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1)

by 고캣

-김대리, 손에 그 상처는 뭔가?

-아 이거요, 며칠 전에 러닝 하다가 넘어졌어요.

-뭐? 조심 좀 하지.


이 부장은 달리기와 관련된 잔소리를 몇 개 던져놓고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승민은 이런 상황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승민이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단순히 살을 빼기 위함이었다. 두 달 전 승민은 수많은 회식으로 입사 전보다 10kg 가까이 체중이 늘었다는 것을, 오랜만에 올라간 체중계에서 알았다. 승민의 나이가 쌓여감에 따라 복부의 지방도같이 쌓여간 셈이다. 그래서 무작정 헬스장에 등록했지만 얼마 다니지 못하고 나가지 않게 되었다. 헬스장의 여러 기구들의 사용법을 몰랐던 승민은 매번 러닝머신을 타고선 집으로 돌아왔다. 동네의 작은 헬스장이라 전문 트레이너도 따로 없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새 기구로 가득하고 멋있는 몸을 가진 트레이너가 있는 헬스장이 나오지만, 승민은 전단지에 있는 가격을 보고선 포기했다. 요즘은 인터넷에 헬스 기구 사용법이 잘 나온다고 들 하지만 스스로의 자세가 잘 나오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승민은 일주일 동안 러닝머신만 타다가 나가지 않게 되었다. 3개월 치를 미리 끊어놨는데, 한동안은 식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승민은 돈 내고 러닝머신이나 탈 바에야 그냥 근처 공원에 나가 달리기로 했다. 산지 오래된 운동화만 신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공원에 들어서니 트랙에 꽤 많은 사람들이 돌고 있었다. 가볍게 걷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천천히 달리는 이들도 간간이 보였다. 승민은 달리기를 전력 질주라 여겼다. 승민에게 달리기는 학창 시절에 체력검사를 위해 뛰었던 100m 달리기뿐이었다. 그래서 승민은 열심히 달리는 이들을 따라 같이 힘차게 달렸다. 이곳의 트랙을 전부 돌면 400m,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아 보였다. 승민은 전력 질주, 온몸에 힘을 주고 달리기 시작했다. 걷는 사람, 천천히 달리는 사람들을 계속 지나쳤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쯤에 승민은 숨이 너무 차서 어지러웠다. 숨을 쉬어야 하는데 쉬어지지 않았다. 속이 여전히 울렁거려 급하게 공원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을 쏟아냈다. 속은 울렁거리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몸의 외부와 내부 모두가 떨리는 듯했다. 되는 게 하나도 없네. 승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나온 승민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트랙을 도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러다 누군가 눈에 들어왔다. 승민이 공원에 오기 전부터 뛰던, 방금 승민이 제친, 그리고 여전히 천천히 달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계속 트랙을 돌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승민이 센 바퀴 수만 열 바퀴였다. 승민은 그를 계속 관찰했다. 그의 숨은 그리 가빠 보이지 않았고, 승민의 얼굴처럼 괴로워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평온하게 달리면서 공원을 빠져나갔다.


다음날 승민은 그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그 평온함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아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승민은 전보다는 훨씬 느린 속도로 달렸다. 그렇게 세 바퀴 반, 승민은 처음과 같이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을 쉬는 게 힘들었지만, 어지럽지도 않았고 울렁거리지도 않았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성장한 느낌이 든 승민이었지만, 고작 1km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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