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조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우리 집에 이웃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어르신들이 자주 놀러 오셨다. 농사일로 바쁘셨던 할아버지보다 여장부 같으셨던 할머니의 손님들이 훨씬 많았다. 국민학교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현관은 동네 어르신의 신발로 가득 차 있었고, 방 안은 안갯속처럼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할머니와 이웃들은 담소도 나누시고 하소연도 하시고, 또 화투를 치시며 무료한 오후를 함께 보내곤 하셨다.
명절이면,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른인 할아버지를 뵈러 서울과 강원도에서 친척들이 많이 찾아오셨다. 명절은 사람들로 북적일 때가 제 맛이지만, 음식을 만들고 내오느라 집안의 여자들은 거의 쉬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나 우리 자매들은 손님이 오시는 걸 그리 반가워하지 않았다.
대학생 때, 여든을 갓 넘기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2년 차이로 세상을 떠나시자, 그 많던 손님들의 발길도 뚝 끊어졌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처럼 침묵이 흐르는 현관에는 단출히 가족의 신발만 놓여 있었고, 안개가 걷힌 듯 뿌옇던 담배연기도 사라졌다. 적막해진 집안 풍경은 무척 쓸쓸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역시 인간은 함께 부대끼며 나누는 삶 속에서 더 편안함과 따스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동안 강산이 서너 번 바뀔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아는 친구나 지인이 전혀 없는 제주로 이주하면서, 외롭거나 심심함을 느낀 적은 없다. 정착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해외에서 가족끼리만 지낸 경험에 익숙해졌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 찾아오는 작은 변화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가을이 시작되는 즈음, 늦여름의 끝자락에 대학 시절 친구가 찾아왔다. 해외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다. 그러나 이 친구와는 끊어질 것처럼 가늘지만 오히려 팽팽한 연줄처럼 좋은 인연을 이어오면서 자주 연락하고 지낸다. 효심이 지극한 그녀는 제주에 내려오면서 동생과 모친도 모시고와 관광을 시켜드렸다. 우리는 날씨, 여행, 삶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하고 커피도 마셨다. 친구뿐만이 아니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가족의 행복한 모습도 보게 되어 기쁨이 배가 된 시간이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육지로 간 친구의 허전함이 느껴지던 찰나, 또 다른 대학 친구가 제주를 깜짝 방문했다. 대학 교수인 남편이 제주에 일이 있어 함께 오게 되었다는데, 당일치기로 오게 돼 시간은 많지 않았다. 잘 자란 예쁜 딸과 함께 온 친구는 여전히 단아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네 맛집에서 점심도 먹고 집에서 차도 한 잔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도 못 만나는데, 이렇게 불쑥 만남이 이루지는 경우도 있으니 인생사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인생의 빛깔은 더 다채롭고 그 즐거움 또한 커지는 것 같다. 아직 방문하지 못한 친구들도 날이 추워지기 전에 찾아오길 기대해 본다.
가을색이 더 짙어진 그다음 주, 서울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시는 지인이 남편과 함께 방문하셨다. 책방 일로 제주에 오시면서 공항에서 먼 시골까지 일부러 들러 주신 것이다. 그 마음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송했다. 지인은 이전에도 손수 고른 책들을 보내주셨고, 이번에도 소중한 책들을 선물로 주셨다. 처음 택배로 책을 받았을 때, 책방 냄새까지 고스란히 배달되어 마치 책방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향신료나 비누향 같은 이국적인 향기가 책 속에 스며있었다. 이번에 받은 <<The French Cat>> 에도 그 향기가 배어있어서, 지인이 떠난 후에도 책방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책을 보다가,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쓴 위트 넘치는 <고양이> 시가 재미있어 여기에 번역문을 올려본다.
내 집에 두고 싶은 것:
사리를 아는 여자 하나,
책 사이를 거니는 고양이 한 마리,
하루도 거르고는 살 수 없는
사계절의 친구들.
-황현산 역
짧지만, 시인이 인생에서 원하는 소박한 바람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아름다운 시다. 마지막 구절을 보면 아폴리네르는 친구들의 방문을 몹시 즐기고 기다리며 산 듯하다. 나도 '내 집에 두고 싶은 것'이 뭘까 잠시 생각해 본다. 그러나, 특별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폴리네르 관점에서 이미 '내 집에 있는 것'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내 집에 있는 것:
사리에 밝은 남자 하나,
책을 베개 삼아 자는 고양이 두 마리,
계절별로 찾아오는 가족, 친구, 지인.
고양이를 좋아하는 딸 친구들도 집에 자주 놀러 온다. 함께 케이크를 만들고, 기타를 치며, 고양이와 즐겁게 놀기도 한다. 벽면을 큰 스크린 삼아 빔프로젝터로 영화를 보며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고등학생인 딸은 고맙게도 다른 곳보다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한편, 남편의 가족과 친구들은 주로 해외에 살고 있어 아직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내년에는 그들이 봄과 함께 찾아오길 고대해 본다.
조금은 낡은 우리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집이 넓고 전망이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테라스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힐링을 느낀다며 감탄한다. 제주에 온 그들의 얼굴은 육지에서 만났을 때보다 더 밝고 행복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또한 그들이 들려준 생생한 이야기는 내 삶을 반추하게 해, 함께 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제주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육지에 살 때보다 제주에 있을 때 더 자주 그들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가을과 함께 온 손님들 덕분에 단조로운 일상은 더 북적이고 따뜻하게 풍성해졌다. 사랑방 같던 옛 고향집에 찾아오는 방문객처럼, 우리 집에 오는 이들이 편안함과 힐링을 느낀다면 그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이제는 겨울과 함께 찾아올 손님이 누구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들이 가져올 새로운 이야기는 또 어떤 것일지 함께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