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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할꺼면

by 터뷸런스

흔하게 보는 사람의 모순중 하나는 자신은 죽도록 평가받기 싫으면서 타인은 죽도록 평가하는 타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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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커피 한잔 하러 카페에 가면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거의 누군가에 대한 평가다.

걔는 헤어가 왜 그러냐, 옷은 왜 그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피부가 썩었는데 관리도 안 받나 등등.

"당신들 대화의 대상은 외모가 볼품없나 본데, 당신들 내면이 볼품없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라고 가서 말해주고 싶지만 오늘도 꾹꾹 눌러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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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우리는 어제 먹은 음식에 대해 누군가가 부정적으로 평가해도 기분 나빠한다.

감히 내가 좋아서 사 먹는 음식을 비판하냐는 거다. 그래 놓고 자신은 누군가의 삶을 서슴없이 비난한다. 그것도 표면적이고 단편적이거나 근거가 부족한 정보들을 가지고.

아이러니하게도 얼평 하는 사람 치고 외모가 수려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정말 예쁘고 잘생긴 친구들은 누군가에 대해 얼평을 안 하더라.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거다. 누군가를 깎아내리지 않아도 자신은 여전히 예쁘고 잘생겨서 늘 주변의 호의를 누리며 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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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평가받는데 예민한 사람이 주로 누군가를 평가한다.

타인을 평가함으로 인해 떨어진 자신의 자존감을 올리고 상대방의 위치를 내 세계 안에서 끌어 낮추기 위함이다.

이러한 태도를 학계에서는 전문용어로 [mental victory : 정신승리]라고 말한다.

가끔 인터넷 댓글에 김태희 사진이 올라오면 "비율이 별로야"라고 달리는 댓글과도 같은 무의미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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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누군가의 평가 속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다만 쉽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결국 내가 누군가를 쉽게 평가하지 않기 시작하면, "평가함" 그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마치 그런 거다. 진종오가 박태환에게 가서 넌 어떻게 50미터 권총사격을 그렇게 못하냐고 비난해봤자 아무 의미 없는 것과 같은. 반대로 박태환이 진종오에게 넌 어떻게 수영이 그렇게 느리냐고 말하는 것 역시.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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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못하는 것으로 박한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연연할 이유가 없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만드는데도 시간과 돈이 부족하다. 현재 부족하거나 조금 못하는 것들까지 모두 타인의 잣대에 맞춰 성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에너지를 쏟다 보면 해야 할 행동을 하지 못한다. 그런 차원에서 평가질은 스스로의 자격지심만 키우고 정작 더 중요한 일에 쏟아야 할 심력만 소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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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가를 하든말든 상대는 어차피 갈길 가시는데, 서로 힘 쏟을 게 없다. 건강한 지적과 교훈을 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선비질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다. 자기가 직접 부딪혀서 낙담하거나 실패해봐야 개선점을 찾을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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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환경적 요소들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타인에 대한 평가는, 실시간으로 당신의 예민함만 강하게 만들 뿐이다.

정작 더 중요한것을 보는데는 익숙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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