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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Dec 23. 2022

[D+74]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미국,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혹은 '파이크 퍼블릭 마켓'으로 불리는 이 시장은 시애틀의 넘버원 관광명소다. 


스타벅스 1호점도 이 시장 내에 위치하고 있고 '껌 벽'이라는 희한하고 더러운(!) 명소도 이곳에 있으며 바로 앞이 워터프런트라 태평양까지 볼 수 있으니 모르긴 몰라도 여길 지나친 여행자는 아무도 없지 않을까.

 

시장 구경이 세상 젤로 재밌는 사람이니 시애틀을 도착하자마자 갔어도 이미 열두 번은 갔을 내가, 방문 스케줄을 미루고 미뤘었다. 이유는 맛집을 돌아다니는 '푸드 투어'를 신청해놨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 본의 아닌 스케줄 수정으로 답사(!) 차 오긴 했지만 벼르고 별러 이런 투어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이 시장만의 스토리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마켓의 상인(혹은 식당)들과 파트너십을 맺은 여행사의 가이드가 투어 참가자들과 함께 약 2시간가량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마켓의 역사는 물론 이곳 식당들의 숨은 뒷얘기까지 해주고 게다가 약 십여 가지의 음식들을 조금씩이나마 맛본다니 혼행자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 


투어 집합 장소가 껌벽 앞이었다. 도대체 벽에다 뭔 짓을...


오늘의 동행자들과 가이드 저스틴


앙증맞은 핫핑크 우산을 깃발 대신 들고 나타난 가이드 저스틴은 친화력 끝판왕의 총각이었다. 나를 제외한 투어 참가자 13명은 모두 미국인들이었는데 이들의 이름과 출신 도시를 순식간에 외우며 늦게 등장한 참가자들에게 서로를 소개 시키는가 하면 투어 도중 직업 얘기가 나온 사람이 있으면 '너 이거 관심 있겠다' 한다. 이곳의 가이드 조건에는 머리 좋음이 들어있나 보다.


주변이 워낙 시끄럽기도 하고 사람도 많아서 저스틴의 말을 들으려면(메가폰 따위 없음) 그에게 착붙하는 수밖에. 무튼 그렇게 공부 잘하는 학생마냥 1열에서 들은 저스틴의 설명.


이곳이 '퍼블릭'(공공) 마켓이 된 이유의 시작은 이렇다. 골드러시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몰린 것도 있지만 특히 캘리포니아에서부터 올라와 알래스카의 금광을 찾으러 가는 사람들이 경유지로 삼은 것이 바로 시애틀이었다. 그러니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몰려들었겠나.


저스틴이 이곳을 '시장'이라고 이름 붙인 첫날의 신문 1면을 보여주는데 상인 3~4명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실제로 당시 상인의 수가 10명 안팎이었다니 말 다했음. 그러다 유통 중개인이 생겼고 이들로 인해 식재료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치며, 1년 만에 양파값이 1파운드(약 500g)에 지금 시세로 35달러까지 올라 버렸단다. 


도저히 그냥 지켜볼 수 없었던 당시의 시애틀 시장은 유통 중개인을 없애고 농부와 살 사람을 직접 연결해 주는 오픈 마켓을 열자고 제안했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파이크 플레이스 퍼블릭 마켓'이 된 것이다. 


나 이런 얘기 너무 좋아효! 했으나 안타깝게도 나의 듣기평가는 여기서 끝. 도넛을 시작으로 그릭요거트, 클램차우더, 치즈, 파이, 체리 초콜릿, 크랩 케이크 등을 차례로 먹어가며 길거리 인파들과 차들 속에서 저스틴의 말은 기관총이 되어갔고 나는 그의 핫핑크 우산을 쫓기도 바빴기 때문이었다. 


결국 들르는 가게마다의 창업&비하인드 스토리는 그렇게 안드로메다로 가버렸지만, 시식한 음식들은 하나같이 맛있었고 저스틴은 유쾌했으며 그가 전해준 지식을 가지고 이곳을 다시 천천히 둘러볼 시간마저 내게 있으니 그저 행복했던 하루. 


도넛 정말 맛있었고요, 덩어리 치즈도 환상이었다지요


(왼쪽부터 시계방향) 블루베리잼을 올린 요거트, 패션후르츠잼을 올린 요거트, 초콜릿을 입힌 대왕 체리, 클램차우더


(왼쪽부터 시계방향) 크림 파스타, 치즈, 크랩 케이크, 파이


저스틴이 챙겨준 소금캐러멜


시식해 본 음식들 중 파이와 초콜릿만 빼면 넘나 취향 저격의 맛들이라 이 도시를 뜨기 전 한두 군데는 꼭 다시 와보리라 맘먹었다. 이 투어를 통해 여행사와 상인들의 공생 관계가 굉장히 긍정효과를 낳는 건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런 비슷한 투어를 하는 걸 봤지만 그건 투어라기보다는 요리 클래스에 가까웠었다. 


서울의 광장시장이나 통인시장을 이렇게 활용하면 딱이지 않을까 했더니, 그럼 그렇지. 이런 생각을 나만 처음 할 리 없지. 에어비앤비 앱에서 서울의 '체험'으로 검색하니 아니나 다를까 정말 많다. 심지어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시장 투어는 외국인은 물론 한국 사람들에게도 재밌지 않을까. 스토리와 맛집을 엮는 기획, 참으로 신박하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한번 참여해 봐야지.


재료들이 정말 싱싱했다


나도 가봤다, 스벅 1호점. 얼결에 받아 든 시식 음료와 기념으로 '파이크 플레이스 로스트 원두'를 샀다


웬일로 1층까지 내려온 준. 윈스턴을 바라보는 뒤통수가 왠지 짠하다


그림일기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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