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영화 같은 하루가 있어
여주인공 같은 사람 한 명이 예고도 없이
나한테 말을 거는 입모양은
멀리서 나에게로 밀려 들어오는 파도 같지 않나
당신은 해변의 바르다, 나는 대지의 로메르
감독은 어디까지나 창의적 주관일 뿐
파도 위에서 어제 본 가녀린 여주인공만
시간이 흐른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를 쪼개어보면 동쪽에선
산이 하나 솟아오르고
우리를 봉합해보면 내 마음엔
보이지 않았던 사슴 한 마리
차분히 강기슭에서 물을 마시지
방금 이룩한 밤 안에서
두 사람은 어제 본 여주인공이 출연하는
멜로 영화를 보고 있다
(2021.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