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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세동 May 12. 2023

낭만과 객기로 지은 아지트

차세동의 표면

청소년들을 만나든, 청년들을 만나든

그들의 수요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공간'이다.


그들은 늘 그들만의 공간을 찾으며

그들만의 아지트를 상상한다.


2018년, 낭만과 객기가 가득한 스물한 살.

차세동은 그 공간을 직접 짓기로 한다.


그들이 공간을 필요로 한다면 공간을 짓는다.

그것이 당시의 차세동다운 일차원적 사고였다.


공간이 필요하다면 공간을 짓고,

막노동이 필요하다면 막노동을 하고,

시기가 늦었다면 잠을 줄여서라도 시간을 마련하고,

사람이 필요하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가는 것.

그것이 차세동의 낭만이고 객기이며 그가 세상 위에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이미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일념에 완전히 빠져버렸고

이곳저곳에서 빌린 2천만 원 정도로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보증금과 월세를 계산하고 체계적으로...?

그건 당시의 차세동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무조건, 비전을 채워야 한다.

'좋아함에 도전하고 서로를 바라보자' 그가 가진 비전이었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최대의 효용가치를 주어야 한다.

그가 가진 유일하고도 견고한 기준이었다.


그렇게 그는 5~6명의 팀원과 함께 유명 학원가 중심 오아이스 같은 공간이라며 40여 평의 공간을 임대했다.

그리고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들로 채우고 또 채웠다.


턱 없이 모자란 돈이었다.

그래서 직접 벽지를 뜯고 페인트를 칠했다.

가구는 중고거래와 직접 조립하는 제품들로 공수했다.

정말 혼자 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은 공사들은 플랫폼 속 숨은 고수들의 힘을 아름아름 빌렸다.

먼 길을 돌아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었다.

'돈'은 없었지만 '돈'만 없었던 낭만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페인트 범벅인 옷과 바지, 얼룩덜룩 뜯어진 슬리퍼를 신은 그와 동료들 앞에

'드림라운지 1호점'이 문을 열었다.


드림라운지 1호점 '우리 모두의 열린 공방'


하고 싶어서 만들어진 공간, 드림라운지는 그런 공간이었다.

드림라운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그들은 산속 작은 옥상 컨테이너에서

수많은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 꿈을 만들었다.

그렇게 꿈꾸는 우리들만의 아지트를 만들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돈'은 없었지만, '돈'만 없었다.

타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하다고 했고

혹자는 미친 짓, 정신 나간 짓으로 불렀다.


후원자 하나 없이 공간을 마련했고, 전공자 하나 없이 공간을 완성했다.

물론, 엉망진창이었다.

돈은 없고, 부동산은 하나도 모르겠고, 생전 페인트칠은 처음 해보고, 가구도 만들다 팔 빠지겠고..

그럼에도 우리들의 낭만과 꿈이 가득한 공간이 멋지게 우리 앞에 완성되었다.


공간은 모두 무료로 운영했다. 그가 가진 유일하고도 견고한 철학과 기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유일하고도 견고한 철학과 기준 덕분이었을까

꿈같은 공간에서 꿈같은 이야기들이 가득 쌓여갔다.


드림라운지를 찾아오는 청소년과 청년들은 밤을 지새우며 자신의 꿈을 펼치기도 하고,

누구보다 낭만에 젖어 자신들의 이야기와 타인들의 이야기가 뒤섞이는 경험을 했다.

공간이 주는 힘은 대단했다. 낭만과 꿈을 담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모이는 이 공간은 커다란 힘을 발산했다.


청소년이든 청년이든 공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그리고 코로나 19가 창궐하기 전까지 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차츰 드림라운지를 이용하는 청춘들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를 아는 청소년, 청년들만이 드림라운지를 찾기 시작했고 그 때야 그는 깨달았다.

청춘들에게 부족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었구나.


드림라운지를 놀러 오겠다는 말,

'연락할게~', '밥 한 번 먹자~'와 같은 상투적인 인사가 되었다.

공간의 가치보다 시간의 부족이 그들의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 깨달음에 뼈 아파할 때쯤, 코로나 19가 창궐했다.

드림라운지라는 공간의 생명력은 물론,

공간을 유지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경제적 호흡기까지 부서져버렸다.


하루 2시간의 수면, 22시간의 노동으로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해일이었다.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 결국 휩쓸려가고 말았다.


그렇게 드림라운지 1호점이 문을 닫았다.


드림라운지 1호점을 떠나며 그가 사람들에게 썼던 편지를 첨부한다.


 며칠 동안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심지어 웃고 있다가도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저희들은 지금의 ‘드림라운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열린 공방’을 꿈 꾸며 저희들과 함께 출발한 드림라운지는 모든 공간 저희가 직접 기획하고 공사하며 많은 친구들의 꿈을 여행했습니다.

그 공간에서 저희는 너무나 행복했고, 그 누구보다 좋아함에 도전하며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밤을 지새우며 보낸 날들도, 그리고 아이들과 친구들, 모든 청춘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보낸 그 장면들도 한순간의 추억으로만 남는다는 게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아 시계를 멈추고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습니다.

 ‘드림라운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었는지, 놓아버리기에는 너무나 커져버린 이 꿈같은 공간이 주는 힘 때문이었는지 저희는 드림라운지를 떠나는 결정을 하기까지 많이 나약해졌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습니다. 하지만 5평 컨테이너에서 출발했던 저희들의 그 시작의 순간을 간직하고, 다시 한번 도약하고자 여러분들의 눈높이로 이동합니다.

 ‘우리 모두의 열린 공방’이었던 드림라운지는 ‘우리 모두의 아지트’ 드림라운지가 되어 ‘1층’에서 다시 한번 여러분들 곁으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드림라운지’는 여러분들이 지치고 위로가 필요할 때 따뜻한 차나 간식, 밥 한 끼와 상담, 콘텐츠와 프로그램 등을 내어주는 우리 모두의 아지트로 다시 탄생할 예정입니다.

 저희들을 만화 ‘원피스’에 비유하고는 합니다.

각자 다른 꿈을 가진 친구들이 함께 하나의 배를 타고 각자의 꿈을 향해 서로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모습이 저희들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만화 ‘원피스’에서 주인공과 동료들은 그들의 여행을 함께 출발했던 ‘고잉메리호’라는 배를 여행 도중 떠나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써니호’라는 배를 타고 모험을 이어가게 됩니다.

저희들은 저희들의 첫 번째 배였던 ‘우리 모두의 열린 공방’ 드림라운지를 떠나보내고 우리와 새로운 여행을 함께 할 ‘우리 모두의 아지트’ 드림라운지를 맞이합니다.

 언제나 꿈과 추억 속에 남아있던 ‘우리 모두의 열린 공방’ 드림라운지를 떠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저희들과 함께 한 청춘들이 ‘우리 모두의 열린 공방’ 드림라운지가 우리를 지켜주어서 너무나 고마웠고, 우리 모두가 함께였기에 너무나 행복했다고 전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서투른 청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공간은 우리들의 꿈과 추억 속에서 저희들과 함께 여행을 이어갑니다.

저희들은 새로운 공간으로 여러분들 앞에 다시 서겠습니다.


차세동은 그런 사람이다.

그의 공간이 무너질지언정 그의 철학과 신념이 무너지지 않는 한 다음을 기약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고야 마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드림라운지 1호점, '우리 모두의 열린 공방'이 문을 닫는 1년의 과정 동안,

드림라운지 2호점, '우리 모두의 아지트'가 문을 열었다.


드림라운지 1호점을 지을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드림라운지 1호점을 완공하고 팀원들이 가장 많이 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는가.

'와 이거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많았으면 절대 못했다.'

그렇다, 드림라운지 2호점을 지을 때 그들은 이미 2그릇의 미역국을 들이켠 상태였다.

그리고 많은 동료도 잃은 뒤였다.

휘청이는 회사에서 낭만과 객기만을 부리는 선장아래 소중한 사람들에게 많은 고생을 경험시키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1호점을 지을 때보다 경제적인 사정은 훨씬 나빴다.

이미 1호점의 보증금에서 수개월의 월세까지 깎아먹고 남은 초라한 돈뿐이었다.


물론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여전히 비전과 낭만을 외치는 차세동이 있었으며

수많은 청춘들의 꿈을 기억하는 차세동이 있었다.


그렇게 드림라운지 2호점 '우리 모두의 아지트'는 꿈이 남겨진 아지트가 되었다.


드림라운지 2호점을 짓는 일은 1호점을 짓는 일보다 몇 배는 버거웠다.

미역국 2그릇의 무게, 부족해진 인력, 초라한 돈까지.

게다가 공간은 10평 남짓으로 훨씬 좁아졌는데 공사의 규모는 훨씬 커졌다.

드림라운지 2호점을 짓기 위해 지역사회 끝에 위치한 폐허 같은 공간을 임대했다.

처참했다. 아무것도 없었고 고칠 것 투성이었다. 좁아진 공간에도 공사의 규모가 커진 이유였다.


1호점 때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었다.

직접 벽지를 뜯고.. (대체 그동안 벽지 위에 벽지를 몇 번이나 바른 건지, 벽지의 10년 역사는 다 봤다.)

뜯고 뜯기를 한 참 한 뒤에야 페인트칠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가구는 1호점 때처럼 중고거래와 직접 조립하는 제품들로 공수했다.

중고거래 플랫폼을 연신 들여다보며 용달차를 부르고, 직접 차를 몰고 가서 별 가구들을 다 공수해 왔다.

나무를 주문해 책상을 직접 조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허름한 천장은 망치와 빠루를 들고 와서 직접 스키고글과 방진마스크를 끼고 하나 둘 뚫어버리기에 이르렀고

'할 수 있을까..?' 싶으면 일단 직접 다 해봤다.

물론 이번에도 정말 혼자 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은 공사들은 플랫폼 속 숨은 고수들의 힘을 아름아름 빌렸다.


그렇게 일 년여간의 공사 끝에, 드림라운지 2호점.

꿈이 남겨진 '우리 모두의 아지트'가 문을 열었다.

드림라운지 2호점 '우리 모두의 아지트'

코로나 19의 끝자락,

그들은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하여간 생존력하나는 끝내주는 차세동이다.


코로나 19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내 생존했다.

차세동의 비전과 신념, 낭만이 고스란히 남아있기에 당연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생존과 성공을 의심하지 않는다.


드림라운지 2호점에서는 1호점 때보다 더 다양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쌓여왔다.

1호점 때 아쉬웠던 요리시설이나 분위기 등을 2호점에 온전히 담아낸 까닭이었다.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도 설렘과 즐거움, 낭만과 비전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이 공간에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드림라운지 2호점에서는 수많은 청소년, 청년들이 꿈을 꾸고 있다.

1층으로 내려오면서 더 많은 만남과 꿈이 시작된 의미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이제 더 나아가 드림라운지는 우리 같은 낭만과 객기 넘치는 사람들과 회사들을 모으는 허브역할을 한다.

얼마 전에는 '안무서운회사'라는 은둔형 외톨이를 돕는 회사를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들만의 힙한 색깔로 그들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차세동은 바로 연락을 드렸다.

찾을 수 있는 연락처는 모두 찾아내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리를 마련했다.

그렇게 닿은 연락을 통해 차세동은 안무서운회사의 유승규대표님을 뵐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그들은 안무서운회사와 MOU를 체결했다.

하여간 추진력하나는 끝내주는 차세동이다.

이렇게 드림라운지는 많은 소셜 임팩트를 만들어 내는 사람과 회사들이 함께 하는 공간이 되어간다.


드림라운지 2호점은 분명 더 매력 넘치는 곳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제는 이 공간에 우리만의 객기와 낭만을 채우는 것이 아닌,

우리 같은 또 다른 이들의 객기와 낭만을 함께 채워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인 객기와 낭만은 목소리와 영향력, 곧 문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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