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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Nov 13. 2019

무슨 소용이냐

뱀술

인사계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원입대했다. 사병으로 1년 복무하고 이러다 죽겠다 싶을 만큼 구타당한 뒤, 하사관에 지원해 말뚝을 박았다. 군대는 모든 면에서 낯설고 끔찍했지만 그래도 절대 굶기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무던한 성격에 꼼꼼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했다. 손재주가 좋아서 대대 내의 크고 작은 보수공사를 혼자 도맡았다. 용접과 보일러 기술을 군에서 땄다.


내가 병장이 되었을 때, 그의 나이 40대 후반이었는데 얼굴은 이미 60대를 앞두고 있었다. 같이 있으면 인사계가 아니라, 할아버지랑 같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상병 때까지 엄두를 못 내다가 말년에 마지막 4개월을 반짝 긴밀하게 지냈다. 함께 낚시 가고, 산나물 캐고, 페인트칠하고, 몰래 술친구도 했다.


그에겐 뱀술의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가 만든 뱀술은 인기가 좋아서 장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퉈 손을 내밀었다. 뱀술은 그에게 뇌물이나 청탁의 도구가 아니었다. 장인정신이 발현되는 절정에서 밀봉된 최고의 쾌락이었다. 도자기를 만들어 굽는 도인의 숭고한 정신에 비견됐다.


운 좋게 옆에서 뱀술 담그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아무 뱀이나 선택하는 게 아니다. 봄, 그것도 겨울잠에서 깬 뱀만을 잡았다. 가장 에너지가 충만하고 독기가 오른 시기였다. 그중에서 개구리를 막 잡아먹는 놈을 최고의 품질로 꼽았다. 마침 옆 대대에서 개구리 먹는 뱀에 물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사계가 출동해서 땅 속에 숨은 놈을 잡아왔다. 한 팔꿈치 길이의 크지 않은 독사가 양파망 속에서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렸다. 등에 주황색과 푸른 문신이 화려했다.


꼬리를 줄에 묶어 거꾸로 나무에 매달았다. 인사계는 장갑을 몇 겹씩 끼고 나무 막대기에 천을 둘둘 말았다. 물리지 않으려고 그런 줄 알았는데, 뱀 껍질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조심하는 거였다. 버둥거리는 놈이 3일이 지나자, 축 늘어졌다. 4일에 먹은 것을 다 게워내고, 5일에 똥오줌을 지렸다. 흉측하던 놈이 불쌍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자, 인사계가 막았다. “이때가 제일 위험해. 지금 물리면 후송도 못 간다.”고 겁박을 했다. 인사계는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나뭇가지로 뱀을 건드렸다. 죽은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기어이 열흘을 채우고 뱀을 나무에서 내렸다. 입에 나무토막을 끼워 독을 뺐다. 피부가 생각보다 단단해서 근육 덩어리가 살아서 움직이는 듯했다. 산 채로 물에 담가 몸을 깨끗이 씻어 하룻밤을 말렸다. 밤이슬이 마르기 전에 가늘고 긴 술병에 넣고 천천히 소주를 부었다. 일반 소주가 아닌 도수 높은 고급 소주라 했다. 안동소주 비슷한 것 같았다.


이때 술을 한꺼번에 붓는 게 아니라, 조금씩 부어 뱀의 머리가 위로 올라오도록 했다. 뱀이 머리를 처박기 일쑤여서 그 과정이 매우 까다로웠다. 어쨌든 뱀도 숨을 쉬려면 머리를 들어야 했다. 뱀의 자세가 중요해서 술을 붓다 말고 긴 나무젓가락으로 자세를 자주 교정했다. 이렇게 한참을 씨름한 끝에 뱀의 꼬리는 술병 밑에 두 바퀴 감기고 몸통 중간부터 머리가 술병 위로 올라오는 인위적인 자세를 만들 수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뱀이 곧바로 죽으면 곤란했다. 완전히 술을 채우지 않고 병을 밀봉한 뒤,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창고 안에 넣었다.


만 하루 뒤에 다시 병을 꺼내 뱀이 질식해 죽은 것을 확인하고 자세와 위치를 손봤다. 뭐 하나 공이 들어가지 않는 게 없었다. 가득 술을 채워 공기를 빼고 이번에는 촛농으로 완전히 밀봉해 땅에 묻었다가, 1년 뒤에 꺼냈다. 그렇게 만든 인사계표 뱀술은 모양이 좋았다. 독사가 마치 살아서 입을 벌린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받는 사람은 뱀이 숨을 쉬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죽어간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거실 장식장에 놓아두면 기품이 흐른다고 했다. 아까워서 먹지도 못했다. 


수량이 적다 보니 탐내는 대기자가 많았다. 하위 간부급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모양이 흐트러진 뱀술이라도 받으면 눈물을 흘리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어쩌다 한 번 맛을 보았는데, 술맛을 모르는 나로서는 판단이 어려웠다. 몸에 좋은 약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 간암을 고쳤다는 둥, 관절염이 나았다는 둥 숱한 속설이 들렸다. 무엇보다 정력에 좋다고 했다. 마누라가 늦잠을 자 아침을 굶을 수 있다는 경고가 대문짝만 하게 붙었다. 그러나 정작 인사계는 독신자 아파트에서 제일 연장자였다. 인사계는 안주로 허벅지를 꼬집는 버릇이 있었다. 제대 후, 길에서 함께 군 생활했던 사람들과 마주칠까 봐 걱정했는데, 인사계는 반가울 것 같았다. 60대였던 그 얼굴이 지금도 그대로여서 한눈에 알아보았으면 좋겠다.     


>> 마시는 법

1. 국내에서 구하기 쉽지 않다.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에 가면 싼값에 구입할 수 있다.

2. 설탕이나 조미료, 향신료를 가미하지 않은 100% 천연 뱀술은 국외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다. 

    국내로 돌아와 지방을 돌며 전문 땅군을 수소문해보자.

3. 살 것이란 확신을 준다. 상대가 부르는 가격에 놀라지 않는다. 

    운이 좋다면 제대로 된 뱀술을 맛볼 기회가 온다. 혀에 닿지 않게 한 번에 목구멍으로 털어 넣는다. 

    그리고 그 자리를 신속히 벗어나라. 그 한 잔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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