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밀접한 관계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고,
그렇게 소환된 오해는 밀폐된 관계의 틀 밖으로 환기시키기 어렵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시야가 밀접해진 관계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 테고,
밀접해진 관계인만큼 우리는 그게 현재 관계의 최선이라고
착각하고 다독이며 이 불편한 결속의 응어리 안에서 어떻게든 삶을 연명해 가는 것이다.
변화가 필요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한다.
'탈피'라는 현상은 우리네 삶과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선우정아의 '도망가자'에서부터 곽진언의 '나랑 갈래'까지...
우리가 이런 충동을 느끼는 것은 아까 말한
그 불편한 결속을 빠져나가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늪에 빠진 사람은 늪이 무릎까지 올라왔을 때,
그제야 상황을 인지하고 허겁지겁 행동으로 옮기는 것처럼,
불편한 결속에 빠진 사람들은 불편함이 불신과 불쾌함으로 확장될 때까지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불편한 결속은 사실 꽤나 보편적인 것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과도 (특히 이들이 더욱더) 불편한 결속을 맺고 사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항시 우리의 관계의 밀접성과 능동성을 검열해 볼 필요가 있다.
케케 묶은 서울 끝자락의 원룸이 주기적으로 환기가 필요하듯이,
우리를 포진하고 있는 이 무궁무진한 인간관계들도 가끔은 과감한 환기가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