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모습을 숨겨도 여전히 뜨거운 공기가 남아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불쾌하고 찝찝한, 습하고 더운 공기. 나는 그것들을 느끼면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팔에서 땀이 떨어지는 거 같았다. 나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차가운 물이 땀으로 눌러붙은 끈적한 피부를 쓸어내렸다. 다 씻고 나오니 고소한 냄새가 났다. 엄마가 자주 끓이는 소고기 미역국이었다. 나는 전기밥솥 앞에 서서 주걱으로 밥 한 공기를 펐다. 엄마가 내게 김치도 꺼내라고 말해 나는 냉장고를 열어 김치를 꺼냈다. 식탁에는 이미 미역국 한 그릇이 놓여있었다. 엄마는 어느새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깔깔. 엄마의 웃음소리가 거실에 가득 찼다. 나는 밥을 들고 식탁으로 향했다. 식탁 앞까지 왔을 때 갑자기 밥과 국의 위치가 어디에 놓이는 게 맞는지 헷갈렸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 엄마에게 물었다.
-밥이 왼쪽, 국이 오른쪽이지. 너는 그런 것도 모르니. 그런 거 밖에서 티 내지 마라, 욕먹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미역국을 먹었다. 국물은 진하고 맛있었는데 고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물었다.
-그거 다시다 넣은 거야.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소한 국물이 몸에 들어왔다. 그리고 엄마의 웃음소리도 나에게 들어왔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조명을 켜고, 에어컨도 켜고, 컴퓨터도 켰다. 의자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맞았다. 조금 서늘할 정도였다. 게임에 들어갔더니 친구창에 익숙한 닉네임이 있었다. 나랑 워낙 잘 맞는 녀석이어서 반갑게 말을 걸었다. 그러더니 그 녀석은 대뜸 자기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의 취미를 이해해 주지 않는 여자친구가 밉다는 내용이었다. 게임을, 만화를, 축구를, 자신의 취미 어느 것도 이해해 주지 않는 여자친구. 녀석은 헤어질 생각도 있는 듯했다. 나는 한동안 그 녀석의 불만을 받아주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최근에 나온 만화 이야기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캐릭터, 인상 깊었던 장면, 짜릿한 반전. 우리는 서로 그 만화에 대한 예찬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며 웃다가 그 녀석이 한마디 했다.
-정말, 이 좋은 걸 모르다니. 자기는 이상한 인형이나 모으면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뻔한 공감의 표현으로 웃음의 문자를 채팅으로 보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무표정하게 가만히,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이제는 조금 추운 거 같아 에어컨을 껐다. 대신에 선풍기를 켰다. 빙빙 돌아가는 선풍기 날개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선풍기 바람이 얼굴로 향해서 거친 기침이 나왔다. 목이 조금 따끔했다. 그러다 어릴 적 엄마가 해준 선풍기 이야기가 생각났다. 옆집 아저씨가 선풍기를 틀고 잤다가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이야기.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선풍기를 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 몰래 선풍기를 틀고 잔다. 엄마가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밤중에 선풍기를 튼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때 이 정도는 알고 있으라고 말하는 엄마의 얼굴도 기억하고 있다. 오늘은 엄마 미역국의 비밀을 알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느 것도 알지 못할 거 같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로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딱 하나만 떠올리려고 해도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모르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그건 언제든 배우면 되니까. 하지만 상식이란 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아직 배우지 못했다. 숨을 쉬는 법도 상식일까. 후-하. 후----하. 의미 없는 생각들을 멈추려고 했다. 그래도 궁금했다. 내가 모든 상식을 알고 있다면, 모든 사람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한번 숨을 쉬었다. 그렇게 그대로 잠에 들었다.
+추가 코멘트+
"집에서 예능을 보는 데 연예인들이 상식 퀴즈를 맞히고 있었다. 나도 따라 맞혀봤는데, 쉬운 문제도 있고 어려운 문제도 있었다. 그러다 상식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상식 밖의 사람. 이런 말을 들어봤는데, 진짜 상식 밖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러다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상식이라는 건, '개인 또는 집단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초지식'이 아닐까. 그래서 상식이라는 것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럼 상식 밖의 사람이란 건, 자신의 세계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일까, 이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