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한 까롤린과 개구쟁이 볼짓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by 므스므

Baljeet.

도대체 이 집의 고양이 이름은 어떻게 발음하는가? 발지트? 볼제트?


결국 설리번 선생님께 처음 단어를 배우는 헬렌 켈러처럼, 호스트 까롤린의 입모양을 열심히 따라 하며 한 음절 한 음절 읊어봤다. 볼.짓.트. 사실 가장 한국어에 가까운 발음으로 들리는 대로 썼을 뿐, 정확한 이름은 지금도 오리무중. 까롤린의 아이들이 어릴 적 최애 미국 만화영화 주인공 이름이라는데 아마 네덜란드식 억양이 추가되면서 듣기 평가의 난이도가 올라간 것이리라. (라. 디. 오라고 또박또박 발음하면 과연 외국인들이 얼마나 알아들을까?)


이 녀석은 이제 8살 된 수컷 고양이인데 식탐 에너지로 똘똘 뭉친 놈이었다. 어차피 이름을 불러도 정확한 발음도 아닌 거, 간식 봉지만 부스럭거려주면 1킬로미터 밖에서도 달려올 놈이었다. 실제로 정원으로 나가는 문 앞에서 간식 봉지를 흔들어 봤더니 정말 어디선가 쿠당탕탕 하며 달려왔다!


그동안 거의 노령묘들만 만나서였을까, 내가 어딜 가든 뭘 먹든 늘 옆에서 참견하는 볼짓트가 그렇게 웃기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볼짓트 역시 산책냥이라 아침에 거실과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면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는지 하루 종일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밥을 먹기 바쁘다.


늘 밥은 모자라고(볼짓트 입장) 게스트에게 부비대면 뭐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는 걸 알아서일까, 아니면 내가 만만하다는 걸 간파한 것일까.


한 번은 아침으로 요거트에 과일을 섞어 준비해 두고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식탁 의자에 편하게 자리 잡고 앉으셔서 이미 반이나 드셨...


게스트들이 머무는 2층 공간은 '볼짓트 입장 불가 구역'인데 1층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느라 문을 열어둔 채 나왔다는 걸 깜빡했다. 열린 문틈으로 볼짓트가 들어갔고 내 배낭을 뒤져 신나게 간식을 봉지째 뜯어먹다 뒷덜미를 잡혔다. 어차피 조공용 간식이긴 하나 앞으로 만날 다른 고양이들 것까지 해 드신 것. 이렇다 보니 밥을 먹을 땐 절대 자리를 비우면 안 되고 초스피드로 뚝딱 해치워야 하며(다 먹을 때까지 슈렉 고양이가 된다) 방문도 꼭꼭 닫아두어야 했다.


음식에 대한 집요함만 빼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볼짓트


호스트 까롤린 역시 볼짓트 못지않게 아주 유쾌한 사람이었다. '인어'를 좋아해 집안의 소품들이 모두 인어 아니면 바다와 관련되어 있었는데 한겨울에도 수영을 하러 간다는 걸 보니 전생에 정말 인어였는지도 모른다. 대학에서 주 3일 코디네이터로 일한다는 까롤린은 7년 전부터 시작한 에어비앤비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단다.


"사람을 호스팅 한다는 건 정말 재밌는 일이야. 7년 동안 맘에 안 드는 게스트는 단 한 명도 없었어. 내 꿈은 말이지, 우리 집에 한 번이라도 왔던 게스트들이랑 한 동네에 모여 사는 거! 파리에서 왔던 게스트 하나는 네덜란드에 반해서 인턴쉽 끝나고 여기(알미르)에 정착해서 여친이랑 살고 있어. 가끔 밥 먹으러 놀러 오곤 해. 아, 그리고 다음 달에 게스트 중 하나가 시애틀에서 결혼을 하는데 거기 초대되었지 뭐야"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이 왜 게스트에게 청소비를 따로 받는지 모르겠다며, 어차피 자기 집 청소는 매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쿨하게 말하는 까롤린. 호스트로서 일종의 사명감까지 가진 그녀가 가장 뿌듯해하며 자랑하는 게 있었으니.


7년 동안 자기 집을 방문한 모든 게스트들의 나라에 깃발 핀을 꽂아둔 세계지도였다. 현관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이 지도가 그녀의 보물이었다. 아, 어쩌면 지도 자체는 보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게스트들이 다 너무 소중해서 한 동네를 이뤄 살고 싶다는 그녀의 꿈이 보물일 거다. 그녀가 보여준 유쾌한 환대에, 나조차 그 꿈이 정말 실현되면 좋겠다 싶었으니 말이다.


보물지도, '어떤 걸 좋아하는지 몰라 다 준비해봤어' 스타일의 아침식사, 그리고 인어


** 암스테르담을 떠난 몇 주 후 까롤린에게서 사진 하나를 받았다. 거실문이 닫혀있을 때, 밖에 있을 볼짓트를 위한 숨숨집 하나를 마당의 꽃들 사이에 두었다고 했다. 볼짓트는 좋겠네. 근데 말이다, 너 그렇게 아무거나 먹다가 큰일 난다. 우리 한동네에서 살게 되는 그날까지 건강해야지, 이눔아!


까롤린이 직접 찍어 보내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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