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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 Jan 27. 2019

오늘 하루도 너무 평범했다면

'다꾸'라고 들어보셨는지?

오늘 하루도 너무 평범했다면

- ‘다꾸라고 들어보셨는지?



아주 오랫동안 일기를 써왔다. 지금도 초등학교 때부터 썼던 모든 일기장을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애착이 깊다. 어느 날 내가 비명횡사한다면 부디 그 일기들부터 태워주길. 주로 중학교 때는 수업 시간에, 고등학생 때는 야자 시간에, 대학생 때는 강의 시간에 다이어리를 썼다. 그런데 직장인이 되고 보니 일기를 쓸 시간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루에 8시간이나 책상에 앉아 있는데도 글 한 줄 쓸 시간이 없다니. 학교와 회사는 달랐다. 숨 쉴 틈 없이 일을 해도 언제나 다른 일이 있었고 퇴근하고 나면 모든 것이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점점 회사 스케쥴러에 업무를 적을 때만 펜을 들게 되었다. 연초에 새로운 마음으로 다이어리를 사고, 늘 거의 백지인 상태로 연말을 맞이한다. 벌써 몇 년째 반복된 이야기다.


올해는 좀 다른 노선을 택했다. 굳이 먼슬리, 위클리 챙겨 적는 다이어리는 됐고 그냥 아무 말이나 적는 노트를 쓰자. 표지에도 내지에도 디자인이 없고, 단지 종이질이 좋은 라인 노트를 하나 샀다. 근데 막상 아무 디자인도 없는데 글만 쓰려니 좀 허전했다. 그래도 연초인데 올해의 목표 정도는 예쁘게 적어볼까.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보니 마침 '다꾸'가 다시 유행이었다. '다이어리 꾸미기'의 준말로, 스티커와 떡메모지(이건 줄여서 '떡메'라고 부름)로 간단하게 다이어리 꾸미는 방법을 알려주는 콘텐츠들이 아주 많았다. 그중 하나를 우연히 보고 따라 하면서 2019년 다이어리 첫 장을 꾸몄다.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렸고, 좀 재밌었다. 왜 이게 재밌지?


'다꾸'는 꽤나 귀찮은 일이다. 일기는 주로 혼자 우울할 때 쓰게 되는데 (즐겁게 논 날은 결코 글 따위를 쓸 시간이 없다.) 안 그래도 우울한데 뭘 오려 붙이거나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좀 웃기고. 게다가 나는 똥손이라 그런 꾸미기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런 것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 매일이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직장인은 더욱더 그렇고. 매일 똑같이 출근하고 퇴근하고 우울하고 미래를 모르겠다. 점점 더 글을 쓰기도 읽기도 싫어진다. 하지만 뭐라도 그리고 붙이고 꾸미다 보면, 그 날 하루가 약간은 특별해 보이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다들 내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틀렸다. 사실 겉모습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이 '착시 현상'에 재미가 들려서 1월 한 달간 열심히 다꾸를 했다. 매일 쓰기는 힘들지만 평소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겨우 쓰던 것보다는 훨씬 많은 내용이 남았다. 덕분에 올해 다이어리가 백지로 남는 일만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대충 휘갈겨 쓸 때보다는 확실히 하루를 소중하게 대하는 기분이 든다. 그게 아주 평범한 날이었더라도. 어떤 일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 힘이 든다면, 형식부터 바꾸어 보는 것도 괜찮은 답이 된다. 정말로 특별한 날이 올 때까지, 일단은 이 착시를 잘 써먹어 볼게요.



이렇게 꾸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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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소중한 도전 일기

늘 새로움을 갈망하는 인간의 하찮은 도전 일기. 목표는 오로지 꾸준한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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