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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먀니 Oct 23. 2024

구분

 처음 약을 타고 제일 난감했던 건 구분에 관한 문제였다. 처방받은 펜타사서방정과 펜타사좌약의 디자인이 내 눈에 너무 비슷했던 거다. 디자이너의 악취미랄지. 대충 봐선 식별이 어려울 정도라 이거 자칫하다간 서방정을 항문에 넣고 좌약을 입으로 먹겠구나 싶었다. 괜한 말이 아닌 게 궤양성대장염 질환자의 복약 기간은 평생이다. 긴 세월 동안 계속 먹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실수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안 그래도 자주 덤벙대는 성격의 나라면 더더욱. 


 이런 고민을 가장 친한 두 사람에게 털어놨더니 각자 나름의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냥 처음부터 둘 다 항문에 넣으면 안 되냐? 모르고 좌약을 입에 넣는 것보단 그게 낫겠지.”

 “서방정만 위에 날짜를 표기해서 따로 분류해 보면 어떨까?”


 철수 쪽의 말은 대꾸할 가치도 없었기에 고민 않고 애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망할 새끼. 박스를 뜯고 안에 든 소포장 용기 위에 그날그날 먹을 날짜를 유성매직으로 적어놓았더니 과연 효과가 있었다. 단지 표기의 유무만으로도 구분이 확 쉬워졌을뿐더러,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리는 일 또한 줄어 일석이조였다. 역시 활자란 유능하다.


 “근데 진짜 모르고 좌약을 삼키면 어떻게 되지? 삼킨 사람 없나?”


 뒤늦은 애인의 의문이다. 나도 덩달아 궁금해져서 환우 카페를 뒤져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좌약을 삼켰다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일부러 먹은 건 아니고 역시나 내 우려대로 서방정과 헷갈렸다고 한다. 그래서 후기가 어떻게 됐느냐면, 뭐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의도치 않은 오용이 의학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진 몰라도 일단 느끼기에 별 탈은 없었다고 한다. 하긴. 그러고 보면 발모제를 삼킨다고 해서 꼭 몸속에 털이 자라나는 건 아니니까. 모든 사물엔 저마다의 쓰임처라는 게 있고, 그게 어긋난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들도 허다했다. 꼭 발동 조건이 안 맞으면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게임 아이템처럼.  


 “으음…. 싱겁네.”


 내가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옆에서 어쩐지 실망하는 애인이었다. 대체 얜 뭘 기대했던 걸까. 서방정을 항문에 넣으라는 철수도 그렇고, 어째 주변에 멀쩡한 인간이 하나도 없는 기분이다. 어디선가 그러길 주변인들이 다 비정상으로 느껴진다면 자신부터 비정상이 아닌지 의심해 보라던데 과연. 으음. 


 한편 헷갈리지 말아야 할 건 약뿐만이 아니었다. 병 자체에 대한 시기적인 구분도 필요했다. 질환자라 해서 내가 늘 아픈 것은 아니고 이 병은 엄연히 활동기와 관해기가 나누어져 있다. 병세가 수그러드는 관해기 땐 거의 보통 사람처럼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실제로 확진 후 근 일 년 간 난 쭉 관해기 상태였다. 지켜야 할 몇 가지 새 규칙이 생긴 것만 빼면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중 하나가 금주였는데, 당초 걱정했던 것과 달리 막상 시작해 보니 생각보단 끊을만했다. 코인 노래방을 금지시켰다면 몰랐겠지만 술쯤이야 뭐. 애인과 맨정신으로 재밌게 노느라 미처 금단 증상을 느낄 새도 없이 적응해 버리고 말았다. 가끔 술이 당길 때도 별로 문제 될 건 없었다. 요즘 세상에 다양한 무알콜을 파는 술집은 얼마든지 있었으니 말이다. 


 "무알콜로 되겠어? 남들 취할 때 혼자 맨정신이라는 게. 알코올이 ‘먹어’라면, 무알콜은 ‘기다려’ 상태나 마찬가지일 텐데."

 “쉿. 간이 들어.”


 애인이 날 은근슬쩍 강아지로 만들었으나 딱히 알코올이 절실한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술자리 특유의 분위기들이 그리웠을 뿐이었다. 이를테면 술집의 분위기에 기대 주고받던 이런저런 대화들. 농담들. 삶에 대한 무해한 치기 같은 것들. ‘기다려’가 아닌 ‘떠들어’에 가까웠고, 약간의 사교성과 화술과 주접만 있다면 얼마든지 충당 가능한 것들이었다.  


 다행히 그런 내 결백을 입증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얼마 후. 일부러 날을 잡아 찾아들어간 술집에서 난 그동안 쌓여왔던 욕구를 마음껏 분출시켰다. 계속해서 몇 잔 째, 즐겁게 무알콜을 홀짝이는 날 보며 애인은 얼마쯤 질렸단 표정이었다. 아마 속으로 얘도 참 어지간한 새끼구나…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좋았다. 난 규칙을 어기지 않고도 욕구를 충당했고, 눈과 귀가 없는 간으로선 나의 기만을 알아챌 리 없으니. 이만하면 모두에게 해피엔딩이라 할 만했다. 


 그리고 그날 또 무슨 일이 있었던가. 한껏 들뜬 우리 머리 위론 아시안컵 축구 국가대표 경기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한국이 바레인에 3대 1로 승리했다. 이강인 선수의 멋진 슈팅이 인상적이었다. 모두 흐트러진 채로 테이블마다 주량껏 승리를 축하했다. 우리는 조금 취했었던 것 같다. 


 구분하기 힘든 약과 구분하지 않은 음료들로 이루어진 이런 하루하루들이 가끔은 거대한 카테고리의 장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난 언제까지 이런 관해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당장은 잊고 최대한 즐겁게 지내고자 한다. 삶은 바게트보단 피자에 가깝다. 절대 한 가지 토핑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파인애플과 피망과 올리브가 사이좋게 오순도순 모여 있기 마련이다.


 구분이란 명사는 ‘둘 이상의 갈래’라는 조건을 함의하고 있어서 좋아한다. 한쪽을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비록 지난 나의 발병은 어쩔 수 없는 사고였을지언정 꼭 그게 결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나의 낙관을 선택할 수 있다.


 그 당연한 사실이 때로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준다.



정말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혹시 언젠가 좌약을 먹게 된다면 저도 후기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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