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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세동 May 11. 2023

꿈과 현실 사이 최전선에서
전쟁하는 사나이

차세동 Intro

글쓰기보다는 행동하는 것이 익숙했고,

듣기보다는 말하는 것이 익숙했다.

하지만 사람은 역시 변한다. 이곳에 글을 쓰다니.


2017년,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맨땅의 헤딩, 스타트업 창업가가 되었다.


역시, 글쓰기보다는 행동하는 것이 익숙했고,

듣기보다는 말하는 것이 익숙한 덕분이었다.

두려움을 느낄 찰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셜 스타트업 창업가가 되었다.


세상에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공부에 흥미가 없던 사고뭉치는 뒤늦게 남들의 공부를 쫓아가기에 바빴다.

학교는 짜증 나는 놀이터였고, 가족은 불행한 구치소 같았다.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을 경험하면서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힌 그는 스스로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조금 더 그에게 따뜻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 어린 소년의 바람은 이 세상이 서로에게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비전으로 성장했다.

늦게나마 그가 공부를 해야 했던 이유다.


물론 그때마다 차세동에게 돌아오는 건 '동정 섞인 비난'이었다.

무엇부터 어찌할지 모르던 차세동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공부는 선생님 말씀을 무작정 적는 것.

구구단도 정확히 외우지 못해 속으로 덧셈을 반복하며 곱셈을 하는 척 연기하던 그에게 최선의 공부법이었다.

이해도 못한 채 선생님 말씀을 속기사 마냥 받아 적고 있으면 선생님도 친구들도 이야기했다.

'공부하는 척 좀 하지 마' 혹은 '그렇게 무식하게 공부하면 안 된다.'

난 간절히 구했다. '그러면 나 공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돼?'

그 결과가 동정 섞인 비난이다.

아무도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단지 동정하면서 무식한 방법으로 분투하는 그를 비난할 뿐이었다.

중학생 차세동이 느낀 모든 것이었다.


이제는 나를 버린 세상에 덤비기로 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온 차세동은 본인과 같은 친구들을 발견했다.

너무 늦어 도움을 구하는 것조차 죄인 것 같은 친구들.

그는 그가 만난 씁쓸한 동정과 비난의 세상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그가 그를 버린 세상에 덤비겠노라 결심했던 것이다.

'악습이 끊기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도 그다지인 성적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그때까지도 그는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참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는 학교가 끝나면 빈 교실을 빌려 본인의 중학교 시절을 반복하는 친구들에게 보충수업을 해주었다.

쏟아지는 비웃음과 '너나 잘해!'라는 핀잔은 그의 몫이었다.

그렇게 차가운 세상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그는 생각했다.

세상이 나를 버린 게 아니라, 사람들이 이 세상을 버린 것인가.


사람들이 버린 세상을 주워 담기로 했다


그는 결심했다.

사람들이 버린 세상을 주워 담기로.

사람들의 투기와 유기 속에 차가워진 세상을 모아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보기로.

그렇게 그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그는 글쓰기보다는 행동하는 것이 익숙했고, 듣기보다는 말하는 것이 익숙했다.

두려움을 느끼기 전에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불도저 같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2017년,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는 사람들이 버린 세상을 주워 담기로 세상에 나섰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소년의 맨땅의 헤딩이었다.

이제부터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2017년에 비하면 시간이 많이 흘렀다.




2017년부터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나는 행동하는 것보다는 글 쓰는 것이 익숙해졌고,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이 익숙해졌다.


현실의 벽에 넘어져도 호기롭게 그 벽을 부수겠다며 계란을 던져댄 결과였다.

행동하기 전에는 글을 썼고, 말하기 전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유하는 법을 배웠다.


만들고 싶은 문화가, 바꾸고 싶은 세상이 있다.

내가 사업을 하는 이유이다.


원래는 선생님이 되려고 했다. 그것도 유능하고 영향력 있는 선생님.

그래서 나름 명문대학교에 진학하려 애썼고 실제로 이루어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마음 아픈 가정사와 개인사를 이겨내며 힘쓴, 내 인생의 보답 같은 결과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문화도 세상도 바뀌지 않는다.

선생님도, 교육감도 바꾸지 못하는 걸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그럼에도 해내는 사람이 있다.

우리의 일상을 바꾼 스마트폰, 우리의 여가를 바꾼 유튜브와 넷플릭스까지.

그렇다, 비즈니스였다.


그렇게 스무 살, 호기롭게 소셜벤처를 창업했던 것이다.

신념과 낭만이 넘치는 꼬맹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습이 꽤 대견하다.

사실 많이 변해버린 나는 아직도 내가 신념과 낭만이 넘치는 꼬맹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5평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며 수많은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 삶을 동고동락했다.

내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나에게 의지하는 아이들과 청춘들, 치열하게 함께하는 팀원들이 생겼다.

아이들과 청춘들, 팀원들과 함께 한 역사의 나열은 눈물과 여유로운 시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두껍게 쓰인 서사다.

지금도 수많은 아이들과 청춘들을 만나며 그들과 삶을 함께한다.

상담부터 수업과 강연부터 콘서트까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삶 전반을 함께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회사의 모든 팀원들이 나와 함께 하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5평 컨테이너에서 나는 우리 회사의 공동대표이자 공동창업자 '기훈이'와 함께 생활했다.

앞으로도 '기훈이'는 자주 등장한다. 내 사유의 주연 같은 조연이다.


그 산 중턱, 옥상에 덩그러니 놓인 컨테이너에서 기훈이가 술에 취해 나에게 이야기하더라.

필근아, 너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전쟁하고 있구나.


정확하다.

나보다 더 나를 명쾌하게 설명해 준 문장이었다. 속이 시원하더군.


꿈과 현실사이 최전선에서 전쟁하는 사나이,

차필근의 활동명이 차세동이다.

차세동으로 활동하는 이유는 앞으로의 나의 글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밀도 있는, 우당탕탕한 삶을 살고 있다.

대한민국의 타성과는 정확히 정 반대로, 더 자세히 설명하면 그 타성의 물줄기를 바꾸려 애쓰는 사람이다.

아직은 돌멩이 몇 개 물속에 던지는 꼴이지만 꼭 해내리라 믿는다.


결국 이 공간에서 행동보다 글쓰기가 익숙해진 지금의 나는,

말하기보다 듣는 것이 익숙해진 내 사유들을 자유롭게 적어보려고 한다.


상당히 추상적인 사람이라, 이런 인트로라도 작성하지 않으면 

혹시라도 나의 글을 찾아 줄 소중한 독자 분들께 복잡한 물음표만 던지게 될까 걱정되어 적었다.


그래도 이런 추상적인 사람의 표면과 이면을 구경하는 일,

생각보다 재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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