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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Oct 13. 2024

해리와 윌리, 거미 이야기

제주도 시골 살기 8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니, 가을의 도착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단순한 진리에서 자연의 정직함을 깨닫는다. 청명하고 시원한 가을은 고양이들이 뛰어놀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래서일까? 아침에 순찰하러 마당으로 간 보리는, 마치 함흥차사처럼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나름 쉬는 시간에는 잠깐 들어와 밥을 먹지만, 곧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강제 연행을 할 수밖에 없다. 마당으로 데리러 가면서 김승진의 '스잔'을 흥얼거린다. 알고리즘 덕분에 며칠 전 오랜만에 듣게 된 노래인데, 그 시절의 풋풋한 감정이 떠올라 무척 반갑고 마음이 설레었다. 이 곡은 1985년에  발표되어, 당시 고교생 가수였던 김승진 씨가 불러 더 인기를 끌었다. 여학생들은 '스잔' 대신 자신의 이름을 넣어 그 노래의 주인공이 된 듯한 꿈을 꾸곤 했다. 정말 까마득한 옛 추억이다.


그런데 요즘 이 노래가 내 마음과 딱 맞는 것 같아, 자주 부르게 되었다. '스잔' 대신 '보리'를 넣어서.


보리, 찬바람이 부는데

보리, 땅거미가 지는데

너는 지금 어디서 외로이

내 곁에 오지를 않니?

~~~~~~~~~~~~~~~

보리, 난 너를 사랑해

후회 없이 난 너를 사랑해

보리, 잊을 수 없는 보리

이 생명보다도 소중한 보리


가사가 정말 절절하다. 찬바람 불 때 떠나버린 연인을 걱정하며, 꼭 돌아와 주길 바라는 애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노래에 담긴 나의 애틋한 마음을 보리가 알아줄까? 오히려 이 멜로디 신호탄이 되어 안타깝게도 보리는 더욱 멀어져 간다. 노래를 부를 때면, 가사 중 '땅거미가 지는데'란 구절이 유독 귓가에 맴돌았다. 지난여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주택이라 정원이나 집 주변에서 거미줄이 자주 목격된다. 가끔 대문 사이에 거미줄이 쳐져 있어, 대문을 나설 때 우리가 걸리기도 한다. 끈적한 거미줄에 당황한 남편은 빗자루로 강제철거해 버린다. 거미줄을 짓는 데는 8~10시간 걸린다는데, 어쩔 수 없다. 집 외부나 정원의 거미줄은 해충을 잡아주니 없애지 않기로 했다. 여름에는 가끔 잠자리가 걸리기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나비들은 유영하듯 거미줄을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거실창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다가, 울타리 나무에  쳐진 큰 거미줄 두 개를 발견했다. 나선형 모양으로 살처럼 곧게 뻗은 거미줄은 햇빛반사되어 마치 반짝이는 은빛 실로 엮은 듯 아름다웠다. 그러나 거미들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며칠 후, 해가 어둑어둑 질 때였다. 붉은 노을을 바라보면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그 거미줄에 큰 거미 두 마리가 달려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큰 거미는 처음 봐서 깜짝 놀랐지만, 동시에 신비롭게 느껴졌다. 둘이 닮은 모습이 꼭 형제 같았다. 아니면 자매, 아니면 연인일까? 거미줄은 암컷이나 수컷 모두 짓는다 하니, 성별도 모르겠고 종류도 알 수 없었다.


거미들은 신통하게도 해가 질 무렵, 우리가 저녁을 먹을 때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나타났다. 저녁 일곱 시경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우리는 거미를 볼 때마다 "너희들 오늘도 출근했네! 야근하느라 힘들겠어"라고 농담을 던지곤 했다. 그 농담에 식사를 하면서 같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거미들이 매일 나타나자, 우리는 영국 왕자들의 이름을 따서 '해리'와 '윌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보리'하고 돌림자도 되고, 우리 집의 작은 왕자들 같아서였다. 사진의 오른쪽 거미가 좀 더 '자유롭고' 왕성하게 활동해 '해리'라고 불렀다. 해리의 거미줄에는 하루살이와 모기도 더 많이 걸려있어 마치 사냥실력을 뽐내는 듯했다.


<윌리와 해리>


'스잔'의 '땅거미가 지는데'라는 노랫말을 되뇌며, 그동안 거미들이 나타났을 때가 바로 '해가 진 뒤의 어스름한 때'라는 사실에 놀랐다. '땅거미'의 유래를 찾아보니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땅'과 '검다'가 결합해 접미사 '이'가 붙어 '땅검이'가 되고, 연음화 현상으로 '땅거미'가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땅거미'라는 거미의 한 종류가 주로 저녁에 활동한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인데, 나는 이 두 번째 설의 산증인인 셈이다. 이렇게 보니, 어쩌면 해리와 윌리가 '땅거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어느 날은 하늘이 짙은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다와 가까운 우리 집은 바람이 심하게 분다. 나는 해리와 윌리가 안전한 곳에 잘 숨어있을 거라 믿으며, 거미줄이 걱정되어 거실로 갔다. 그런데 거미줄은 마치 내진설계된 집처럼 강풍에도 끄덕이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에 맞춰 리듬을 타듯 이리저리 출렁거렸다. 그 모습이 꼭 출렁다리 같아 신기했다. 


그러나, 칙칙한 비가 3일 연속으로 내린 후, 결국 거미줄은 사라졌다. 이웃집 일처럼 안타까웠다. 그런데 2~3일 후에  처마 밑으로 다시 큰 거미줄이 쳐져 있는 게 아닌가! 아,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비를 피하려고 렇게 지었구나. 거미의 똘똘함에 감탄하고, 그 작은 생명체의 대단한 인내심과 의지를 보며 끈기가 부족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가을이 오면서 해가 점점 짧아져, 식사 시간은 같아도 밖은 금세 어두워졌다. 그래서 해리와 윌리가 출근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거미줄이 있으니, 어딘가에 있을 텐데도, 육안으로 찾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비가 연속적으로 내리더니, 얼마 전까지 있었던 거미줄이 완전히 없어졌다. 며칠 째 거미줄이 보이지 않자, 이사를 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름 동안 정이 들었는데, 그만큼 섭섭함이 더욱 커졌다.


시골집에 살면서, 여러 종류의 곤충, 벌레, 새 그리고 고양이들을 자주 마주친다. 도시에 살면서 가까이 볼 수 없었던 자연의 일부인 다양한 생명체들이다. 흔히 "자연은 인간의 위대한 스승"이라 일컫는데, 자연과 좀 더 가까운 곳에 살면서 그 속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을 관찰하고 경험하니, 그 말이 진리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위대한 스승 앞에서 겸손해지면서, 나 자신을 자연의 흐름 속에 맡기고 싶어 진다.


땅거미가 완전히 내려앉고 어두워지니, 겁쟁이 보리가 슬금슬금 들어온다. 대조적으로 해리와 윌리는 찬바람 속에서 어디선가 야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 곁에 돌아오지 않고. '스잔'에 '보리'말고 '해리나 윌리'를 넣어 부르는 대신, 그것이 자연의 정직한 순리라 이해하고, 더 이상 섭섭해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땅거미의 유래: https://www.youtube.com/watch?v=IR2M-LDCI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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