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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Sep 29. 2024

고양이의 선물

제주도 시골 살기 6

날씨가 미묘하다. 한낮은 아직 여름이지만, 아침저녁은 바람이 시원한 게 가을이다. 1층 거실창 앞으로 펼쳐진 귤밭의 귤도 살짝 주황빛을 띠어간다. 곧 제 색을 찾으면 그 아름다움이 완연해지리라. 통창 너머 울타리 옆 향나무에 박새 두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가 다시 날아간다. 그 너머에 심어진 콜라비 밭 뒤로는 수꿩 두 마리와 암꿩 한 마리가 사이좋게 무언가를 쪼아 먹고 있다. 그 뒤로 집 두어 채가 아름다운 청빛 바다를 배경으로 수줍게 서있다. 매일 보는 집 앞 풍경인데도 볼 때마다 경이롭다.


우리 집 마당도 가을 채비를 마친 듯, 감나무의 감들이 누렇게 익어간다. 이제 시골 고양이가 다 된 첫째 보리는 아침마다 마당에 나가겠다고 문을 열어 달란다. 이 녀석은 마당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마당에 푹 빠져버렸다. 이제 낚싯대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어느 날,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던 보리가 작은 메뚜기를 잡아왔다. 뭐지 싶었는데, 아 이게 집사들이 말하는 '고양이의 선물'인가! 우리는 마치 딸아이가 첫걸음마를 뗐을 때처럼, 너무 신기하고 기특해서 야단법석을 떨며 폭풍 친창을 해 주고 사진까지 찍었다.


<보리의 첫 '선'물>



사냥감은 주로 메뚜기였지만, 어떤 날은 잠자리, 또 어떤 날은 방아깨비를 잡아오기도 한다. 심지어 청개구리를 잡아 온 적도 있었는데, 그 빠른 녀석을 어떻게 잡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보리가 이렇게 선물을 가져오면 둘째 벤지는 마치 자기가 사냥한 것처럼 곤충들을 가지고 논다.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형제애가 깊다.



 잡힌 곤충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한낱 미물에 불과하지만,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고양이들이 안 볼 때, 곤충들을 마당으로 되돌려 놓지만, 대부분 상태가 온전치 않다.



보리의 사냥 실력이 느는 것인지, '선물'이 점점 커져만 간다. 뿌듯함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 보리에게 칭찬을 해 주지만, 이러다가 뭘 잡아올지 내심 두렵기도 하다. 설마 SNS 영상처럼 쥐를 잡아오는 건 아니겠지? 이곳에서 쥐를 본 적은 없었다. 대문을 열어 두었던 전 주인 덕에 길고양이들이 마당에 왔다 갔다 했고, 지금은 보리가 마당을 지킨다. 그래서 나름 설치류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지만 모를 일이다.


그런데 며칠 전 아침,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집안일을 하는데, 안에 있던 벤지가 보이지 않았다. 둘러보니, 현관 쪽에서 흔들거리는 털뭉치 꼬리가 포착됐다. 뭘 하나 하고 가봤더니 다행히 쥐는 아니었지만, 보리랑 작은 새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보리가 새를 다 잡다니! 박새는 아니고 참새도 아닌 것 같은데, 이름을 모르겠다. 나도 놀랐지만 그 새는 얼마나 놀랐는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등 쪽이 물렸는지 10원짜리 동전만큼 털이 빠져있었다.


나는 그 새를 내보내는 게 최선이라 생각하고 잡으려 했지만 놓쳤다. 새는 커튼이 쳐진 중문을 통해 주방으로 날아갔고 이내 자취를 감췄다. 창문이 닫혀 있으니, 주방이나 거실 어딘가에 숨어 있을 터였다. 두 녀석도 냄새를 맡으며 열심히 찾았다. 숨을 만한 곳을 다 뒤져봤지만 결국 못 찾았다. 어디선가 떨고 있을 새가 불쌍했지만, 나는 동네 미용실에 예약이 잡혀 있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보리가 가져온 '선물들'>

                                                            

동네 미용실의 젊은 사장님은 구조된 고양이를 데려와 집 안에서 키운다. 내가 사진을 보여주며 선물 이야기를 하자, 본인 고양이도 선물을 가져온단다. 밤사이 집에서 잡은 큰 벌레를 자고 있는 베개 옆에 놓고 가는데, 아침에 일어나 그걸 보면 너무 놀라서 잠이 확 달아난다고. 그래도 고생했으니, 칭찬은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염색하는 동안 우리는 고양이 이야기로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염색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집안을 확인했지만, 떠날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주방으로 도망간 지 두 시간은 넘은 것 같은데, 깃털 한 오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일단 점심이나 먹고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두부 부침을 하려고 기름병을 잡으려던 순간, 투명한 병 뒤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그 새였다! 여기서 2시간을 넘게 버텼구나. 살기 위해 그렇게 숨어있었구나.


내보내 주려고 주방 창문을 활짝 열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잡으려 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내 사냥 실력은 보리 발가락에도 못 미친다. 두 녀석이 눈치채고 주방 쪽으로 다가왔다. 새는 빠르게 선반 위로 날았고, 나는 새를 잡는 대신 창문 쪽으로 몰았다. 다행히 새는 귤밭 위로 재빠르게 날아가버렸다. 상처는 있었지만, 날개를 다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잘 낫기를 바랄 뿐이다.


새를 잡아온 보리를 생각하니, 문득 작년에 큰 화제가 되었던 '마라도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오늘처럼 맑은 날에는 우리 집에서도 보이는 작은 섬, 마라도. 20여 년 전에 쥐를 잡기 위해 마라도로 고양이를 데려왔단다. 그런데 고양이들이 천연기념물인 뿔쇠오리를 잡아먹어서, 작년에 10여 마리만 남기고 45마리가 반출되었다고 한다. 섬에 두어 달 머물다 가는 희귀 새를 보호하기 위해 영역동물인 고양이의 보금자리를 옮기는 일이 너무 쉽게 결정된 것 같아 무척 안타까웠다. 


멸종위기종인 뿔쇠오리를 위협하는 천적은 고양이 외에도 여러 종이 존재한다는데, 고양이만 문제삼은 것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고양이들이 떠난 마라도는 지금 쥐가 더 늘어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적인 예산이 책정되었다고 한다. 강제이주를 당한 고양이들은 현재 제주 국가유산청 임시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입양도 가고 나름 괜찮은 환경에서 지내는 듯하다. 하지만, 자유롭게 살던 섬마을 고향보다 좋을까 싶다. 자연의 품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생생할 텐데.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은 끝이 없어 보인다. 특히 자연 생태계 안에서 유약한 존재들에게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있어, 인간성에 대한 작은 희망이 느껴진다. 


보리가 가져온 '선물'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다니, 또 다른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우리 미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보리야 벤지야, 엄마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란다. 선물은 너희들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우니, 이젠 그만 갖다 줘도 괜찮아." 


하지만, 혹시라도 가져오면 일단 고맙게 받아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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