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점심을 먹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철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덥다…. 뭐하냐?”
목소리의 점성으로 미루어 보아 별 용무는 없는 듯했다. 그냥 아무나 쩍 하고 달라붙어 있을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여름만 되면 끈끈이 장난감으로 변하는 철수니까. 매해 돌아오는 연례행사 같은 일이라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나 일해야 돼.”
“그래? …워어어~ 만약에 말야~ 우리~.”
내 에두른 통화 거절 의사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자신의 애창곡을 부르짖는 철수는 순순히 전화를 끊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낭패다. 아마 앞으로 최소 30분은 더워 죽겠단 투정이 이어질 것이다.
안 그래도 평소 남들보다 유독 더위를 많이 타는 철수였다. 하물며 이 살인적인 혹서기의 주차장 근무가 결코 녹록지만은 않을 것이다. 힘들면 가만히나 있지. 왜 꼭 쉬는 시간마다 전화해서 내 청각을 괴롭히려 드는지 모르겠다. 철수의 점착력을 익히 아는 난 얼른 통화 모드를 스피커폰으로 돌려놓은 뒤 일할 준비를 마친다. 내가 모니터에 새 활자들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는 동안에도 철수의 넋두리는 계속되고 있다.
“여름 대체 언제 끝나냐? 내가 생각해 봤는데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배기가스잖냐. 그 배기가스가 하루 종일 모여드는 곳이 바로 주차장이고. 그러니 얼마나 더 덥겠어. 완전 초초초 온난화가 따로 없지. 안 그러냐? …여보세요? 듣고 있니? 뭐하냐?”
“…일! 일! 일한다고!”
아마 폭염으로 인한 짜증 때문이었을 거다. 하마터면 온난화고 뭐고 입 좀 닫으라 할 뻔했으나 차마 우정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우정이란 가끔 귀찮고 번거롭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뒤로도 한참을 더 떠들던 철수는 정확히 30분을 채운 뒤, 다음 근무자랑 교대하러 간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졸지에 해방된 난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론 좀 봉변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고생하는 친구한테 내가 좀 너무했나. 아직 잔열이 남아있는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조금쯤은 반성했다. 사과의 의미로 다음번에 만나면 음료수라도 한 잔 사줘야겠다. 그렇게 마음먹으면서도 내일 이 시간에 울리는 전화는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나였다.
그날 저녁엔 퇴근 중인 애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올해 이직과 이사라는 거사를 연달아 치러낸 애인은 최근 들어 말수가 부쩍 늘었다. 꼭 그러지 않으면 압력 때문에 터져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오늘도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폭풍 수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 오늘 진짜 개 어이없는 일 있었잖아. 들어볼래?”
“창희 개새끼!”
“… 아니. 오늘은 회사 욕 아니야.”
당연히 새 회사의 인수인계 빌런 이야기일 줄 알았던 나는 그만 살짝 머쓱해졌다. 흥이 꺾인 건 애인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하려던 말을 꿋꿋이 이어나가는 모습이 꼭 잔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장송 같았다. 아무튼 이야기를 들어보니 회사가 아닌 집이 말썽이었다. 어젯밤. 씻고 나온 뒤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이상하게 등이 축축하더란다. 몸을 덜 말렸나? 일어나서 살펴보니 에어컨이 범인이었다. 에어컨 배관에서 샌 물이 벽을 타고 흘러내려 침대 시트를 적셔놨던 거다.
아, 시발.
안 그래도 입주 당시에 똑같은 문제가 있었던 에어컨이었다. 집주인이 뭐 하러 업체 부르냐며, 자기가 알아서 고쳐놓겠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고친 지 채 한 달도 안 돼 문제가 재발한 거다. 한여름의 열기와 습기로 인해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꾹 억누르고 최대한 간략히 집주인에게 톡을 보냈다.
[203호 세입자입니다. 에어컨에서 또 물이 샙니다. 이 폭염에 몹시 곤혹스러우니 조속히 해결 바랍니다.]
일전에 보냈던 보일러실 곰팡이 관련 문제도 읽씹 중인 집주인이었으므로 순순히 협조적일 거란 기대는 없었다. 그래서 전화기를 내려놓기도 전에 곧바로 콜백이 왔을 땐 되레 당황하고야 말았단다. 여보세요? 얼떨떨하게 받은 수화기 너머로 집주인은 에어컨 대신 애인의 예절을 문제 삼았다.
“아니 나더러 왜 문자를 예의 없이 보냈냐는 거야.”
“엥? 대체 어디가?”
“사무적으로 용건만 틱 보냈다고. 왜 인사를 안 하냐며 기분 나쁘다잖아.”
“그 사람 혹시 집주인과 주인의 역할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거 아냐?”
애초에 수리 기사를 불러줬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걸. 대체 왜 고치란 에어컨은 안 고치고 멀쩡한 남의 집 귀한 딸 버릇을 고치려드나. 젊은 여자 세입자라고 얕보였나 싶어 내가 대신 나서볼까도 해봤으나 그럴 필욘 없었다. 강한 내 애인. 갖은 회유와 협박 끝에 이미 집주인 이름으로 수리 기사 접수까지 마쳤다고 한다. 잘했다며 손뼉을 치는 내게 애인은 남은 토로를 마저 탈탈 털어냈다.
“오늘 난 느꼈어. 이런 게 바로 을의 고충일까? 쉽지 않아, 독립….”
아쉽게도 그 말에 대해 내가 뭐라 위로를 보내는 일은 없었다. 그새 집에 도착한 애인이 밥 먹어야 된다며 냉큼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다. 어쩐지 오늘 계속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느낌이 드는 건 과연 기분 탓일까? 예절을 강조한 집주인의 심정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늦은 밤엔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랜 떠돌이 장사 생활을 청산하고 재작년 보령에 커튼 가게를 차린 엄마는 꼭 하루 한 번씩 전활 걸어 내 안부를 묻는다. 그럼 난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어김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한다.
이어지는 말장난 말장난 말장난. 내 낙천성은 전부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거라 우리 통화 내용은 가을철 낙엽 구르듯 가볍기 짝이 없다. 통화 말미에 시작되는 엄마의 사과 레퍼토리만 빼면 말이다. 엄마가 너 중학생 때 너한테 지은 죄가 너무 많아. 늘 미안해. 난 일부러 말을 끊고 괜히 엄마에게 툴툴댄다.
“엄마…. 내 좌약이나 뺏어먹지 마.”
지난번 엄마가 집에 왔을 때, 내 좌약을 보고 비타민이냐며 뺏어먹으려던 일을 지적한 거였다. 그러자 엄마는 민망한지 특유의 웃음소리로 이히힉, 하고 저항 없이 웃는다. 얘. 내가 알고 그랬니? 난 한숨을 쉰다.
“난 아무래도 전생에 불상이었나 봐.”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들이 다 나만 보면 붙잡고 속세의 자기들 번뇌를 하소연해. 아니 나도 환잔데. 환자한테 왜들 그러는 거야?”
엄마가 다시 한번 이히힉 웃는다.
“얘. 그래도 불쌍하게 보는 것보단 불상이 훨씬 낫지, 뭘 그러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난 불쌍과 불상을 연계한 엄마의 라임이 맘에 들어,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재미가 들렸는지 우스꽝스러운 음정을 붙여 수화기에 대고 “나하무아하미타부훌”을 외고 있다. …지금은 천주교 신자 아닌가? 그 불경스러움을 애써 못 본 체하며, 어쨌든 내가 아직 이들에게 불쌍이 아닌 불상임에 안도한다.
언제까지고 내가 불쌍해지질 않길.
그럴 확률이 희박하다는 걸 물론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소망이란 원래 조금은 허황된 맛에 비는 거니까. 내 나지막한 소망 위로 유난히 뜨겁고 시끄럽고 불ㅅ상스러웠던 하루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