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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그 시절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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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목영 Oct 21. 2024

한 여인의 사랑

  심산(深山)의 고요와 적막이 어둑새벽에 묻혀있다. 녹음으로 빛나는 산봉우리가 하늘로부터 희미한 빛을 받아 서서히 골짜기로 내려보낸다. 초록은 어둠이 걷힐수록 선연하고 골짜기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나무 향은 형언할 수 없는 심신의 평안을 준다.

욕계(欲界)가 깨기 전 신새벽의 적막함은 마치 선계(仙界)에 있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럴 때 나는 미동도 없는 나무가 되어 오래 서 있고 싶다.

산 아래 수목으로 둘러싸인 웅장하고 단아한 한옥은 잠잠한 물에 뜬 듯 조용하고 신비롭다. 지난날 이 한옥에서의 환희와 감흥은 흔적도 없이 세월 속으로 사라졌고 음음적막(陰陰寂寞) 속에 말없이 옛 모습만 이어가고 있다


  사르르 방문이 열리면서 치맛자락 사각거리며 여인이 들어선다. 손으로 쥐면 백지장처럼 바삭 소리가 날듯한 모시 한복을 입은 여인이다. 분세수도 없는 수수 담백 갸름한 얼굴 매력적인 눈꼬리 초승달 같은 눈썹 단순호치, 섬섬옥수, 세요설부는 이런 여인을 두고 하는 언사인가. 조용히 손 모아 곡진하게 절을 한다. 맞절을 할 수도 없고 당황하여 좌불안석인 찰나 북과 채를 들고 고수(鼓手)가 들어온다. 북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지 춤에 맞춰 북을 치는지 알 수 없다. 혼연일체다. 저 춤은 무슨 춤인가. 빠르기도 느리기도 애절하기도 다정하기도. 춤사위의 미세한 파동 까지 내 속에 스며 들었다.춤은 소리 없는 언어라는 말이 상기(想起) 되었다. 추는 자와 보는 자 사이에 말없이 흐르는  감동, 교감,이는 두 사람 사이에 숭고한 공명 이라고 생각 되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이 순간 차시무성승유성(此時無聲勝有聲) 말 없음이 말 있음 보다 낫다는 시구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이 춤은 전통춤에 대한 나의 편견을 걷어내고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삼십 대 초반의 젊은이는 일행과는 달리 영접과 환대에 감동했고 얼굴은 상기(上氣) 되었다. 두 장정이 힘겹게 들고 온 주안상에는 금준미주와 옥반진수가 진설되어 있었고 네 명의 선녀 같은 기녀(妓女)들은 능숙하게 새로운 분위기를 달구었다. 장안의 미녀는 모두 여기에 있는가. 그들은 기예도 예절도 출중했으며 경국지색이었다. 이보다 더한 환락이 어디 있을까. 사물놀이패가 들어오더니 그 넓은 방에 국악한마당이 펼쳐졌다. 이어 악단과 가수가 들어와 춤과 노래로 대원각의 밤은 깊어갔다. 이별 노래로 석별의 정을 나누었고 섬돌에 내려서니 중천야월 교교한 달빛에 솟을대문 단청이 창연했다. 예스럽고 운치 있는 전통 여가문화가 이어져 남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초행의 황홀함은 자의 반 타이 반으로 잦은 내왕으로 이어졌다. 향락문화의 진수들은 생의 큰 즐거움이었다.


  김영한(필명 자야, 불명 길상화)은 대원각을 포함 전 재산을 법정스님을 통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길상화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회향(廻向)에 감격했다.

천년고찰도 심산유곡에 명찰(名刹)도 많은데 절하나 더 생긴다고 불교 중흥에 얼마나 보탬이 된다고 절에다 희사하는가. 문화유산으로 보존하여 천년 후에도 후인(後人)들에게 선인(先人)들의 여가문화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보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상화 역시 춤과 노래 시와 문학으로 엄격한 교육을 받은 재원으로 권번 출신의 정통 기생 아닌가.

그러나 길상화는 육신과 재산을 불가에 함께 보시함으로써 백석과의 애절한 사랑이 영원히 회자되고 재산도 온전히 보존된다 생각했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간과 가장 고통스런 시간을 경험한 고독한 영혼이 내린 명철한 판단이라고 생각되었다.

백석의 생일에는 곡기를 끊고 사모와 애절함으로 지냈다는 길상화의 육십여 년 애틋한 사랑은 영원한 전설이요 순애보다. 백석보다 백석의 시보다 길상화의 지고지순의 사랑과 일편단심 지조가 비교할 수없이 크고 위대해 보였다. 즐겨피우던 담배를 오십 년 만에 끊었는데 니코틴보다 더 그리운 사람. 수천억 원의 재산이 백석의 시 한 줄보다 못하다는 그녀. 목숨을 달라고 해도 주저하지 않을 만큼 사랑한다는 그녀. 그녀의 사랑은 인간의 이성적 애착을 넘어선 초월적 사랑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언어로는 감히 그녀의 사랑과 아픔을 풀어 낼 수 없다.


  다시 찾은 삼각산 남쪽 골짜기에 있는 대원각은 길상사로 태어났다. 단청을 새로 한 솟을대문과 본채 극락전만이 의연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미녀)은 간데없네’ 수목에 녹아 있는 새벽 공기의 청쾌(晴快)함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다.

 세월이 흐른 후 길상사를 다시 찾은 것은 백석의 ‘여승’이란 시 한 줄 때문이었다. 시에 파리한 여인의 슬픔에 어찌나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리던지, 십여 년 동안 일 나간 지아비를 찾아 유랑하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던 여인의 슬픔이 나의 슬픔인 듯하여 미명에 집을 나섰다. 십 년 아니라 육십 년 넘게 기다렸던 자야의 한은 오죽했으랴. 자야가 죽기 육십여 년 전에 작시(作詩) 된 이시는 자야의 운명을 암시한 시인가. 이 시의 여인도 현실의 여인 자야도 지아비를 만나지 못했고 비련의 사랑에 가슴 아파하며 불문에 귀의한 것은 우연의 일치인지 백석의 예지력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시의 여인도 자야처럼 혼백이 백토가 되어 백설이 만건곤할 때 절 뒤뜰에 뿌려져 꽃이 되고 바람이 되고 달빛이 되었을 것이다.구천을 떠도는 가엾은 그들 영혼의 소리가 저만치 홀로피어있는 도라지 꽃으로 환생했는가. 그래서 자야가 좋아하던 도라지 꽃말이 영원한 사랑인가. 이 비련의 애끊는 사랑은 나에게도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얼마나 깊고 길고 뜨거운 감정인지를 알게 했다.

길상사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가 자야의 한 맺힌 흐느낌인지.

달빛에 도라지 꽃이 파르르 떨고 있다.



     여승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를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 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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