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교회 콘서트
한 달 반동안 유럽에서 추억 여행을 마치고 다시 처음 가보는 목적지로 향했다. 코카서스 산맥으로 이어져 있는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코카서스 3국. 이번 여행엔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방문했고 그 첫 나라가 아르메니아다.
이국적인 이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무엇을 기대할지도 모른 채 도착했다. 나는 이 지역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떤 것에도 놀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감사하게도 아르메니아는 나에게 기분 좋은 서프라이즈를 한가득 선물했다.
길에서 지나는 사람들은 두리번거리는 우리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듯했다. 우리에 대한 경계심도 의구심도 보이지 않는 예레반 사람들은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지나가는 할머니는 오랜 이웃을 대하듯 나에게 말을 걸었고, 메뉴 주문을 받는 직원들은 친구와 이야기하듯 웃으며 친근하게 대화했다.
시작부터 좋았던 이 나라에서 만난 인연 중, 가장 특별했던 사람은 현지 친구, 아르만과 리아나다. 이 두 사람은 엄마, 아빠, 이모가 그랜드 투어 몇 개월 전에 아르메니아에 갔을 때 만난 부부다. 둘 다 오페라 가수인데 남편은 전직 테너였고, 부인은 전 세계를 다니며 공연을 하는 현직 소프라노 가수다.
우리는 그 둘과 함께 1000살이 넘은 교회에 갔다. 리아나는 주기적으로 이곳에 와서 신성함을 느끼며 마음을 정화시키고, 노래 연습을 한다고 했다. 그녀의 아지트 같은 곳에 우리를 데려간 것이다. 지난 여행 때, 이곳에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가게 되면 노래를 한 곡 불러 주겠다는 말까지 했었다고.
척박한 산 위에 덩그러니 자리한 아주 짙은 흙색 빛의 교회였다. 높은 해발의 저온이 거센 바람을 만나 공기가 유독 찼다. 휘몰아치는 바람은 교회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머물렀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짙은 회색 벽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한 줌의 햇빛만 허락해 어둑했다. 교회 안도 바깥과 다름없이 어떤 화려한 장식도 없이 벽돌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소박하지만 투박하지 않았다. 태풍 같은 바람을 막아 고요했지만 침묵하지 않았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로 가득했다. 1000년 동안의 삶 앞에 절로 경건해졌다.
우리는 침묵 속에 교회 안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리아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건물에 비해 작디작은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목소리엔 온 세상을 주목시키는 힘이 있었다. 어떠한 악기도, 오케스트라도 없이 그녀는 순식간에 교회를 비엔나 오페라 극장으로 만들었다. 맑고 깊은 목소리가 동굴 같은 교회 안을 가득 채웠다. 노랫소리가 공기 중에 떠다니는 교회 이야기와 만나 전율이 되어 내 마음을 울렸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우리만을 위한 동굴 속 콘서트였다. 밖에 하늘은 구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구름 위에 천사가 있다면, 그녀의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구름을 헤쳐 교회를 향해 귀를 갖다 대지 않았을까.
황홀했던 노래가 끝나고도 그곳에 머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박수갈채 대신 턱이 땅에 닿을 듯 벌린 입으로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리아나의 노래도 교회의 역사에 포함이겠구나 생각했다. 이 교회는 보이는 것과 달리 훨씬 더 아름답고 화려한 삶을 품은 것이 분명하다.
리아나와 아르만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아르메니아를 고이 간직하게 했다. 리아나가 엄마와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킨 것도 놀라웠지만, 딱 한 번 만났었던 여행객과 마음과 시간을 써서 함께 한다는 것이 더 대단했다. 아르만도 리아나도 매 순간 사람에 대한 진심과 인연에 대한 감사함이 표정에서, 눈빛에서, 행동에서 넘쳐흐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들이 세상을 사는 자세를 보고 인간관계에서 까다롭게 굴었던 순간을 반성했다. 동시에 리아나와 아르만처럼 좋은 사람들을 항상 만나는 엄마, 아빠, 이모를 보며 또 배울 점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세 분 덕에 나는 키르기스스탄 아르슬란밥에서 만난 홈스테이 가족들, 아르메니아에서 만난 두 부부를 비롯해 여러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되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