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의 명가, 스리랑카
여행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는 바로 식사. 엘라에서의 조식은 더 기억에 남는다. 호텔 스태프 미스티가 매일 밤마다 “내일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있어?” 라고 친절히 물어봐 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에는 파파야를 더 많이, 또 어떤 날에는 계란프라이만 먹고 싶다고 부탁했다. 매일 아침이 우리만의, 작지만 큰 약속이었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요청하든 매일 똑같이 나오는 메뉴가 있었으니, 바로 홍차였다.
홍차는 스리랑카의 대표 특산품이다. 익히 듣기는 했었지만, 이곳에 와서야 그 사실이 실감이 났다. 어디에서나 홍차밭이 보였고, 찻잎을 따는 아주머니들과 인사를 나누었으니까. 그렇게 딴 찻잎이 가공되어 마침내 식탁에 오른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는 수미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홍차 공장도 보여줄 수 있을까?”
아유르베다 병원도 구경시켜 준 사람이었다.
그에게 불가능은 없어 보였다.
역시, 내 예상은 맞았다.
“그래, 몇 시에 가고 싶어?”
점심을 먹고, 수미스를 만났다. 어제처럼 숙소 뒷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산등성을 탔다. 엘라 자연은 볼수록 푸르렀다. 이렇게 높은 지대에도 호텔과 식당이 있었다. 매일 아침 쭉 뻗은 나무를 보면 어떤 기분일까. 언젠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찰리의 홍차 공장에서
나무를 구경하는 사이, 스미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 “다 왔어.“ 세일즈 매니저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부직포 덧신을 신고, 3층 꼭대기부터 차례로 구경했다.
맨 위에는 찻잎 수분을 빼는 기계가 있었는데, 절반은 여전히 파릇파릇했고, 절반은 거의 쭈글쭈글해진 상태였다. 한 줌도 안 되는 양에서 숲내음이 났다. 이래서 내가 홍차를 좋아했지. 하지만 이것이 나만의 취향은 아니었나 보다. 이 공장에서는 매일 찻잎을 10,000kg 가공해서 세계 곳곳에 수출하고 있었다.
문득 예전에 발리에서 카카오 파우더 수입을 시도한 일이 떠올랐다. 그 업체에서는 100kg 만드는 데 3주가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계약을 포기했었는데, 이 공장은 100배를 해내고 있었다. 어떤 회사와 거래해야 되는지 이제야 알겠다.
다시 입구로 내려오니, 3가지 홍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얇은 찻잎은 부드럽고, 굵을수록 꽤 씁쓸했다. 가장 부드러운 홍차에 마음을 빼앗겨, 그 자리에서 다 마셨다. 매니저도, 수미스도, 홍차에 빠진 내 모습을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네가 이거 한국에 가져다 팔아!” 누군가 농담을 던졌다.
돌아오는 길, 햇빛에 반짝이는 원석이 눈에 들어왔다.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자, 수미스가 말했다.
한국에 팔아봐.
홍차도 팔고, 돌도 팔고, 뭐 없나.
스리랑카에서 할 사업이 많네.
생각지도 못했던 포인트였다. 그동안 친구가 생긴 여행지는 많지만, 먹고 살 방법이 보인 여행지는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어디를 가든지 모두 반겨주었고, 사업 아이템까지 알려 주었다. 나 혹시, 전생에 스리랑카 사람이었을까. 내국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방인은 아닌, 현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감각 — 난생 처음이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