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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Mar 17. 2016

할매

#참말로 사랑한데이

할매

2.2kg 미숙아로 태어난지 100일 겨우 지나 자마 자부터 외할머니랑 살아 그런지 할머니는 제게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왕엄마입니다. 사실 우리 왕엄마는 할머니라는 호칭보다도 "할매"가 더 익숙해요. 왜냐면 우리 할매가 경북 청송에 계시거든요.. "누가 청송에서 할매를 할머니라 캐요?? 당연히 할매카지!"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저는 시골 동네에서 대장 노릇을 했어요. 대장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우리 할매 덕분입니다. "싸우지 마레이,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레이!" 하시면서도 "맞고 들어오기만 해봐라!" 하셨어요. 


뱀도 엄청 잘 잡고 닭 모가지도 한 번에 비틀고 무서운 거 하나 없어 보이던 우리 할매는 전생에 장군이셨음이 틀림없을 거예요. 할머니가 7살 나던 해에 6.25 전쟁이 났대요. 포탄 소리가 고막을 울릴만치 가까이서 들리고 사람들 비명도 들렸다고.. 그런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시고 군인분들께 음식을 가져다주곤 하셨대요. "할매, 안무섭드나?"하고 물으면 "나라 위해 싸우는 군인들도 있는데 그게 뭐무섭노"하시던 할매는 완전히 대장부셨어요. 우리 할매 옆에 있으면 세상 무서울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할매는 세상에서 제일 마음씨 좋은 분입니다. 장터에서 가겔하셨는데 오는가는 손님 중에 우리 집에 안 와본 사람이 없었어요. 늘 집에는 손님들로 붐볐고 할매는 늘 식사며 차며 대접하셨거든요. 그냥 더불어 산다는 게 뭔지 아시는 분이에요. 하루는 제가 좋아하는 사과를 마실오신 할머니들께 나눠주시는 거예요. '내가 젤 좋아하는 게 사관데 다 나눠주면 나는 뭐 먹나?' 생각하며 말했어요. "할매, 남들 다줘뿌면 나는 뭐먹노?" 그러자 할매가 그러셨어요. "니 먹을 거는 다 남가놨데이. 저이들은 사과농사 안 지서 내가 안주마 사무야 된다!" 그때는 그저 제가 먹을 사과가 남았다는 것만 이해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닌 사과를 나눠주고 더 큰 것들을 받으셨어요. 하루는 나물을 받았고 또 하루는 고구마 그리고 언제 한 번은 산꿩도 받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가 나눈 것은 사과가 아니라 정이였어요. 우리 할매가 쪼매 정 많은 양반입니다. 


그리고 엄마랑 떨어져 사는 손녀가 안타까우셨는지 남부럽지 않게 좋은 거 예쁜 거 해주시고 꼬까옷이랑 꼬까신도 사주셨어요. 도시 사는 친구들도 못 입어봤을 드레스 입고 동네 친구들 불러서 파티도 해주셨어요. 

가끔 제가 아프기라도 한 날이면 밤이고 낮이고 업고 병원엘 데려가 주시던 

우리 할매는

세상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할아버지

우리 외할배는 예전부터 많이 편찮으셨어요. 할매가 참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셨는데도 제가 초등학교를 들어갔을 때쯤에 돌아가셨어요. 우리 할배 돌아가시기 직전에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봐도 저는 알아보시던 분이었어요. 엄마 말론 엄마 어릴 땐 엄청 무서운 분이셨대요. 근데 저한텐 세상 제일 인자한 할배였어요. 


어디 여행이라도 가시면 인형이야 장난감 잔뜩 사주셨어요. 저 결혼할 때 손잡고 들어가 주신대 놓고, 대학 가는 거 다 보고 가신댔는데 할배가 약속을 못 지키겼어요. 대학 합격증 제사상에 올리던 날 우리 할매가 "대학 가는 거 본다카디 이래 볼라고 그래 일찍 갔나" 하셨는데.. 그날 태어나서 제일 많이 울었어요. 눈물이 왜 그렇게 나던지.. 그날 우리 할배 분명 뿌듯해하셨을 거예요. 사진에만 남아있는 환한 미소도 지어주셨다는 거 저는 알아요. 우리 할매 이야기를 쓰다 보니 할배가 무척 보고 싶은 날입니다.


효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저의 변하지 않는 다짐 하나는 할매한테 효도해야 지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꾸 나이를 먹고 생활에 지칠수록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전화도 매일 못 드려요. 전화만으로도 "니 목소리 들으니 참 좋다. 참 좋다. 바쁜데 우예오노 건강이나 잘 챙기라" 하시는데 얼마나 죄송한지 모릅니다.


효도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우리 할매가 저를 두고 멀리 가버릴까 봐 우리 추억이 기억 속에서 다 떠내려가버릴까 노심초사하는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사실 효도란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시간 내서 전화 한통 집에서 쉬는 날 얼굴 한 번 더 찾아뵈면 그게 효돈데... 


지금 이 글을 발행하고는 바로 전화 한 통 드려야겠습니다. 그리고 꼭 말할 거예요.

"할매, 참말로 사랑한데이. 그라고 이래 잘 키아 조가 진짜로 고맙데이"라고 말입니다.


우리 할매를 생각하면서 쓴 

"좋아서 쓰는 시 - 할매" 입니다.

https://brunch.co.kr/@february/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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