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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Feb 03. 2017

나무야, 네게 기대니 하늘이 보였다.

#외로운 내 삶에 찾아와 준 너를 위해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날들이 있었다. 혼자가 지독히도 싫어 누가 됐든 전화 한 통이 무척 하고 싶은 날 말이다.


얘는 바쁠 거 같고, 쟤는 이런 이야기를 할 만큼 안 친하고, 기껏 전화를 건 친구는 안 받고.. 결국엔 전화번호부를 끝까지 넘기고도 전화 한 통 할 데가 없는 그런 날, 그냥 헛웃음이 났다. 


아무 생각 없이 전활 걸어 기분을 털어놓을 사람이 아쉽고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나무야 네게 기댄다

오늘도 너무 많은 곳을 헤맸고
많은 이들 사이를 지나왔으나기댈 사람 없었다

네 그림자에 몸을 숨기게 해다오
네 뒤에 잠시만 등을 대게 해다오

날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왔다는 걸 안다

네 푸른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
잠시만 눈을 감고 있게 해다오

나무야 이 넓은 세상에서
네게 기대야 하는 이 순간을 용서해다오

용서해다오 상처 많은 영혼을

도종환 - 나무에 기대어

도종환 시인의 '나무에 기대어'라는 시에는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기댈 나무가 있다. 시인은 많은 이들 사이를 지나고도 기댈 '사람'이 없어 '나무'에게 기댄다. 넓디넓은 세상에서 많은 이들을 두고도 결국은 몸을 기댄 존재가 나무임에.. 그는 용서를 빈다. 온몸과 마음의 무게를 받아주었을 나무에게 용서를 빈다. 나무는 아무 말 없이 상처 많은 영혼에게 등을 내어주었으리라..


내게도 어딘가 다 내려놓고 등을 맞댈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수도 없이 생각했다. 용서를 빌어야 할 지라도 이 고독한 곳에 등을 맞대고 눈을 감을 수 있는 존재가 욕심났다.



기댈 사람 없는 내 모습을 독립이나 자립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한 사람을 만났다. 예기치 못한 만남이었지만 사람들 사이를 헤매며 찾고 또 찾고 있던 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참 외로운 세상에서 조우한 기적 같은 인연이라고 느껴질 만큼 푸근하고 너른 존재. 감당하기 벅찬 짐을 겨우 짊어지고 위태롭게 걷고 있는 내게 그 사람이 말했다. 언제든 쉬어가라고.. 괜찮다고.. 잠시만 숨을 들이켜보라고..


등을 맞댈 존재가 그리웠으나 막상 그런 존재를 만나고도 짐을 내려놓고 쉬지 못했다. 이런 내 모습이 그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 당신은 참 기대고 싶은 나무 같은 존재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기대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의아했으리라. 마치 등에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양 손에는 짐을 든 채로 어정쩡하게 나무에 기댄 듯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용서해다오. 상처 많은 영혼을

시인은 등을 내어준 유일한 존재에게 감사가 아니라 용서를 빌었다. 나 역시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왜 기댈 수 있는 존재에게 감사가 아니라 용서를 빌게 된 걸까?


그것은 아마도 상처 받은 마음을 선뜻 기대기가 어려워서 일 것이다. 내 상처를 나누기가 미안해서 일 것이다. 너무 따뜻한 존재를 차가운 손으로 만지게 될까 봐 걱정돼서 일 것이다. 혹은 어딘가 기대 버리면 겨우 버텨오던 것들이 무너질까 봐 두려워서일 수도 있다. 아니면 기댔던 등을 일으켜 다시 짐을 지고 걸어가야 할 고독한 순간이 무서워서 일 수도 있다. 등을 내어준 존재를 앞에 두고도 생각을 멈출 수 없는 내 모습에 화가 나서 일 수도 있다.


아주 여러 의미로 나는 그 사람에게 용서를 빈다.


나무야, 네게 기댄다

나는 오롯이 기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온 마음을 내려놓고 누군가와 서로의 등을 맞대고 서로에게 의지한 채 기댄다는 것은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신기하고 낯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짐을 내려놓고 그 사람에게 기대니 하늘이 올려다 보였다. 파란 하늘이 보였다. 하늘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그것은 헛웃음이 아니라 진짜 웃음이었다. 바늘 하나 들어올 곳 없어 보이던 마음에 사람 하나 설만큼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불확실한 미래가 걱정되고 풀어놓은 짐을 외면할 수 없지만 다시 저 짐을 짊어지게 될지라도 괜찮을 것 같다.


오늘, 이 외로운 세상에 기댈 존재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지금 당장,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하다.  


내게 나무 같은 존재가 되어준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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