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였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당신은.
시간은 희미해져 가지만 그때의 잔상만큼은 더욱더 선명해져 가는군요.
그대는 지워지고 있는데 그대의 잔상은 뚜렷해져 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다 타버린 사랑 뒤에 남겨진 한 움큼의 잿더미는 오후의 바람을 타고 우리 각자의 일상에 도달한 걸까요.
어슷하게 겹친 시간이 나를 아프게 하지만, 아픈 만큼 당신도 그리고 나도 행복했던 것이겠지요.
깊고 소슬한 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어찌할지 몰라서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대를 저주했던 날들이 있듯이,
그 똑같은 심장이 우리를 영원토록 축복해달라고 신께 밤새 빌었던 날들도 있었죠.
이제 당신의 밤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어슷했던 우리의 시간이 이제는 완전히 엇나간 것에 대해 후회를 할까요.
아니면 원래부터 그럴 것이란 걸 예상하고,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완연하게 품어주었던 건가요. 무모함과 잔인함은 사제지간인가요.
우리는 이제 다른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보다 몇 시간 앞서 있고, 나는 당신보다 몇 시간 뒤쳐져 있고, 우리는 시차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고 더욱더 완벽하게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득, 그대의 시간 속으로 (그대와 함께 했던 시간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는 바람이 미풍처럼 내게 일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리지 못한다는 생각에 잠시 슬퍼지다가, 시간은 되돌려질 수 없는 것이기에 그대가 내 안에서 영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마음을 부여잡습니다.
오늘이 지났습니다. 오늘만큼 우리의 시간은 또 엇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겹쳤기 때문에 엇갈릴 수 있는 것이겠지요. 겹쳤던 우리의 시간을 보듬아 주는 게 헤어진 우리의 마지막 인사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