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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케빈 Feb 17. 2021

갑질과 정당한 권리 요구, 그 중간 어디쯤


 건설일을 하다 보니 '발주처 갑질'이라는 단어는 자주 접하게 된다. 더군다나 건설사로서 관계사 공사를 한다거나, 발주처로서 관계사 (건설사)와 일을 하다 보면 항상 이슈는 따라온다. 비단 관계사와의 문제뿐만 아니라도 건설업에서는 이 갑질에 대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해야 되는 것 같다.


 예전 건설회사에서 근무할 때는 업무적인 갑질보다는 업무 외 갑질이 더 심했던 것 같다. 국내 모 대기업에서 발주 낸 현장이었는데, 한 발주처 직원은 식사를 다 하고 불러서 계산을 시키거나, 노래방에서 일부러 양주를 오픈하고 간다던지 하는 아주 저급한 행동을 하기도 했었다. 당연히 그건 아주 극 소수 인원이 하는 짓이고, 요즘에는 그런 행동은 보이지 않지만 현장에서 갑질이 아주 심한 듯하다.


출처: 91%, 발주처 甲질 경험… A/S, 접대, 금품요구까지 다양 (http://www.engdaily.com/news/articleView.html?idxno=5008)



 솔직히 발주처의 입장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맞는 부분이 많이 있다. 특히 계약이나 도면에서 변경사항에 대해 추가 업무 지시하는 부분이 그렇다. 대부분의 공사가 설계가 완벽한 상태에서 진행된다거나, 컨셉이 정확하게 나온 상태에서 진행되면 변경사항이 많이 없겠지만, 제조회사의 입장에서는 설계가 완벽히 되는 걸 기다릴 시간도 없을뿐더러, 빨리 공장을 지어 제품을 만들어야 되다 보니 엄청난 Fast Track 공사가 진행된다. 그러니 나중에 추가 공사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사용자들 (기존 제조업 회사 사람들...) 은 건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하고, 건설사 입장에서는 괜히 싸우거나 하면 혹시 모를 불이익이 있을 수 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악순환이 이어진다. 결국 내가 해야 될 일은 사전에 충분한 검토를 하고, 추후 재작업이 생길 만한 것들은 최대한 줄이는 것. 그리고 재작업이 생기면 추가 비용을 확보한 뒤 일을 시키는 것이다. 쉽진 않지만 우리 현장도 처음보단 많이 좋아진 것 같다.


 하지만 발주처로서 아쉬운 부분도 많이 있다. 공사 담당자들이 기존 시방서나 현지 법규, 설계 도면 등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고, 대충 협력사에 맡겨 일을 진행하고, 공사가 진행된 부분에 대해 제대로 검사하지 않고, 일정 관리 안되고, 납기 못 지키고 하는 부분도 많이 있다. 이럴 때 담당자에게 수도 없이 얘기해서 진행이 안되면 소장님께 얘기하고, 소장님께 얘기해도 진행이 안되면, 담당 임원에게 요청하기도 한다. 건설사 담당자 입장에선 곤욕스럽지만, 발주처의 입장에서도 지켜야 될 일정이 있고, 고객사와의 약속 혹은 계약된 일정이 있으니 준공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공사가 안돼서 제품 생산이 안되면 결국 담당자 책임이다. 이런 부분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발주처 갑질은 정말 많이 봤다. 블라인드에 우리 회사 갑질 얘기가 나오면 너무 부끄러워 숨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 반성하고, 반성뿐 아니라 앞으로 개선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러기 위해 생각들을 이렇게 글로 적어두기도 하는데, 결국 발주처와 건설사와의 관계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일을 해야겠다. 존중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갑질 하려고 하는 나를 죽이며 일을 할 수 있도록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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