명이나 불렀어. 상차리는 비용이나 메이크업, 사진 촬영, 한복 같은 돈은 내가 다 입금했고. 더군다나 답례품도 100개나 준비했단 말이야. 그런데 엄마가 부조를 다 가져가면 어떻게 해?


- 어머, 얘 좀 봐? 그럼 네 자식 돌잔치하는데 그 정도 돈도 안쓰니? 그리고 손님들이 와서 부조한건 다 엄마가 뿌린 걸 거두는거야. 억울해할 것도 없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루이는 잠투정하는 샬롯을 달래며 그 옆을 서성거렸고, 미주의 아빠는 기자를 두둔하고 나섰다.


- 그래, 미주야. 이제 미후 제대하면 학교도 복학해야하는데 등록금이 필요하다. 돌잔치해서 돈이 몇 억 남는게 아니잖아. 몇 백만원 겨우 남는 거 엄마가 좀 쓰라고 해라.


- 뭐? 엄마가 좀 쓰라고 해? 그러려고 불렀어? 미후 등록금 마련하려고?


- 으이구.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 네가 결혼식을 한국에서 했으면 좀 좋냐. 돌잔치 한 번 겨우 했으면서 뭐가 그렇게 억울하냐, 응? 돌잔치는 사람들이 잘 오지도 않는구만. 이제 그만하고 얼른 들어가 샬롯 재워라. 오늘 얼마나 피곤했겠냐?


기자는 미주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더이상 대화할 가치가 없다는 기자의 신호였다.


- 또 당했구나.


부조를 다 받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먼곳을 왔으니 비행기값이라도 보태주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집안 형편이야 미주도 다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시차도 맞지 않는 프랑스에서 한국에서의 돌잔치를 준비하고, 돌쟁이 아기를 데리고 긴 시간을 날아온 미주의 그간 노력을 폄하하는 기자의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더군다나 감정기복이 심한 기자와 연락하며 돌잔치를 할 장소를 알아보고, 식수 인원을 확정하고, 샵을 고르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시집간 것이 못내 미안하여 기자의 비위를 맞추며 준비했는데, 기자는 여전히 미주를 철부지 어린애 취급하며 무시했다.


- 재경아, 내일이라도 파리로 돌아갈 비행기를 타고 싶은데 자리 있는지 확인해줄래?


- 어, 언니! 돌잔치 잘했어? 내일 돌아간다니... 너무 빠듯한거 아니야? 좀 쉬었다 가지.


- 아니야.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는게 나을 것 같아서.


- 그래? 잠깐만.


미주는 그날 하루가 고단했는지 깊이 잠들어버린 루이와 샬롯 옆에 누워 재경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캄캄한 방 안에서 핸드폰 불빛만이 미주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눈이 부셔서일까? 피곤해서일까? 아니면 정말 의지할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서일까? 재경의 연락을 기다리는 미주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 언니, 다행히 자리가 많이 있어. 파리까지 갈 때도 나란히 붙여서 갈 때도 있을거야.


- 그래? 잘됐다. 고마워.


- 응. 지금 한국 시간으로는 밤 10시일텐데, 얼른 자. 내일 공항으로 가려면 일찍 움직여야할텐데.


미주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샜고, 새벽 동이 트자마자 짐을 챙겼다. 루이는 영문도 모른채 갑자기 짐을 싼다고 바쁘게 움직이는 미주를 보며 샬롯에게 분유를 먹였다. 그렇게 세 사람은 아침밥도 먹지 않고 인천 공항으로 갔다. 미주는 그날 이후 1년 동안, 기자와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재경은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서야 파리 비행을 갔을때 왜 미주가 급하게 파리로 돌아왔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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