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민경 Aug 10. 2021

맞춤 씨앗_엄지공주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그럭저럭 사이좋은 부부가 있었어요.

둘은 같이 식탁을 차렸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산책도 빼놓지 않았지요.

휴일이면 소풍을 가거나,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기도 했어요.

하지만 무언가 허전했어요. 그럭저럭 괜찮은 생활이기 했지만, 막 행복하진 않은 것 같았어요.

 “우리에게 뭔가 빠진 것 같지 않아?”

 “맞아. 그거!”

 “그거?”

 “그래 완전한 수는 삼. 가족은 역시 셋이야!”

 부부는 드디어 깨달았어요. 서둘러 맞춤 씨앗 가게로 달려갔지요.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좋은 씨앗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어떤 씨앗을 만들어 드릴까요?”

 풍성한 흰머리를 틀어 올린 가게 주인이 물었어요.

 “예뻐야죠!”

 “그럼 그럼!”
 “머리 색깔은 그러니까... 파랑이 좋겠어요!”

 “눈동자는 분홍? 그래 분홍!”

 “엄청나게 똑똑하고.”

 “노래도 잘 불렀으면 좋겠어요.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면 얼마나 좋을까?”

 둘은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오는 것처럼 손을 잡고 왈츠를 추었어요.

 “네 네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것이 확실하시군요. 그만큼 만들기 어려운 씨앗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주인은 두 사람에게 꽃차를 내주고는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아참 치열도 고르고요!”

 “피부도 좋아야죠.”

 “당연히 몸도 건강해야 하고.”

 “그치만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니까 조용한 성격이었으면 좋겠어요.”

 부부는 가게 안쪽을 향해 끊임없이 요구 사항을 말했어요.

 

 가게 주인은 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해왔지만, 이처럼 까다로운 손님은 처음이었어요.

 주문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니 그것들을 다 받아 만들기가 어려웠어요.

 재료 몇 개는 빼먹기도 하고, 몇 개는 더 많이 넣거나, 더 적게 넣기도 했어요. 가게 주인의 땀이 몇 방울이나 들어가기도 했어요.


 겨우 겨우 맞춤 씨앗을 만든 주인은 씨앗을  유리병에 담아 부부에게 건넸어요. 병 속의 씨앗은 보석처럼 반짝거렸어요.

 “자, 이 씨앗은...”

 “네 저희도 알아요.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부부는 주의사항을 듣기도 전에 돈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왔어요. 가게 주인은 둘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다행히 씨앗은 무럭무럭 잘 자랐어요.

 첫째 날에 싹이 나고 둘째 날에는 줄기가 뻗어 나고 셋째 날에는 분홍 꽃봉오리가 생겼어요.

 “여기 안에 있는 거지?”

 “그렇다잖아.”

 “빨리 보고 싶다.”

 “그치만 옆집에서 꽃봉오리를 억지로 열다가 어떻게 됐는지 들었잖아.”

 “아깝게 그냥 버렸다고 했지?”

 “그러니까 일주일만 참자.”

 둘은 평소처럼 같이 식탁을 차리고, 산책을 했지만 그 전과는 달랐어요.

 식탁을 차릴 때도 꽃봉오리를 보았고, 밥을 먹을 때도 꽃봉오리를 보았어요.

 산책은 거의 경보를 하는 것처럼 후다닥 마치고 돌아왔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꽃봉오리가 열렸어요. 둘은 감격스러워하며 무릎을 꿇고 그 앞에 앉았지요.

 활짝 열린 분홍 꽃잎 위에는 엄지 아이가 앉아있었어요.

 까만 머리의 까만 눈동자를 가진 아이였지요.

 “어? 파랑 머리가 아니잖아?”

 “분홍 눈도 아니야.”

 둘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어요.

 “나의 부모님이신가요?”

 엄지 아이가 물었어요.

 “일단은 그래.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이는 치열이 고르고, 피부결은 좋았어요. 하지만 지나치게 말이 많고 노래는 못 불렀어요.

 어느 것은 마음에 들고, 어느 것은 마음에 안 들었어요.

 

 부부는 마음에 안 드는 건 죄다 고쳐버리고 싶었어요.

 머리를 파랗게 염색하고, 노래 부르는 것도 가르쳤어요.

 “저는 까만 머리가 좋아요.”

 “저는 노래 부르고 싶지 않아요.”

 엄지 아이가 발을 탕탕 구르며 싫다고 해도, 부부는 다시 머리를 파랗게 염색시키고 온종일 노래를 가르쳤어요.

노력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은 금방 다시 까매지고, 노래는 여전히 꽥꽥댔지요.

 엄지 아이도, 부부도 지쳐갔어요.


 “뭔가 잘못됐어.”

 “맞아. 뭔가 잘못됐어.”

 부부는 씨앗 가게로 달려갔어요. 하지만 둘을 맞은 건     

 

<그동안 우리 가게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안내 푯말이었어요. 둘은 낙담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 안이 어두컴컴했어요.

 “아가 자니?”

 아이를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었어요.

 딸깍, 불을 켰지만 분홍 꽃잎 위에 늘 앉아 있던 아이가 보이지 않았어요.

 꽃잎 하나가 떨어져 화분 앞에 놓여 있을 뿐이었어요. 꽃잎에는 모래알만 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었어요.

 

“저는 진짜 부모님을 찾아 떠나겠어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분들을 찾을 거예요.”


 부부는 떨어진 꽃잎을 보았어요. 그렇지만 읽지는 못했죠. 글씨가 모래알만 하니까요.

 그들은 거기에 편지가 써있다는 걸 영원히 모를 거예요.

 아이의 마음을 영원히 모를 거예요.


 누가 저 부부에게 돋보기를 선물해 주실래요?


작가의 이전글 환상 성냥_성냥팔이 소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