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스며드는 이른 아침, 동산洞山을 오른다. 번잡한 일상을 내려놓고 심신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이곳은 나에게는 더없이 아늑한 치유의 공간이다. 산길을 걷고 있으면 마음을 어지럽히던 소소한 고민은 어느새 바람결에 흩어지고, 편안한 휴식과 사색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동산 숲길은 천천히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부담 없는 산책로이다. 비교적 완만한 산세를 지닌 산이라 가벼운 옷차림의 주민들이 자주 오르내리는 곳이다. 동산 입구에 들어서면 싱그러운 소나무 숲길이 반겨 준다. 솔숲을 걷노라면 여름에는 나무들이 드리워 준 그늘이,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나의 친근한 동행이 되어준다.
산은 높이와 크기로만 가늠할 수 없고, 산이 내어주는 너른 품은 그것의 넓이와 비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작은 동네 산에 불과하지만 내 마음에 다가오는 동산의 느낌은 여느 큰 산에 못지않다. 동산의 우거진 숲속에 앉아 있으면 번잡한 도시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잃었던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된다. 흙과 바위, 나무뿌리가 얽혀있는 숲길, 그리고 새소리가 들리는 자연 속에서 내 마음의 소리는 가만히 말을 건넨다. 이런 정겨운 자연을 가까이 두고, 왜 그동안 먼 곳의 풍경만 찾아다녔는지.
삼월 중순이지만 동산의 숲은 아직 겨울을 보낼 생각이 없는 듯 가지가 앙상하다. 그나마 이제 막 머리를 내미는 노란 산수유가 봄이 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한다. 앞으로 얼마간, 봄은 하루가 다르게 더 선명한 색깔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봄의 따사로움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더 부지런히 동산을 찾게 될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산행도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만큼은 숨이 다소 가빠진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일상의 익숙한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와 매일 오가는 거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래에서는 삭막하게만 여겨졌던 도시의 풍경도 산 위에선 제법 아름다워 보인다. 숲이 우거진 자연과 정다운 이웃이 함께 하기에 그런 것이리라.
동산의 청량한 숲은 사람들의 굳어있던 오감을 깨우고 마음의 벽도 허문다. 동네에서 데면데면했던 이웃들도 숲길에서 만나면 반가운 표정으로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게 된다.
동산은 언제 와도 아낌없이 자신의 너른 품을 내어주는 고마운 산이다. 걷다가 무료하면 잠시 벤치에 걸터앉아 따스한 바람에 묻어오는 봄볕을 받는다. 그리고 느리게 흘러가는 풍경과 사람들을 눈 속에 담으며 생각한다.
‘시간은 항상 같은 속도로 흘러가는데, 속절없이 빠르다고 느낀 것은 늘 분주했던 내 마음 탓이었다는 것을.’
몸속의 당이 떨어질 때 한 알의 사탕이 비상약이 되듯, 마음의 당이 갑자기 떨어질 때 닫혀있던 마음에 햇빛을 들이고 바람을 통하게 하는 치유의 산, 나에게 동산은 그런 산이다.
지척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