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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Mar 13. 2016

미워하는 마음

#그리고 용서

미워하는 마음과 무의식
누군가를 미워하면 우리의 무의식이 그 사람을 닮아간다. 미워하는 대상을 마음 안에 넣어두었기 때문에 내 마음 안에 그가 곧 내가 되는 원리로 말이다.


나도 정말 미워하던 사람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 소위 말하는 따돌림을 시키던 아이.

그 아인 친구니까 할 수 있었던 나의 이야기들을 조롱거리로 삼고,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던 말들을 쏟아내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도 나를 비방하고 거짓말을 내뱉어 나를 소외시킬 때도 혹시나 나 때문에 부모님이 신경 쓰실까 봐 나는 바보처럼 항변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혼자 남겨졌었지. 집안 사정도 어려운데 나까지 부모님을 곤란 하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나하나 참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참고 참았다. 지독하게 외롭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두려움과 불신으로 고통스럽게 했던 그 애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진실의 여부에는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고 덥석 그 애 말만을 듣고 나를 외면했던 다른 친구들에 대한 미움도 지울 수 없었다.


아니, 조금 더 엄밀히 따져 말하자면 나를 괴롭히던 그 애는 미웠지만 외면하던 친구들의 시선은 너무나 두려운 것이었다. 혼자 남겨진다는 두려움 말이다.

 

학창 시절을 보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음에도 늘 마음 한 켠에는 불신과 려움이 있었다. 또 누군가 나를 버려두고 떠나버릴까 전전긍긍하며 늘 불안해했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 동안 나는 표면적인 관계에 익숙해지고 더 외로워졌다. 


하루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내가 미워하고 두려워하던 모습을 나 역시도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당시에 우리 사이에서 유명했던 한 친구의 루머가 대화의 주제였다. 그에 관한 험담이 오고 갔다. 그에 대한 루머가 진실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았던 시점에서 험담을 주고받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그저 웃으며 듣고만 있었다. 내가 나서 루머를 퍼트린 것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친구 비하거나 욕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 그 루머가 진실이 아닐 경우 그 친구가 겪고 있을 상처와 고통이 얼마나 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렇다면 나 역시 학창 시절 나를 외면했던 친구들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다. 직접 루머를 만들고 누군가를 공경에 빠트리는 것도 나쁜 일이다. 그렇지만 방관하는 것 역시도 다르지 않다. 둘 다 똑같이 나쁜 일이다. '나 역시 진실을 외면하고 그저 다른 사람의 말에 휩쓸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비겁자가 되었구나.. 어느 순간 미워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했던 이들의 모습을 꼭 닮아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바쁜 일이 있어 이만 일어나야겠다며 황급히 자리를 뜨면서도 죄책감과도 같은 불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안에 남아있는 미움과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비겁자가 되겠지.. 나는 이 미움과 두려움을 어떻게 떨쳐버리고 사람을 진실되게 대하며 누군가 진실의 여부에 관계없이 사람들로부터 오해받고 상처 입는 상황을 방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바뀌어야만 했다. 그리고       찾아야 했다.


용서

많은 책을 읽었다.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책들을 찾아 읽으면서 여러 방법을 알게 되고 또 시도도 해봤지만 내가 찾은 가장 좋은 방법은 용서였다. 용서는 미움의 마음을 내 안에서 쫓아버리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법정 스님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다.
남을 용서함으로써 나 자신이 용서받는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다.
묵은 수렁에 갇혀 새날을 등지면 안 된다.
맺힌 것을 풀고 자유로워지면
세상 문도 활짝 열린다.

저 구절이 나오는 쪽에 책갈피를 끼워두고 여러 번 읽으면서 용서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내가 용서받을까? 나를 괴롭히고 외면한 친구들을 용서한다면 나도 모르게 닮아있었던 내 모습도 용서받고 바뀔 수 있을까? 나는 좀 더 용기 있게 누군가의 아픔을 감싸 안을 수 있을까?


   라 왜 그 아이가 나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봤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해보게 됐다. 그 애의 가정환경과 배경들 그리고 성격.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그 애 조차도 어쩌면 불행해서 그랬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 사랑받고 싶고 더 관심받고 싶고 누군가를 괴롭히면서라도 마음 안에 빈 공간을 채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 역시도 많이 어렸지만 그 애도 어렸으니까 그럴 수도 있었겠다. 른 들은 왜 나를 외면했을까? 그 친구들이 나빠서 그랬던 걸까? 아니 그 친구들은 무서웠을 것이다. 나처럼 자신들도 소외당하게 될까 봐 무서웠을 것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혼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모두가 갖고 있다. 특히나 어린 친구들이 그런 마음으로 소외당하는 친구 하나를 외면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내가 한 번 해보니 용서란 게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조금 더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미워하는 마음을 많이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나는 분명히 그 친구들을 조금 더 이해했을 뿐인데 내 마음은 한결 더 가벼워졌고, 계속해서 발목에 채워진 족쇠같았던 두려움과 불편함 역시도 훨씬 덜했다. 그리고 조금 더 용기 있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서라 해야 할지 이해라 해야 할지 모를 행동은 그 후로도 자주자주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를 도와주고 있다.


조금만 비춰보면

미워하는 마음도 조금만 더 비춰보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고 때로는 용서할 수도 있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는 건 바로 우리 자신 속에 들어앉아있는 그 무엇을 미워하는 것이지'라고 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때론 나의 어떤 모습을 미워하는 것일 수 있다. 누군가의 미운 모습을 우리 역시도 가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무턱대고 미워하기만 해서는 내 마음만 아프고 나만 불편하다. 차라리 저럴 수도 있겠네 하면서 조금 이해해버리고 용서해버리면 내 마음이 편하다.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자. 미운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용서하자. 미워하는 마음에 갇혀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용서하고 털어버리고 새로운 날들을 매일매일 살아가자. 예뻐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행복하기에도 짧은 인생에 남을 미워하면서 허비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미워할 누군가가 생긴다면 "그래 다 사정이 있었겠지. 옛다. 용서한다!" 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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