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2)

by 고캣

그 아이는 다른 친구와 함께 양호실로 향했어요. 저는 뒷자리 친구와 같이 그 주변을 닦았어요. 선생님이 시키셨거든요. 다 닦고 나서 화장실에 걸레를 빨러 갔어요. 걸레에서 빨간 물이 연하게 흘러나왔죠. 빨랫비누로 열심히 문지르니 핑크색의 거품이 세면대를 가득 채웠어요. 저는 계속 반복하고 반복하여 하얀 거품이 나올 때까지 걸레를 빨았어요. 겨우 걸레를 다 빨고서 거울을 봤어요. 그 아이의 피가 제 와이셔츠에, 조끼에, 마의에, 바지에, 얼굴에 조금씩 묻어 있었어요. 얼굴에 있는 피는 잘 지워졌어요. 집에 돌아가 세탁을 했을 때, 조끼나 마의, 바지에 묻은 피도 얼추 지워졌어요. 그런데 와이셔츠의 묻은 피는 잘 지워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손으로 열심히 문질러봤어요. 그런데도 갈색 핏자국은 여전했어요. 엄마는 락스를 쓰면 된다고, 이리 줘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왠지 그대로 놔두고 싶었어요. 그 핏자국을 보면 그 아이를 떠올릴 테고, 제가 닦아준 그 아이의 눈, 삼촌과 닮은 그 눈을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제 교복 입을 일도, 별로 안 남았으니까요.


교복은 집에 걸어두고 생활복으로 등교를 했어요. 담임 선생님은 탐탁지 않은 눈으로 저를 쳐다봤지만 최근에 있었던 일이 있으니 알겠다는 말만 하고선 저를 보내셨죠. 그날부터 교실에 들어오는 선생님들의 시선과 잔소리를 받아야 하긴 했지만요. 수학 선생님이 들어와 제게 옷이 그게 뭐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저는 그냥 웃음으로 넘겼지요. 수학 선생님은 영화를 한편 틀어주시고선 업무를 보셨어요, 그러다 한 친구가 앞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선생님은 너는 뭐냐,라고 말했고, 친구는 잠시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고 했죠. 그 말만 하고 들어가는 친구를 붙잡은 건 수학 선생님이었어요. 선생님은 그래서? 나는 들은 게 없는 데,라고 했고, 친구는 네?라고 말했고요. 친구는 계속 이유를 설명했고, 선생님은 그래서? 만 반복하셨죠. 둘 사이에 의미 없는 대화와 긴장감이 흘렀고, 교실의 모두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죠. 그제야 친구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 친구는 죄송하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대략 5분 동안 선생님한테 잔소리를 들어야 했죠. 자리로 돌아간 친구는 교실 천장을 보며 한숨을 쉬었고, 선생님은 승자의 미소를 하고 있었고요. 어른들은 언제나 이기고 싶어 한다는 걸 뉴스를 보면서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신기했어요. 평소에는 유한 성격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도 어쩔 수 없는 어른인 걸까요. 아니면, 제 잘못인 걸까요? 아마 그렇겠죠. 제가 교복을 입고 있었더라면 선생님도 그 친구에게 그렇게까지는 안 했을 지도 모르고요. 괜스레 미안해서 그 친구를 쳐다봤어요. 저와 눈이 마주친 그 친구는 다정히 웃어 보였고요. 그게 그 친구의 마지막 미소였어요. 다음날부터 친구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요.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아마 어디가 아픈 게 아니었을까요. 그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버렸어요. 삼촌, 저도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요?

삼촌, 여기는 여전해요. 집 앞 공원에 있는 시소는 불안하게 삐거덕거리고요,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 분식집에 버섯 튀김이 새로 나왔고요, 삼촌이 자주 가던 피시방은 폐업했지만요. 그래도 여전히 흘러가고 있어요. 삼촌도 잘 아시다시피, 어른들도 여전하고요. 나이가 많고, 돈이 많고, 자신의 고집이 더 두꺼워서, 자신보다 작은 존재들을 쥐어잡을 수 있거든요. 그러니 저희 같은 어리고 작은 존재는 언제나 무시당하고요.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젊음이 있고, 지금은 청춘이라며 부러워해요. 우리는 어른들의 힘과 권력이 부럽지만요. 책에서 읽었는데 인간은 자신에게 없는걸 가지고 싶어 한대요. 저도 곧 스무 살이 돼요. 그때가 되면 어떤 걸 가지고 싶을까요. 지금 당장은 배가 고프니 치킨이 먹고 싶긴 하네요. 삼촌, 그곳에도 치킨이 있나요? 삼촌은 치킨을 상당히 좋아하셨죠. 그래서 삼촌이 나눠준 닭 다리가 너무 맛있어서 저도 치킨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삼촌, 저도 가끔 삼촌이 있는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아마 삼촌은 아직 이르다고, 어리다고 하시겠죠. 하지만 엄마는 이제 대학생이니까 알아서 하라고 하시는데, 삼촌한테 가는 것도 제 맘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요. 스무 살이면 아직 어른이 아닌 걸까요. 사실 알고 있어요. 숫자가,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걸. 그건 어른들을 보면서 잘 배웠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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