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우리는
절망과는 먼 곳에서 술을 마셨다.
꾸역꾸역 술을 들이키며
뭐라도 아는 듯 인생과
과거와 후회에 대해 논했고,
너는 미간을 찌푸리며 귀여운 투정을 부렸다.
어쩌면 그날의 너는
이제 나에게는 없는 어제의 너를 통해
이별을 고한 것일 테고,
어쩌면 그날의 나는
너의 눈썹에 벌써 매혹되어 아무 생각도 못한 것이다.
술잔은 부딪히며
녹슨 통기타를 연주하는 나를
초점이 안 맞는 동공으로 바라보는 너.
아직 절망은 안중에도 없지만,
우린 이미 그때
과거와 미래를 지운채로
살아간 것이다.
가을 하늘 위로
은행나무 잎이 부서진다.
너를 향한 나의 견고한
마음도 따라서.
(2020.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