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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Aug 21. 2018

나는 내X대로 살꺼다.

타인의 확인이 필요한 삶은 피곤하다. 늘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누군가의 확인을 통해 만족의 크기가 정해지다 보면, 나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이 사라진다. 

다른 방식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상이한 선택을 비교할 필요는 없다.  

서로 다른 결과 중 수치상 단조롭거나 낮은 쪽을 부족한 결과로 규정짓는 것은 멍청한 태도다. 


A는 지나치게 자주 해외여행을 다니는 편이며 늘 일정을 인스타와 페북에 올리고, B는 평소 동네 카페에서 조용히 책을 본다. 

둘은 소득이 같다. 누구나 눈으로 쉽게 확인 가능한 A가 무조건 더 행복한 거라고 착각한다. 맞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다. 시점을 기준으로 쪼개서 보면 다르다. 

지금 시점만 보면 당연히 해외여행은 더 행복하다. 다만 해외를 안 가고 그 돈을 모아 근시일 내의 자기 미래에 투자하는 B의 평범한 일상은 나중에 행복할 뿐이다. 


게다가 해외여행은 엄청난 돈을 소모한다. 지나치게 자주 가는 사람일수록 미래의 행복을 저당 잡혀 지금 행복한 것일 뿐이다. 딱히 크게 부러워할 일도 아니다. 

A의 행복은 인천공항 귀국과 동시에 끝난다. 반면에 B의 행복은 오늘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B는 타인의 확인에서 자유롭다. 그래서 언제 행복할 것이냐의 시점을 선택할 힘이 있다.

대다수는 현재 시점의 가시적 행복에 치중한다. 

그래서 SNS는 오래, 자주 할수록 행복의 고정관념을 야금야금 바꿔버린다. 굉장히 명시적이고 구체화된 현재의 행복만 행복함으로 간주하게끔 사고방식을 제련해버린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확인되어져야만 하는 행복은 스스로를 가난하게 만든다.

내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선택하고 소비하게 만든다. 현재 시점의 행복과 미래의 빈곤을 맞바꾸게 만든다.  

올해만 살고 죽을 거라면 몰라도 그런 식의 사고방식은 독이다.

욜로라는 단어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번 사는 건 맞지만 오늘만 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욜로는 마치 오늘만 사는 것처럼 몰아간다.


그래서 중요한 건 당신의 선택에 타인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느냐의 문제다. 독자적으로 누구의 간섭도 없이 요로를 즐기기로 결정했다면 그건 꽤 멋진 선택이다.

다만 아주 조금이라도 타인의 시선, 의식, 관념을 의식한 모든 판단들은 똥이다.


당신이 어느 시점에 무엇을 쏟아야 가장 행복할 것인지 그들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냥 산에 들어가서 몇 달간 글이나 쓰고 싶다. 나는 내가 원하는 형태의 행복을 추구해서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이유로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언제, 어떤 식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리지 않을 독자적인 판단과 선택을 원한다. 


ㅡㅡㅡㅡㅡ

인스타그램 @_wild_ride 로 찾아 오시면 다른 종류의 글들과 저의 엉망진창 와장창 라이프 스타일을 구경하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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