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케빈 Mar 06. 2022

기자재 발주를 하다 아버지께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신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생산 설비에 대한 제원을 접수하고, 그 제원을 바탕으로 구조/건축/설비/전기 등의 설계가 진행된다. 설계가 끝나면 건축에서 파일 및 철골 공사를 하고, 나 같은 전기담당은 할 일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아주 중요한 '전기 설비 발주'를 진행한다. 


 발주가 필요한 전기 설비는 설계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전기실 고저압반, UPS, 발전기, 변압기, 분전반, MCC, 부스덕트 등이 있고, 보통 각 아이템별로 분리하여 발주를 낸다. 


 일반적인 프로세스는 설계 확정, 입찰 공고, 현장설명회 실시, 사양서 검토 (TBE, Technical Bid Evaluation), 구매부서 상업 사항 검토 (CBE, Commercial Bid Evaluation), 계약의 절차로 진행이 된다. 그리고 업체가 선정이 되면 VP (Vendor Print, 제작도면) 검토, 공장 검수, 운송, 현장 도착 및 검수, 설치, 시운전, 인수인계 단계로 진행이 된다. 


 보통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는 아이템당 4~5개 정도가 된다. 그 4~5개에 들어가기 위해 각 업체 영업 담당은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가며 영업을 한다. 영업  대상의 나이가 많고 적음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어느 날 영업을 위해 나를 찾아오셨던 아버지뻘 이사님을 보는데, 한평생 영업을 하고 살아오신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전라도 담양에서 공고를 나오시고, 일자리를 찾아 부산으로 넘어오셨다. 다 같이 못 사는 시절, 조그마한 공장에 취업을 해 한평생을 열심히 일하셨다. 어릴 때 구정이면 아버지는 항상 나를 데리고 회사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곤 했다. 그만큼 작은 회사였다. 어쨌든 성실히 일하시며 영업 이사 자리까지 올라가며 열심히 영업을 했지만 결국 회사는 문을 닫게 됐었다. 


 당시가 고등학생 때였는데, 아버지는 주저앉지 않으시고 동종 업계 다른 회사의 대리점을 차리며 독립을 하셨다. 다행히 대리점이 잘 됐는지, 누나랑 나 학자금 대출 없이 대학도 졸업시키고, 결혼도 시키고, 이제는 노후를 준비하고 계신다. 


 사실 이전까지는 자랑스러운 아버지, 정말 열심히 사셨나 보다 정도로 생각을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실제로 영업하시는 분들을 옆에서 보다 보니 아버지는 얼마나 힘든 길을 걸어오셨을까란 생각이 많이 든다. 얼마나 더러운 꼴을 많이 보셨을까? 그래도 자식들을 키워야 되니 그만두지도 못하고, 힘들다고 힘든 내색도 못하시는 분이 혼자 얼마나 속으로 화를 삭이셨을까. 


 그냥 문득 아버지께 너무나 감사하다는 얘기가 하고 싶은데, 도저히 맨 정신에 전화를 걸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중에 한국 들어갈 때 바이주 한 병 사들고 들어가 마시며 그동안 힘든 일도 많으셨을 텐데 잘 버텨주셔서 감사하단 얘기를 꼭 하고 싶다.  

이전 09화 갑질과 정당한 권리 요구, 그 중간 어디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